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새로운 주제를 연구하는 법 : ‘인공지능 글쓰기’의 예

나의 주전공은 들뢰즈 철학이고 조금 범위를 넓히면 서양 근현대 철학이다. 주제로는 미학과 예술철학, 기술철학, 사회-정치철학다. 이 말은 나의 전문성이 발휘되는 영역이 대체로 그 언저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여러 새로운 세부 주제를 연구하기도 한다. 가령 최근에는 ‘인공지능 글쓰기’를 좀 파고 있다. 인공지능은 근 10년 넘게 계속 보고 있으므로 어지간한 논의는 익숙하다. 반면 글쓰기는 개인 경험 차원의 아이디어를 정리했던  것 말고는 학술적으로 깊게 연구한 적이 없다. 이럴 때 어떻게 접근하는가?

우선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에서 키워드를 입력해 어떤 논문이 있는지 살핀다. 이 중에서 관련이 있겠다 싶은 논문의 제목과 초록을 먼저 보고, 읽어야겠다 판단되는 논문을 모조리 다운 받는다. 논문을 읽다 보면, 연구자들이 많이 인용하는 논문과 책이 눈에 띈다. 몇몇은 영문 혹은 다른 외국어로 된 것인데, 어지간한 경우에는 논문들 안에 요점이 소개되어 있다(이걸로 부족하면 원문을 보아야 한다. 가령 이견이 크거나, 요약이 모호한 경우). 그렇게 읽어가는 일이 기본 자료 조사 시간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읽은 글은 요점과 의견을 스크랩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나의 관점 혹은 아이디어다. 내가 ‘인공지능 글쓰기’라는 주제를 연구하려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나는 글쓰기가 결과물의 관점이 아니라 과정의 관점에서 교육적으로 유효하며, 인공지능 글쓰기는 교육 과정에서 지양되어야 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참고문헌을 읽을 때 찬반 의견을 개진하는 논문을 분류해서 정리하고 주제 전체를 조망해 줄 근거를 수집한다. 문헌을 읽어서(그게 100개건 200개건 다 읽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의 아이디어가 남다른 점이 있으면 그 부분을 중심으로 논문을 쓰고, 아니면 좋은 공부를 했다 생각하고 연구를 종료한다.

외국의 훌륭한 최신 논문과 책도 있을 테다. 하지만 그들도 한글 문헌을 참조하지 않는데, 한글로 하는 연구자가 굳이 그들을 애써 참고할 필요가 있는지는 늘 의문이다. 과학 영역과 인문학 영역이 갈라지는 지점일 것 같기도 하다. 이 지점부터 왜, 누구를 위해, 누구에게 논문을 쓰느냐 하는 논쟁이 있을 수 있다. (이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생략.)

최근에 논문 다수가 인용되지 않는 현실을 보도한 기사가 화제다. 이 문제에 관해 의견을 하나 보태고 싶다. 실제 읽어보면 알겠지만, 정말 쓸모없는 논문이 많다. 이런 논문을 참고문헌에 소개하면서 별도로 ‘쓰레기’ 꼭지를 만들어 분리수거하면 좋지 않을까? 이런 관행이 정착되면, 읽지 않아도 되는 논문이 자연스레 걸러지고, 연구자들의 수고도 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굳이 3명쯤 되는 논문 심사자에게 합격점을 맞았다고 평가가 영원히 지속되게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출판 후에도 연구자의 영원한 평가가 함께 한다면, 논문을 지금처럼 남발하는 경향은 1/50로 줄지 않을까 한다. 물론 서로 쓰레기로 분류하는 물밑 전쟁은 지속될 테지만, 시간이 지나면 질적 수준을 유지하는 논문만 남게 되리라 예상된다.

6월 말일까지 투고하려 했다가, 읽어야 할 논문이 넘치는 관계로 투고를 가을로 미루게 된 사정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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