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인 컴퓨터가 보급된 1980년대 후반부터 PC를 사용한 1세대다. 그전에도 개인 컴퓨터가 있긴 했지만, 적어도 워드프로세서로 쓸 수 있는 첫 모델은 인텔의 80286 마이크로프로세서부터라 할 수 있으니, 내가 디지털 1세대라고 자임한들 별 무리는 없어 보인다.
30년 넘게 모니터에서 시작해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화면을 글을 읽어 왔으니, 이른바 전자책 독자로서도 1세대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전자책의 핵심은, 종이가 아니라 디지털 디스플레이 장치를 통해 종이책에 있는 성분들(글이나 그림 따위)과 하이퍼텍스트 문서(HTML)를 읽는다(음향을 듣거나 동영상을 보는 것도 포함)는 점이다. 요컨대 종이책은 종이를 우리가 익히 아는 책(冊) 모양으로 묶은 것이며, 전자책은 디지털 디스플레이 경험이다. 우리는 지금껏 전자책을 ‘책’이라고 규정하는 데 익숙해 있지만, 내가 볼 때 책(종이책)과 전자책(디지털 디스플레이)은 명칭만 유사할 뿐, 전혀 다른 유(類, genus)에 속한다.
이 점을 이해하려면, 미디어의 역사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월터 옹의 분석에 따르면, 인간에게 중요한 미디어는 음성, 문자, 활자, 전자 매체의 넷으로 구분된다. 옹은 활자 혹은 인쇄의 역할에 주목한다. 즉, 책에 주목했던 것이다. 옹은 “인쇄가 사고와 문체에 끼친 영향에 관해서는 앞으로 충분히 고려해보아야 한다”(옹 199)고 주장한다. 옹이 문자, 특히 인쇄에 대해 지적한 중요한 대목을 몇 군데 짚어 보자.
“시각적인 지면이 부과된 의미를 짊어지기 때문에, 그리고 단어가 지면에 놓여 텍스트를 구성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페이지에서의 정확한 배치나 단어끼리의 정확한 위치도 인쇄에 통제를 받기 때문에, 인쇄된 지면 자체의 이른바 ‘여백’은 근대와 포스트모던 세계에 직접 연결되는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 인쇄는 수학적인 분석이나 다이어그램이나 도표를 이용해서 지식의 수량화를 대규모로 촉진시켰고 또 그것을 가능케 했다. “(옹 206-9)
“쓰기의 기술에 익숙하고 그 기술을 깊이 내면화한 인간 정신만이 비로소 철학적 사고를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철학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헤겔 철학과 그 밖의 현상학은 자아를 한층 깊게 반성하고 발견한다는 데 크게 의존하는데, 그처럼 자아에 대한 한층 진전된 발견은 쓰기와 인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기술들 없이는 자아의 근대적인 개인화도, 이중으로 반성적인 근대의 예민한 자기의식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옹 267)
요컨대, 근대적인 과학과 철학의 발전이 인쇄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물론 필사 단계에서도 어느 정도는 과학과 철학의 발전이 가능했다. 플라톤이 좋은 사례다. 하지만 활판 인쇄는 지식의 규격화와 체계화를 가능케 했다. 활자체(폰트)는 필서된 글자와 가시성과 가독성 면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일정 분량의 종이를 제본해서 만든 책은 파피루스나 두루마리 양피지와 달리 휴대성, 참조성, 전파성이 높았다. 책의 여백, 상단 및 하단의 기호(소제목, 요약, 쪽수 등)는 책에 확장성과 참조성을 높였고, 목차와 색인은 책을 다각도로 읽을 수 있게 해주었다. 나아가 다수의 책을 한 자리에 늘어놓고 하는 비교는 지식의 밀도를 높였다. 서로 다른 책들의 병렬된 페이지들은 지식의 비교를 가능케 했을 뿐더러 생각을 압축하고 종합하는 훈련을 촉진했다. 책은 지식의 유통 미디어였을 뿐만 아니라 생각의 훈련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장소였다.
나도 오랫동안 책과 전자책이 같은 유에 속한다고 오해했다. 착각의 원인은 단순했다. 처음 등장했을 시기에 디지털 디스플레이는 책을 구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자 나아가 하이퍼텍스트 문서는 읽기를 더 자유롭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즉, 책이 가진 장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추가적인 이점이 있었다고 여겼던 것이다. 추가적 이점이란 저장 용량, 통신을 통한 이동 속도와 거리, 하이퍼텍스트로 다종의 매체(문자, 그림, 소리, 동영상)와 문서 간 참조를 종횡으로 결합한 점, 쉬운 재생산(복사) 비용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30년 넘게 종이책과 전자책을 둘 다 이용해 보면서, 지금에서야 둘의 공통점보다 차이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차이점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읽기 체험(UX)을 들여다봐야 한다. 과연 둘은 똑같은 체험을 주는가? 각각을 읽으면서 바뀌는 지식과 역량은 성격은 어떠한가? 각각은 어떤 교육적 목적에 이바지하는가? 어떤 역량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진지하고 깊게 탐구하지 못했던 건, 종이책과 전자책이 둘 다 ‘책’이라는 유(genus)의 서로 다른 종(species)이라고 오해했던 탓이다. 둘을 같은 유로 본 것이 패착의 시작이었다. 이제 둘이 서로 다른 유라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면, 30년 넘게 이이온 우리의 오해는 크게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계속)
(2편 추가: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2편) : 국내 연구 현황])
(3편 추가: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3편) : 종이책은 완성된 기술이다])
(4편 추가: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4편) : 논문 “디지털 시대의 동적 읽기: 인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2023) 정리 (1/2)])
(5편 추가: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5편) : 논문 “디지털 시대의 동적 읽기: 인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2023) 정리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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