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거대 언어모델(LLM) 인공지능뿐 아니라 번역 특화된 인공지능(가령 DeepL, 구글번역, 파파고)이 뛰어난 성능을 보이면서, 과연 인공지능 시대에도 외국어 공부가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남보다 뭘 조금이라도 더 잘 하고 싶다면 외국어 공부는 여전히 필요하다.
외국어는 두 수준에서 고려할 수 있다. 먼저, 정보 전달과 단순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하다. 알고 싶은 것이 있을 때 한국어로 된 문헌(잘 된 번역 포함)이 없으면 외국어로 손을 뻗어야 한다. 이 경우 인공지능의 역할은 외국어 문헌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번역에 한계가 분명히 있지만(특히 철학에 근접할수록 잘 안 됨), 어지간한 내용은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도 종종 지적되듯, 이 번역이 완전한 건 아니라서 종종 오류가 있고, 이런 상황에서는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인간 번역도 완벽하지 않고, 아니, 틀리는 경우가 아주 많고, 직접 확인하기 어려우면 해당 언어의 전문가에게 문의하는 것이 손쉽다. 외국어를 고려하는 첫째 수준에서 인공지능은 톡톡히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겨준다고 어려움이 끝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최소한 한국어 문해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번역된 내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O명 모집, 심심한 사과, 주인백, 금일, 사흘’ 등 최근에 문해력 결여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데, 젊은 세대가 이 말들을 모른다고 지적하는 기성 세대를 꼰대라고 욕할 일만은 아니다. 번역된 문장에는 여전히 이런 낡은(!)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낡은 언어를 모르는 것이 핑계가 되긴 어렵다. 늘 주장해왔듯이, 문해력은 역량이기 때문이다.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는 여전히, 앞으로 더 중요하다. 게다가 한국어이건 외국어건 어휘력 자체도 역량임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한국어 어휘는 무시하면서 영단어는 열심히 외워야 한다는 모순은 또 어떠한가?
둘째 수준에서 고려할 때, 외국어는 한국어로 오롯이 번역될 수 있는 비한국어가 아니다. 언어마다 다른 세계가 있다. 언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는 거의 같지만, 문화적으로는 상당히 다르다. 그런 문화의 중심에 언어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언어를 많이 안다는 건, 세상의 해상도가 높아진다는 뜻이다. 한국어로 포착할 수 없는 세계를 중국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가 포착한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세상을 높은 해상도로 보려면 외국어 공부는 필수다. 외국어를 많이 공부할수록 뇌 활동이 활발해진다는 연구도 있다.
이상의 이야기를 남과의 경쟁 차원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 차원에서만 들어서는 안 된다.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서 어째야 할까의 관점에서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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