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3편) : 종이책은 완성된 기술이다

(앞선 글: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1편)”]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2편) : 국내 연구 현황])

 

이미 완성된 기술이라는 게 있다. 극단으로 완성되어 앞으로 더 발전될 여지가 없는 것들이다. 가령 바퀴, 의자, 숟가락, 가위, 잔, 망치 등은 기능과 디자인이 극히 효율적이어서 보태거나 뺄 것이 없다. 그래서 앞으로 더 발전할 여지가 없다. 종이책도 이같은 성격을 지닌 완성된 기술이다.

한겨레 최원형 기자는 《갈대 속의 영원》(이레네 바예호 지음, 반비, 2023)를 평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언급한 후 이렇게 보탠다. “책의 물성은 개인용 컴퓨터 등 디지털 문명의 기초가 되기도 했죠.” 이 구절은 내가 비판적으로 살피고 있는 ‘전자책’과 ‘종이책’의 혼동이 가시화된 한 장면이 아닐까 한다. 최원형은 기사에서 ‘다이나북’을 예시한다.

2008년 컴퓨터 과학자인 앨런 케이가 자신의 발명품인 ‘다이나북’의 모형을 들고 있는 모습. 그가 1977년 책의 구조를 본떠 발명한 다이나북은 훗날 개인용 컴퓨터의 개발에 영향을 줬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흔히 전자책은 종이책을 모방한 후 기능을 덧붙인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판단을 하는 데는 외형의 유사성도 큰 몫을 한다. 그러나 완성된 기술이 대개 그렇듯 애매하게 변형을 가하면 더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한다. 비유에 잠시 눈이 멀어 전자책을 ‘종이책 플러스알파’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퇴보의 조력자가 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퇴보’는 정점에 있는 완성된 기술로서의 책을 기준으로 할 때의 퇴보다. 다시 말해 책의 기능이 오히려 삐걱거리는 지점이 발생한다는 말이다. 전자책은 그 나름의 특징과 기능을 갖고 있다. 그것을 종이책과 단순히 비교하거나 종이책의 발전된 형태로 여기지만 않는다면, 전자책의 특징과 기능은 주목할 만하다. 그 특징과 기능을 잘 살려, 종이책을 읽는 경험과는 다른 종류의 경험을 극대화할 여지도 생겨난다. 하지만 종이책 독서 경험의 ‘연장’이나 ‘확장’으로 여기기 시작하면 낭패하고 만다. 굳이 완성품인 종이책에 전자책을 덧댈 이유는 없다. 괜히 종이책을 흉내 새서 구현하려 한다면 실패가 눈에 선하다.

아래에 종이책과 전자책의 장단점 및 비교를 정리해 보겠다. 조사를 거쳤지만, 최종적으로는 나의 경험에 근거했고,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내용은 생략했다.

전자책 vs. 종이책

전자책/종이책 비교 포인트
– 편의성, 저장공간, 직관성

전자책의 장점
– 보관 공간을 절약할 수 있음
– 편리한 읽기 환경 : 밝기, 폰트 모양 크기, 배경색상 등을 조절
– 이동, 보관, 검색이 편리, 빠른 참조, 밑줄 공유, 북마크, 목차 뛰어넘기

전자책의 단점
– 디바이스, 배터리, 호환성, 화면 손상 문제
– 집중력 감소 : 인터넷 연결이 가능할 때 다른 앱, 이메일, 소셜미디어, 광고 등으로 쉽게 주의 분산되고 산만해짐
– 파편적 읽기, 산만함 초래 가능
– 길이 있는 읽기와 내용 이해에 불리
– 얕고 피상적인 텍스트 처리 경향을 보임.
– 메타인지 조절(자신의 수행을 점검하고 조정하는 능력)이 부족함.
– 외부 요인(예: 스크롤 속도)에 의해 읽기 속도가 통제되는 경우 이해도 저하됨.

종이책의 장점
– 물리적 실체가 있어서 (전자 장비 없이) 즉시 접근 가능
– 물리적 경험(감촉, 냄새, 쥐는 느낌, 두께)
– 후루루 넘기며 훑어보기(flip through)
– 앞뒤를 왔다갔다 하면서 봐야 하는 책(어렵거나 깊이 있는 책)에 유리
– 공간적, 촉각적, 운동감각적 단서를 통해 내용을 파악하고 기억하기 좋음
– 메모, 밑줄, 책갈 등 적극적 읽기 활동에 적합
– 몰입과 집중력 유지에 도움

종이책의 단점
– 물리적 제약(저장 공간, 손상)이 있고 무게가 무거움
– 불편한 검색

나는 각각의 장점과 단점이 단지 상보적인 것으로 이해되면 안 된다고 본다. 전자책만의 독특한 기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사실상 전자책의 ‘장점’이 종이책의 ‘단점’을 보완하기는커녕 오히려 종이책의 ‘장점’은 결코 전자책으로 옮겨갈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종이책의 단점은 그 자체로 장점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도 확인해야 한다. 왜냐하면 종이책의 물성(物性)과 불편함은 그 자체가 ‘생각의 훈련’의 계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한 가지만 지적하자. 종이책은 3차원 좌표를 지닌다. 페이지의 상하좌우와 두께. 그런데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에는 ‘장소 세포’가 있어서, 일종의 GPS 역할을 한다. 장소 세포는 공간상의 위치와 사물의 배치 등을 감지해 안내한다. 이 덕분에 종이책을 읽을 때의 고정된 물리적 ‘위치’는 기억, 정보 습득, 회상의 단서가 된다. 이 말은 종이책이 전자책에 비해 더 나은 학습 효과를 유발한다는 뜻이다(이와 관련한 해외 논문은 나중에 소개 예정임). 이에 반해 전자책에서는 ‘그거 어디에서 본 건데!’의 ‘어디’가 약해진다. 전자책은 차원이 없다. 일단 두께가 없고, 화면의 상하좌우는 설정에 따라 유동한다. 그래서 종이책에 비해 퇴보한 학습 도구다.

(계속)

(4편 추가: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4편) : 논문 “디지털 시대의 동적 읽기: 인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2023) 정리 (1/2)])

(5편 추가: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5편) : 논문 “디지털 시대의 동적 읽기: 인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2023) 정리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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