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2편) : 국내 연구 현황

(앞의 글[“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1편)”]에 이어…)

나는 종이책을 읽을 때 항상 곁에 필기도구를 둔다. 주로 밑줄을 긋거나 표시하고, 때로 여백에 메모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중요한 대목을 ‘형광펜’이나 ‘포스트잇’으로 표시하면 금상첨화다. 커피는 좋은 양념이지만, 내게 음악은 집중을 방해하는 또 다른 즐길거리다. 몇 백 년 동안 책 읽기는 지식과 정보와 정서의 ‘수용’ 과정으로만 이해되지 않았고 나아가 저자의 생각에 대한 확인, 감탄, 개입, 확장, 논박, 토론 등의 ‘능동적 실천’으로 여겨졌다. 책 읽기란 저자와 독자의 상호작용, 더 정확히 말하면 ‘생각의 싸움’이고 ‘생각의 대련’이었다. 종이책 독자에게 책 읽기는 그런 과정이었다. (pdf 문서에도 ‘필기’를 할 수 있지만, 필기된 것을 다시 읽는 ‘물리적 경험’은 상당히 다르다는 점도 충분히 의식하고 있음.)

전자책은 어떨까? RISS에서 간단히 검색해 본 결과, 최소한 한국에서는 종이책과 전자책이 교육적인 면에서 각각 어떤 효과를 증대/퇴보시키는지에 대한 관련 연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이 부분은 언제든 업데이트 가능합니다). 일일이 열거하기 민망할 정도의 내용이어서 참조 내용을 밝히진 않겠지만(RISS에서 ‘전자책’과 ‘종이책’을 동시에 검색어로 설정한 결과를 참조했음), 국내 논문은 대체로 종이책과 전자책을 읽었을 때 독서 효과의 차이가 없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조사 방식과 범위, 표본 등에 있어 대부분 한정되어 있다. 짐작컨대, 전자책이 종이책의 ‘내용’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는 전제, 즉 그 둘이 ‘책’이라는 같은 유의 다른 종일 뿐이라는 전제가 깔린 듯하며, 전자 기기의 발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시대적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전자책 제작과 보급을 정당화하려는 목표가 연구를 제약한 듯하다(이런 점을 일일이 전거를 밝히며 비판하는 것은 시간 낭비로 보였음). 정작 중요한 쟁점인 독서 효과에 대한 실증적 연구는 없다시피 하다(최악의 경우, 초등학생 8명을 놓고 비교한 논문이 있다는 한심함). 같은 방식으로 검색한 결과, 국내 학위논문(석사, 박사)은 총 167건이 있었는데, 학술논문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 비교 연구를 설계하는 일부터가 대단히 난감할 수밖에 없다. 많은 개인적 지능차가, 그것도 세부 역량과 관련해서, 존재하는 실험군/대조군을 어떻게 ‘계량/측정 가능한’ 형태로 추출할 수 있겠는가? 나는 외국의 학술논문을 통해 이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이어지는 글에서 보고할 것이다. 외국에는 ‘인지과학’ 수준의 비교 연구가 꽤 진행되고 있으며, 몇 가지 살핀 후에 정리해서 알려드릴 예정이다.


전자책 읽기와 관련해서 ‘안과’와 ‘안경학’ 분야에서 진행된 몇 가지 흥미로운 연구가 있어 짚고 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눈의 능력 및 집중도가 읽기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긴밀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교육학이나 인지과학 분야가 아니라 ‘눈’이라는 몸의 관점에서 연구가 앞서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래 내용은 한 안경사의 블로그를 참고했음.)

(1) 김지혜, 엄지연, 성하나, 김소라, 박미정(2017), “종이책과 태블릿 PC를 통한 e-book 읽기 후 조절기능 변화”, 한국안광학회지 22[7]

이 논문의 국문 초록은 다음과 같다. “목적: 근거리 작업매체의 종류에 따른 조절기능의 변화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방법: 시기능의 이상이 없고 교정시력이 정상인 정상안 18세~29세(평균 23.4±3.2세) 30명을 대상으로 하였다. 실험실의 조도, 작업거리, 종이 크기, 글자 간격, 글자 크기 등 동일한 실험 조건에서 종이책과 태블릿 PC를 이용한 e-book 읽기 작업을 30분간 실시하였다. 실험 전 후의 최대조절력, 조절용이성, 조절래그, 음성상대조절 및 양성상대조절을 측정하여 분석하였다. 결과: 우위안과 양안의 최대조절력은 종이책과 e-book간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종이책에 비해 e-book 독서 후 비우위안의 최대조절력의 감소폭이 더 컸다. E-book 독서 후에는 양안의 조절용이성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절래그는 읽기 매체의 종류에 관계없이 변화 없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음성상대조절은 종이책과e-book의 차이가 없이 비슷한 변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양성상대조절은 종이책에 비해 e-book 독서 후 변화폭이 다소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 정상안의 태블릿 PC를 사용한 근거리 작업은 종이책과 비교하여 일부 조절기능의차이를 유발하였으며 개인에 따라 변화 정도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더 요약하면,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볼 때 수정체를 두꺼워지거나 얇아지게 하는 근육인 모양체근이 너무 힘들어하고 집중력도 떨어진다는 결과.

(2) 김지혜, 송성환, 김정민, 김소라, 박미정(2017), “종이책과 태블릿 PC를 이용한 e-book 읽기 후 자각증상과 읽기속도의 상관성”, 한국안광학회지 23[2]

이 논문의 국문 초록은 다음과 같다. “목적: 본 연구에서는 독서 후 자각증상 변화와 읽기속도의 상관성이 종이책 및 e-book에서 달라지는 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방법: 시기능과 교정시력이 정상인 18 ~ 29세(평균 23.4±3.2세) 30명을 대상으로 하였다. 종이책과 태블릿 PC를 이용한 e-book의 실험 조건이 모두 동일한 상태에서 30분간 독서를 실시하였다. CISS(convergence insufficiency symptom survey) 평가지를 이용하여 자각증상을 평가하였고 읽은 페이지 수와 장당 읽기속도를 측정하였다. 결과: 종이책의 읽은 페이지수가 e-book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E-book 독서 후 근거리 작업 유발 자각증상 총점이 증가하였고 개별 자각증상 중 피곤함에서 유의한 증가를 보였다. 독서시의 집중도와 관련된 자각증상 점수에서도 종이책에 비해 e-book의 자각증상이 유의하게 높았다. 독서와 관련된 자각증상 점수가 증가할수록 읽기속도가 느려지는 상관성을 보였다. 독서 후 폭주부족 자각증상을 나타낸 대상자의 경우 종이책과 e-book 모두 자각증상이 읽기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종이책에 비해 e-book 독서 후 자각증상과 읽기속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상관성을 보여 e-book으로 인한 자각증상이 읽기속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론: E-book을 이용한 독서는 종이책과는 다른 정도의 자각증상 및 읽기속도 변화를 유발하며, 개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자각증상 및 읽기속도의 상관성은 독서로 인해 유발되는 폭주기능 저하 여부와 관련이 있음을 제안한다.”

더 요약하면, 같은 시간(30분)에 전자책보다 종이책에서 더 많이 더 빠르게 읽으며, 근작업 관련 자각증상(눈 피로, 눈의 불편감, 두통, 졸림, 안통, 작열감, 당김, 복시)이 더 많고, 집중도(기억, 혼동, 읽기 효율, 흐림, 멍함(스턴), 내용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읽는 일 측정)가 떨어진다는 결과.

(3) 박미정, 안영주, 김수정, 유지영, 박경은, 김소라(2014), “Changes in Accommodative Function of Young Adults in their Twenties following Smartphone Use(스마트폰 사용에 따른 20대 성인의 조절기능 변화)”, 한국안광학회지 19[2]

이 논문의 국문 초록은 다음과 같다. “목적: 본 연구에서는스마트폰을 이용한 근거리 작업 시 조절 기능의 변화가 유도되는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방법: 20대의 총 63명 (남성 26명, 여성 37명)을 대상으로 조절 기능과 교정 전 등가구면도수를 측정하여 대조군 값으로 하였다. 실내조명 아래에서 연구대상자들에게 30분 동안 책을 읽게 한 후 30분간의 휴식 시간을 가지게 하고 순차적으로 동일한 시간 동안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게 하거나 작업순서에 따른 오차를 배제하기 위하여 반대의 순서로 영화보기와 책읽기를 하게 하였다. 연구대상자들의 조절기능은 1) 최대조절력, 2) 조절 용이성, 3) 양성 및 음성상대조절, 4) 조절 래그 및 교정하지 않은 등가구면도수를 각 작업 후에 다시 검사하고 대조군 값과 비교하였다. 결과: 단안 최대조절력은 독서 후와 비교하여 스마트폰 시청 후 유의하게 감소하였다. 단안 및 양안 조절용이성은 독서나 스마트폰 사용 후 모두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는 아니었으며, 양성상대조절값은 독서나 스마트폰 사용 후 모두 유의한 변화가 없었다. 스마트폰 사용 후 음성상대조절 값은 독서 후와는 달리 거의 변화가 없었다. 스마트폰 사용 후 조절래그 값은 독서 후의 경우보다 유의하게 높았다. 결론: 30분 동안의 스마트폰을 사용한 근거리 작업은 일부 조절기능의 변화를 유발하였으며, 그 변화는 동일한 작업 환경에서의 독서 시 보다 유의하게 컸다.”

더 요약하면, 독서 후보다 스마트폰 사용 후 모양체근 힘 주기가 더욱 힘들어졌고, 모양체근에 힘을 줬다 뺐다 하는 효율이 줄어들었고, 외부 조절 자극에 필요한 만큼 반응하지 못했다.

(4) 노현진, 김현진, 정재영, 박상욱, 서한별, 유희라, 최아영, , 박미정, 김소라(2019), “읽기 매체에 따른 시기능 정상안 및 이상안의 양안시기능 변화”, 한국안광학회지 24[2]

이 논문의 국문 초록은 다음과 같다. “목적: 본 연구에서는 동일한 거리에서 읽기 매체를 달리하여 독서하게 한 후 정상안과 시기능이상안의 양안시기능의 변화와 자각증상의 차이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방법: 안질환이 없고 교정 또는 나안시력이 0.8 이상인 만 18세~31세의 남녀 99명을 시기능에 따라 정상안, 조절과다, 조절용이성이상 및 폭주부족안으로 분류하고 33명을 최종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모든 실험조건이 동일한 상태에서 종이책과 태블릿 PC를 이용한 e-book으로 30분간 독서하게 하였다. 독서 전후 양안시기능을 평가하였으며, CISS 평가지를 이용한 설문조사로 자각증상을 평가하였다. 결과: 정상안과 조절용이성부족안의 폭주근점은 독서 후 모두 멀어지는 경향을 나타내었으며, 그 정도는 e-book 독서 시 더 크게 나타났다. 폭주부족안의 폭주근점은 독서 후 유의하게 가까워졌으나 읽기 매체 간의 차이는 없었다. 근거리 사위도는 e-book 독서 후 조절과다안을 제외하고 내사위화되는 경향을 나타내었다. 종이책 독서 후에는 조절과다안을 제외하고는 AC/A비에 별다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으나, e-book 독서 후에는 조절용이성부족안과 폭주부족안에서는 감소된 AC/A비, 조절과다안에서는 증가된 AC/A비가 관찰되었다. 음성상대폭주는 시기능 이상 여부에 관계없이 종이책 독서 후에는 증가의 경향을 보였던 반면, e-book 독서 후에는 감소의 경향을 나타내었다. 양성상대폭주는 조절과다안을 제외하고 e-book 읽기 후 더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내었다. E-book 독서 후 자각증상의 점수가 시기능 이상 여부에 관계없이 종이책보다 높게 나타났으나 시기능 이상의 분류에 따라 특징적인 자각증상은 달랐다. 결론: 동일한 조절 및 폭주자극의 근거리 작업이라 하더라도 작업의 구성 및 환경에 따라 양안시기능의 변화가 다르게 나타나며, 시기능 이상 여부에 따라서 그 양상이 달라져 결과적으로 자각증상의 차이를 유발함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시기능 이상안이 근거리 작업을 할 경우에는 작업환경에 따라 상이한 양안시기능의 변화가 유발될 수 있으며 자각적 피로도의 정도와 양상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더 요약하면, 모양체근 힘 주기와 눈 모음의 동시 작동 능력이 약해지고, 눈을 모아주는 근육이 과도하게 작동하여 잘 풀리지 않으며, 모양체근과 외안근(내직근) 능력이 부족한 눈에서 모양체근 힘 줄 때 눈 모으는 능력 감소하고, 모양체근의 힘이 센 눈은 힘을 너무 주는 바람에 눈이 너무 많이 모이며, 모양체근 힘 준 상태에서 눈 벌리는 능력 감소하고, 모양체근 힘 준 상태에서 눈 모으는 능력 증가하며, 각종 피로감 증가한다는 결론.

안경학에서 연구한 결과를 종합하면: 종이책 대비 전자책을 읽을 때 모양체근과 외안근의 기능 이상, 근 효율 저하, 피로감 유발, 집중력 저하.

(3편에 계속)

(3편 추가: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3편) : 종이책은 완성된 기술이다])

(4편 추가: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4편) : 논문 “디지털 시대의 동적 읽기: 인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2023) 정리 (1/2)])

(5편 추가: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5편) : 논문 “디지털 시대의 동적 읽기: 인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2023) 정리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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