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7편) : 본격적인 읽기란?


앞선 글: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1편)”]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2편) : 국내 연구 현황]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3편) : 종이책은 완성된 기술이다]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4편) : 논문 “디지털 시대의 동적 읽기: 인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2023) 정리 (1/2)]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5편) : 논문 “디지털 시대의 동적 읽기: 인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2023) 정리 (2/2)]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6편) : 문해력은 경쟁력이다]
또한 다음도 참조: [문해력은 권력의 문제다] ; [인공지능 시대에 외국어 공부가 필요할까?] ; [인공지능 시대, 요약 훈련이 필요한가?]

 

본격적인 읽기(이 말의 의미는 뒤에서 상술할 것이다)는 본래 어렵고 훈련이 필요한 작업이다. 써진 글자를 읽을 줄 안다고 해서 본격적인 읽기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신문이나 잡지에 있는 가벼운 기사나 제품 사용법을 읽을 수 있다고 해서 고전 수준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정보를 얻기 위한 읽기와 본격적인 읽기는 다르며, 후자에는 집중과 인내와 훈련이 요청된다.

이는 영국의 추리 소설가 도로시 L. 세이어스의 말에 잘 요약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 교육의 엄청난 결함, 즉 제가 지금까지 언급했던 난처한 불안 증세를 통틀어 거슬러 올라갈 때 원인으로 나타나는 결함은, 제자들에게 ‘학과목’은 종종 제대로 가르치지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데는 유감스럽게도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사실 그리고 아이들은 오로지 학습하는 방법만 제외하고 모두 학습했다는 사실 아닐까요?”(수전 와이즈 바우어(Susan Wise Bauer)는 《독서의 즐거움(The Well-Educated Mind: A Guide to the Classical Education You Never Had, 2003)》(이옥진 역, 민음사, 2010) 23쪽에서 재인용)

요컨대 정보 습득을 위한 읽기는 가르쳤지만 본격적인 읽기는 가르치지 않는 현대 교육에 대한 통렬한 지적이다.

그런데 세이어스가 이 말을 한 것이 1947년이라는 점에 놀라지 않기 바란다. 오늘날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읽기를 교란했다고 하지만, 이미 텔레비전이 등장했을 때도 같은 주장이 있었다. 세이어스이 관찰한 상황이 텔레비전의 등장과 맥을 같이 하는지는 모르겠지만(영국에는 2차대전이 발발한 1939년 전에 텔레비전이 등장했다), 적어도 ‘생각하는 법’, ‘학습하는 방법’, 즉 ‘본격적인 읽기’가 교육되지 않고 있는 상황은 1947년에도 일반적이었다는 점이 확인된다.

미국의 교육자이자 작가인 수전 와이즈 바우어(Susan Wise Bauer)는 《독서의 즐거움(The Well-Educated Mind: A Guide to the Classical Education You Never Had, 2003)》(이옥진 역, 민음사, 2010)에서 “어떤 책은 맛만 보고, 어떤 책은 삼켜 버리고, 어떤 책은 잘 씹어서 소화시켜야 한다.”는 16세기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을 인용하고 나서 해설을 덧붙인다.

“고전적인 인문학 교육 기관에서 공부는 전통적으로 세 가지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맛보기’는 학습 주제에 관한 기본 지식 획득하기이다. 두 번째 ‘삼키기’는 지식의 평가를 통해서 스스로 이해하기이다. 이 지식은 타당한가? 사실일까? 이유는? 세 번째는 ‘소화하기’로, 주제를 자신만의 이해 방식 속에 접어 넣는 것이다. 여기서는 생각의 통로가 바뀌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니면 가치가 없다고 거부하는 것이다. 맛보기, 삼키기, 소화하기는 사실을 찾아내고 그것을 평가하고 자신만의 의견을 형성하는 단계이다.”(p. 21)

베이컨의 ‘맛보기, 삼키기, 소화하기’는 중세 아르테스 리베랄레스의 3학(Trivium)인 ‘문법, 논리학, 수사학’에 대응하며, 바우어는 이를 다시 ‘이해하기, 분석하기, 평가하기’라고 구분한다. 이런 용어법을 따르면, 오늘날의 읽기 교육은 ‘맛보기, 문법, 이해하기’ 단계까지만 진행되며 그 너머로(‘삼키기, 논리학, 분석하기’와 ‘소화하기, 수사학, 평가하기’)는 가지 않는다. 이 두 번째 단계가 ‘본격적인 읽기’임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서 바우어는 본격적인 읽기가 ‘사실 수집’을 넘어선 ‘계몽’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정보를 얻는 것은 사실을 수집하는 것인 데 반해 계몽된다는 것은 하나의 생각(정의나 자비, 인간의 자유)을 이해하고 지금까지 모아 온 사실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그 생각을 사용하는 것이다. (…) 기술력은 정보 수집을 좀 더 수월하게 만드는 데 엄청난 공헌을 하지만 지혜를 모아서 수월하게 만드는 데는 별다른 능력이 없다. 정보는 밀물처럼 우리에게 밀려왔다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31쪽)

이 모든 논의가 ‘읽기의 본질’ 및 ‘읽기 교육’과 관련된다는 점에 주목하자. 인용문에 ‘기술력’이 언급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술력’을 AI 디지털 교과서라고 보면, 그것은 밀물처럼 밀려왔다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정보와 관련될 뿐이기 때문이다.

물음을 더 밀고 가보자. 종이책을 본격적으로 읽기도 어려운 판에, 전자책은 본격적인 읽기 교육에 얼마나, 어떤 식으로 기여할 수 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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