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8편) : 기호와 추상 능력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1편)”]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2편) : 국내 연구 현황]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3편) : 종이책은 완성된 기술이다]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4편) : 논문 “디지털 시대의 동적 읽기: 인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2023) 정리 (1/2)]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5편) : 논문 “디지털 시대의 동적 읽기: 인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2023) 정리 (2/2)]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6편) : 문해력은 경쟁력이다]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7편) : 본격적인 읽기란?]
또한 다음도 참조: [문해력은 권력의 문제다] ; [인공지능 시대에 외국어 공부가 필요할까?] ; [인공지능 시대, 요약 훈련이 필요한가?]

기호란 다른 무언가를 가리키는 것이다. 가령 연기는 화재를 가리키는 기호다.

기호가 작동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기호 사용자 간에 약속()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코드(code, 약호)’라고 한다. 코드를 번역한 말로 ‘약호(號)’를 쓰지만 더 깊은 수준에서 ‘약호(號)’이다. 약속이 없다면 가리키는 대상이 고정되지 못한다. 약속은 개인 수준에서도 가능하지만(나 혼자 이게(x) 저걸(y) 가리킨다고 정해 놓은 암호문; 하지만 개인은 쉽게 망각한다), 집단 구성원 사이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은 집단을 결속(結束)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추상적인 기호를 해독할 수 있는 고도의 지적 능력이다(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는 기호를 세 종류로, ‘도상(icon)’, ‘지표(index)’, ‘상징(symbol)’으로 나누며, 들뢰즈는 이미지론을 다룬 《영화1. 운동-이미지》(1983)와 《영화2. 시간-이미지》(1985)에서 이 구분을 적극 수용한다). 특히 퍼스가 구분한 ‘도상’과 ‘지표’가 대상과의 관계를 얼마간 유지하는 데 비해 ‘상징’은 대상과의 자의적 관계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가장 추상적인 기호는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에게 추상 능력이 언제 탑재되기 시작되었는지는 고고학 유물을 통해서만 겨우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집단 혹은 공동체 속에서 기억과 추상 능력이 유지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한 번 추상에 성공했다 해도 기억하지 못하면 도루묵인데, 앙드레 르루아구랑이 잘 보여준 것처럼, 그리고 아구스틴 푸엔테스가 최근에 확인해준 것처럼, 기억은 생물학 수준을 넘어 문화(집단, 공동체) 수준에서 보존되고 강화되고 누적되고 전승되었다. (이와 관련해 나의 논문 두 편을 참고할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 창의성 개념의 재고찰 (2021.10) ; 들뢰즈와 과타리의 철학에서 앙드레 르루아구랑의 ‘손놀림과 말’의 역할 (2021.04). 물론 이 내용은 《AI 빅뱅: 생성 인공지능과 인문학 르네상스》(2023)에서 잘 활용해 발전시켰다.)

앙드레 르루아구랑(André Leroi-Gourhan, 1911~1986)
《손놀림과 말 1 : 기술과 언어》 (1964)
아구스틴 푸엔테스(Agustin Fuentes, 1966~)

놀라운 점은 인간은 처음에 ‘추상적’ 기호를 사용했고 나중에서야 ‘구상적(figurative)’ 묘사(벽화, 그림, 장식 등)로 이행했다는 점이다. 구상이 추상 능력에 후행한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추상적 기호 능력이 최초의 인간과 동반했다는 점은 더욱 놀랍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 핵심 능력이 바로 추상 능력이다.

추상적 상징의 최초 형태는 ‘문자’와 ‘숫자’ 상징이다. 이들 상징이 성립하려면, 비슷한 것을 같은 것으로 동일시할 수 있어야 한다. 위의 MNIST Dataset에 있는 각 숫자는 서로 다르다. 숫자를 숫자로 인식하려면 가로에 있는 상징들이 모두 같은 숫자를 지칭한다고 알아채야 한다. 이는 플라톤이 ‘형상’ 또는 ‘이데아’를 떠올린 과정과 같다. 세상에는 정확히 같은 것은 없고 단지 비슷한 것들밖에 없지만, 비슷한 것들을 정확히 같은 것(‘이데아’)으로 여길 능력이 있어야 한다. 플라톤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세계를 모델로 삼았는데, 사실 모든 추상에는 비슷한 절차가 동원된다. 즉, 문자와 숫자의 성립도 이데아의 성립과 나란히 간다.

가설이지만,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문자’의 성립을 겨냥했을 수도 있다. 이 경우 플라톤은 음성 역시도 문자의 성립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가설이 뒤따른다. 문자의 여러 변이체가 같은 문자를 지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성의 여러 변이체도 같은 음소를 지칭한다는 것이 성립하지 않으면 음성 언어 체계도 성립할 수 없다. 이 문제를 명시적으로 논한 건, 내가 알기로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다.

흥미로운 것은 딥러닝이 이런 추상 작용을 행한다는 점이다. 딥러닝은 많은 데이터로부터 일정한 패턴을 찾는다. 뇌와 딥러닝의 차이라면, 뇌는 이 일은 무척 값싸고 쉽게 처리하는 반면 딥러닝은 엄청난 자원이 소모된다는 점이다. 자원의 문제는 지금도 앞으로도 중요하지만, 이 문제도 당분간 생략하고 가자. 아무튼 뇌는 엄청 효율적인 추상 기계라는 점이고, 추상 능력은 무엇보다 사람속(hominin)에서 두드러진다. 르루아구랑의 주장처럼, 직립보행, 두개골 변형, 후두 개방, 손의 해방 등이 동시에 맞물리는 이 과정에서 어떤 기적이 발생했는지 더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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