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 요약 훈련이 필요한가?

한 번 입을 떼면 말이 장황하게 이어지며 도무지 끝을 맺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특정한 누군가를 떠올리지 말기 바람). 왜 이럴까? 결론만 말하자면, 자기 생각이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아서다. 요약하는 훈련이 되지 않아서다. 그런데 요약 훈련의 최고봉은 글쓰기다.

요약하기 위해서는 읽기가 먼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사실 읽기와 쓰기의 관계는 복잡하다. 어디까지가 읽기의 끝이고 어디서부터 쓰기의 시작인지 구별하기도 애매하다. 얼마간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쓰기가 시작될 수 없고, 쓰려는 목적이 없으면 읽기가 완료되지 못하니까. 그래서 읽기와 쓰기의 관계는 그 자체로 더 탐구해야 할 주제다.

나는 쓰기가 먼저라고 주장한다. 쓰기란 기왕에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원료로 해서 생각의 새로운 가공품을 지어내는 과정이다. 읽기란 재료를 모으는 과정의 일부다. 재료를 모으는 다른 방식도 많으니 말이다. 아무튼 쓰기 위해서는 원료들을 압축하고 재가공(리메이크)하는 일이 필수다. 이걸 흔히 ‘요약’이라고 부른다.

요약을 원본의 분량을 줄이는 과정이라고 축소해서 이해하면 안 된다. 요약은 원본에서 출발해서 읽은 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추출해 모으는 과정이다. 즉, 요약 행위에는 독자의 적극적 개입이 전제되며, 심지어 원본에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용도 포함된다. 그러니 막연하게 요약하는 일은 있기 어렵고, 궁극에는 독자의 목적이나 의도가 요약의 방향을 인도한다. 이때 목적이나 의도는 결국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지, 어떻게 사용하려 하는지에 달려있다. 쓰기란 이런 ‘용도’를 지정하는 가장 좋은 방책이다.

초거대 언어모델(LLM) 인공지능은 요약을 그럴 듯하게 해준다. 물론 철학적일수록 요약의 효과는 떨어진다. 하지만 상식 수준의 요약은 제법 쓸 만하다. 문제는 인공지능의 요약에 얼마나 의지할 것인가이다. 사고 훈련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의 문제는 특히 교육 과정에서는 결정적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아무리 잘 요약해준다 하더라도 ‘나’의 요약 능력 혹은 생각 능력은 조금도 향상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훈련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나의 능력’은 퇴보한다. 

플라톤은 문자의 도입이 인간의 기억 능력을 퇴보시킬 것으로 보아 문자를 비판했다. 이 비판은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문자는 기억의 외화, 기억의 물질화였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특성을 오해한 탓에 플라톤은 문자를 비판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어떤가? 요약해주는 LLM 인공지능에 한정해서 말하자면(왜냐하면 ‘인공지능(AI in general)’은 없고 인공지능들(AIs)만 있으니까), 그것은 기억의 확장과는 조금도 관련 없다. 기억의 외화는 인쇄의 디지털화, 혹은 디지털화된 데이터베이스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LLM 인공지능은 기억의 관점에서는 그걸 넘어서지 못한다. 따라서 플라톤의 오판과 달리 인공지능 요약 기술은 인간의 사고력을 감퇴시킨다.

다시, 말을 장황하게 하면서 맺지 못하는 사례로 돌아오자. 말을 길게 하는 건 능력이 아니라 오히려 능력의 결여다. 짧게 요약하는 것이 능력이다. 시험 공부를 잘해 좋은 점수를 받고 높은 지위를 얻은 이들 중에 말이 장황한 사람이 많다는 점을 보면, 시험 제도가 생각 훈련에 보탬이 되는지는 무척 회의적이다. 쓰기와 읽기를 더 강조해야 하고, 그걸 훈련하는 교육 과정이 더 정교하게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2024.06.09 추가)

“이해를 위한 첫걸음은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며, 내용을 파악하는 가장 오래되고 신뢰할 만한 방식은 자신의 말로 재서술해 보는 것이다. 내용에 정통하려면 요약해야 한다.”(수전 와이즈 바우어, 《독서의 즐거움》,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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