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6편) : 문해력은 경쟁력이다

앞선 글: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1편)”]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2편) : 국내 연구 현황]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3편) : 종이책은 완성된 기술이다]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4편) : 논문 “디지털 시대의 동적 읽기: 인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2023) 정리 (1/2)]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5편) : 논문 “디지털 시대의 동적 읽기: 인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2023) 정리 (2/2)]
또한 다음도 참조: [문해력은 권력의 문제다] ; [인공지능 시대에 외국어 공부가 필요할까?] ; [인공지능 시대, 요약 훈련이 필요한가?]

 

문해력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곧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문해력은 역량으로서의 경쟁력이다.

문해력이 뛰어난 사람은 책 한 권, 글 한 편을 읽더라도 거기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게 많다. 흔히 ‘행간을 읽는다’고도 하는데, 글의 표층에 담긴 뜻을 알아먹는 것 말고도 글에서 출발해 생각을 더 확대하거나 깊게 들어가는 재주를 지닌 셈이다. 반대로 문해력이 떨어지면 건질 수 있는 건 10분의 1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문해력이 뛰어난 사람과 떨어지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해진 시간 동안 글을 읽어야 한다는 조건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다, 인생의 시간은 늘 유한하다.)

따라서 책 혹은 글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문해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문해력이 길러질까? 아무래도 생애의 초반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다른 역량이 그렇듯, 문해력은 몸의 성장이 정점에 이르는 20대 초반까지 성장할 수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모든 배움은 급감한다.

문해력을 기르려면 많은 양의 독서가 수반되어야 한다. 문해력은 선형(아래 그림의 초록색 선)이 아니라 계단식(빨간색 선)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정체기에도 여전히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릇에 물을 부어도 넘치지 않다가, 어느 임계점에 이르러야 넘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릇 밖에 더 큰 그릇이 계속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문해력을 기르는 데 ‘종이책’과 ‘전자책’ 중 어느 것이 유익할까? 전자책을 지지하는 많은 이들이 종이책에 없는 전자책의 장점을 말한다. 나도 전자책의 장점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교육을 받는 학생 시절에는 문해력 향상을 위해 종이책이 꼭 필요하다. 나면서부터 전자책에 익숙한 세대이니 미래 세대에게는 시간이 지나면 전자책이 종이책을 능가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말도 있다. 여기서 한 번 더 몸에 주목해야 한다.

주의력, 집중력, 이해력, 기억력 등의 역량은 몸에 속한다. 그리고 이들 역량을 키우는 훈련에 전자책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이미 실증이 완료된 것 같다(연재 4편과 5편에서 분석한 논문 참조). 오히려 몸에는 종이책이 최적의 훈련 도구다. 인간은 구어에서 문자를 거쳐 인쇄에 이르렀고, 이 과정은 미디어를 몸에 최적화하는 진화 과정이었다. 종이책은 수백 년 시간의 검증을 통과하기도 했다.

전자책에 몸이 맞춰간다는 것은 퇴보의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진화는 환경의 압력에 반응하는 변화인데, 그것이 진보로 향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하다. 우리는 언제라도 다시 퇴보할 수 있다. 이 실험은 조만간 종료될 것이다. 문해력 훈련 도구로서 전자책의 완패라는 형태로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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