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가 ‘유목’ 대 ‘국가‘’, ‘전쟁기계’ 대 ‘포획장치‘’를 말할 때, 가장 중심에는 공간의 문제가 있다. 나는 “매끈한 공간 대 홈 파인 공간 : 전쟁기계, 또는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 들뢰즈의 공간의 정치철학” (2018.12)에서 이 공간의 문제를 개략적으로 살핀 바 있다. 유목과 전쟁기계는 홈 파인 공간을 매끈한 공간으로 만드는 삶의 방식이자 운동인 데 반해, 반면 국가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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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April 2024
‘들뢰즈’와 관련한 푸념 한 마디
나는 프랑스 현대철학을 한국에 소개한 1세대에 속한다. 내가 들뢰즈의 《베르그손주의》를 번역 출판한 게 1996년 겨울이고(2021년 전면 개정판을 냈다), 들뢰즈와 과타리의 《천 개의 고원》은 2001년 초여름에 출간되었다. 그 사이 1998년 여름에는 《현대 사상가들과의 대화》라는 번역서를 통해 데리다, 레비나스, 리쾨르, 료타르 등의 사상을 소개하기도 했고. 어쨌건 1980년대 후반부터 니체와 푸코를 통해 들뢰즈를 접했고, 대학을 졸업하던 1992년에는 니체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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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대변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를 위해’ 말하고 행동한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를 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를 위하는 일은 ‘가능’한 일일까? ~를 위하는 일이 ~에게 실질적으로 보탬이 되는 걸까? 그건 ~를 위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힘을 얻고 힘을 행사하려는 은밀한 계책은 아닐까? 자신을 위하겠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위하더라도 안 될 수 있지만, 책임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니까. 그런데 타자(타인, 집단, 동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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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쓰는 법
글 쓰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단연코, 마감이다! 마감이 없으면 글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써야 할 글은 물론 주제에서 시작한다. 어떤 내용을 왜 쓰는가가 당연히 중요하다. 청탁을 받은 것이건 기고를 위한 것이건, 아니면 페북에서 따봉 좀 받으려는 것이건, 아무튼 글은 주제에 이끌린다. 주제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 어떤 재료를 갖고서? 재료는 어디에서 수집해야 할까? 이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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