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4편) : 논문 “디지털 시대의 동적 읽기: 인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2023) 정리 (1/2)

(앞선 글: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1편)”]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2편) : 국내 연구 현황]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3편) : 종이책은 완성된 기술이다])

 

이제부터 2회에 걸쳐 랴오, 유, 크루거, 레이츨이 쓴 “디지털 시대의 동적 읽기: 인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Dynamic reading in a digital age: new insights on cognition)”(2023),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January 2024, Vol. 28, No. 1의 내용을 검토해 보겠다. 이 논문은 그동안 연구된 논문들을 검토한 일종의 메타 연구다.

제목에 있는 ‘동적 읽기(dynamic reading)’는 ‘정적 읽기(static reading)’와 대립한다. 정적 읽기는 종이책, 즉 책, 잡지, 신문을 지칭하며, 동적 읽기는 디지털 시대에 새로 등장한 전자책, 즉 스크린을 통한 읽기를 가리키며(컴퓨터 화면, 전용 전자책 리더, 스마트폰, 태블릿), “하이퍼텍스트, 동영상 자막, 디지털 화면의 텍스트 스크롤을 포함하는 동적, 상호작용적, 멀티모달 텍스트”(p. 43)를 읽는 일이다. 저자는 종이책과 전자책의 유사성과 차이를 ‘정신 과정(mental processes)’을 찾아내려 한다.

전자책 열등 효과와 변인들

읽기의 바탕에 깔린 몇몇 핵심 과정(읽기의 시각적 및 주의력 제약 조건, 시선에 따라 움직이는 창 패러다임, 눈동자 움직임 등)을 보면, 언어, 표기법, 장르, 목표가 다르더라도 종이책 읽기와 전자책 읽기 사이에 핵심 정신 과정에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읽기 결과(이해도)와 읽는 행동 측면에서 몇 가지 차이가 관찰된다.

숙련된 독자(skilled reader)의 텍스트 이해도는 종이책보다 전자책에서 더 나빴다(p. 46). 이것이 “전자책 열등 효과(screen-inferiority effect)”다. 전자책 열등 효과는 “텍스트 자체(가령 장르), 텍스트를 읽는 맥락(가령 시간 압박이 있느냐 없느냐), 독자 자신(숙련도 여부) 같은 성질”에 따라 달라진다. 전자책 열등 효과는 아동과 성인 모두에게서 ‘이야기(narrative) 텍스트’를 읽을 때보다  “신중한 처리 나 내용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정보 텍스트(informational text)를 읽을 때” 가장 자주 관찰된다. 또한 대학생이 설명문(expository)을 읽을 때, 개요 파악에는 종이책과 전자책이 차이가 없지만 전자책보다 종이책으로 읽을 때 세부 사항을 기억하는 데 유리하다.

시간 제약이 없을 때(스스로 속도 조절 가능)보다 시간 제약이 있을 때 전자책 열등 효과가 더 크다.  긴 텍스트는 종이책과 전자책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짧은 텍스트를 주고 다양한 문제(가령 논리 문제)를 풀라고 하면, 종이에서 작업한 학부생보다 컴퓨터에서 작업한 학부생이 “성공률은 낮고 자신감은 과장된(가령 자신의 능력을 더 부정확하게 예측)”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는 시간 제약이 있을 때만 그러했다(p. 47). 저자들은 시간 제약이 있으면 사람들을 “더 얕거나 피상적인 읽기 모드”로 몰고 가고, 이는 문자 메시지 확인, 소셜미디어 담벼락 스크롤, 대량 이메일 공지사항 읽기에서 자연스럽게 적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고 원인을 추정한다.

읽기의 숙련도도 중요하다(p. 47). 연구에 따르면, 초등 고학년(만 10-13세)의 경우, 읽기 이해력이 높으면 시간 제약과 상관없이 읽기 미디어에 영향을 받지 않지만, 읽기 이해력이 낮으면 시간 제약이 있을 때 종이책에 비해 전자책의 이해도가 낮아진다. 한편 읽기를 막 배우는 아이들(만 6-8세)도 단어 읽기 숙련도가 넢으면 읽기 미디어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저자들은 읽기 이해력이 메타인지 기술(가령 자신의 이해력을 모니터할 수 있는 능력)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읽기 숙련도가 낮은 학생은 메타인지 기술이 부족해서 시간 제약이 있을 때 유발되는 이해력 문제를 수정하지 못하는 것을 전자책 열등 효과의 원인으로 추정한다.

또 다른 흥미로운 연구에 따르면,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는 “독자의 잘못된 정보에 대한 민감성(sensitivity)”에도 영향을 준다(p. 47). 우선 잘못된 정보(가령 ‘고의로 불이 났다’)를 담은 글을 읽고 다음 글(가령 ‘벼락이 쳐서 불이 났다’)에서 정정되었는지 여부를 물으면, 종이로 읽을 때보다 스마트폰으로 읽을 때, 특별히 깨우쳐주지 않으면 “앞에서 읽은 잘못된 정보에 대한 이해를 효과적으로 수정”하지 않는 경향이 높다.

전자책 열등 효과의 가능한 원인들

1) 얕은 처리 가설(shallowprocessing hypothesis)(pp. 47-48)

디지털 기술과 직접 관련된 요인(가령 눈 건조 유발, 시각적 피로)이 전자책 열등 효과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텍스트 깊이의 저하나 메타인지 처리와 연관된 인지 요인들”(p. 47)도 원인으로 추정된다. 얕은 처리 가설에 따르면, 디지털 텍스트의 얕은 처리가 습관이 되어 다른 디지털 텍스트(가령 온라인 뉴스 기사)를 읽기로 일반화되었고, 그리하여 이해력을 악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텍스트의 요지를 더 빠르게 뽑아내기 위해 자발적 전략으로 채택되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 멀티태스킹을 자주 사용하게 되면서 주의력 유지와 작업 기억의 축소“를 유발했다.

용어 설명: 얕은 처리 가설은 “많은 디지털 미디어(가령 트위터와 페이스북) 사용은 종종 짧은 텍스트에 대한 빠르고 피상적인 상호작용을 낳고, 이는 역으로 사람들이 디지털 콘텐츠를 더 피상적인 방식으로 처리하도록 만든다.”(p. 47)

얕은 처리 가설은 “독자가 디지털 텍스트에 덜 참여한다”는 증거와도 일치한다. 중학생 조사에서, 정보가 있는 텍스트를 읽을 때, 유사한 표시 수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자책보다 종이책에 더 많이 표시한다. 이는 전자책보다 종이책에 더 많이 참여한다는 징표다. 또한 안구 추적 연구를 보면, 대학생이 비슷한 분량과 가독성의 텍스트를 읽을 때 종이책보다 전자책에서 텍스트에 시선을 덜 고정한다. 삽화가 있는 텍스트를 읽을 때도 종이책보다 전자책에서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에 시선 이동이 적으며, 그 결과 읽은 다음에 측정해 보면 텍스트와 이미지 간의 통합 처리가 덜 일어난다. 한편 삽화가 있는 텍스트를 비슷한 시간 동안 읽게 했을 때, 전자책으로 읽은 참가자는 첫 번째 읽기에 시간을 더 많이 썼지만 다시 읽기는 거의 안 한 반면, 종이책으로 읽은 참가자는 처음 읽기와 다시 읽기에 거의 비슷한 시간을 썼다. 전자보다 후자가 “읽기 실수를 교정”하는 다시 읽기에 참여했기 때문에 아마 이해도가 높아졌을 것 같다.

2) 메타인지 조절(metacognitive regulation)(pp. 48-49)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읽을 때 “독자가 메타인지 조절이 빈약하다”는 점이 전자책 열등 효과의 또 다른 원인으로 보인다. 메타인지 조절은 “특정 과제(가령 학습 성취)에 대한 참가자의 예측 수행과 실제 수행 간의 차이”를 계산함으로써 측정된다.  메타인지 조절은 읽기 이해를 비롯해 “더 나은 다양한 교육 활동 성과”와 연관된다. 얕은 처리 가설과 메타인지 조절을 종합하면, 종이는 “열심히 읽기(effortful reading)”에 적합한 미디어고 스크린은 주로 “사회적 오락적 목적”에 쓰인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전자책을 읽는 동안에는 효과적인 자기 조절에 필요한 인지 자원을 더 적게 사용”하게 되는 것 같다.

용어 설명: 메타인지 조절은 “메타인지 캘리브레이션(metacognitive calibration)이라고도 알려져 있으며, 자신의 수행을 정확하게 모니터해서 과제 목표에 따라 자신의 수행을 조절할 수 있는 핵심 기술(crucial skill)을 가리킨다.”(p. 44)

실제 난이도는 같지만 과제의 중요도가 다르게 제시되어, 가령 예비 과제(즉, 중요도 인식을 낮춤)와 본 과제(즉, 중요도 인식을 높임)로 조작했을 때, 종이책 집단보다 전자책 집단이 “실제 수행을 예측하는 데 있어 더 낮은 성공률과 더 낮은 정확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 전자책 열등 효과는 덜 중요하다고 인식된 첫 번째 과제에서만 관찰되었다. (즉, 중요하다고 여겨진 과제는 전자책 집단도 더 집중했다는 뜻이다. – 해설자.) 한편 종이책 집단은 시간 제약이 있을 때 과제와 관련 없는 생각의 비율로 측정되는 “마음의 방황(mind wandering)의 빈도”가 감소했지만, 전자책 집단은 시간 제약과 무관하게 같은 수준의 마음의 방황을 보였다. 결과를 종합하면, 전자책 독자는 과제 요구의 증가에 주의를 덜 기울이며, 따라서 읽기 행동을 모니터하고 조절하는 데 덜 효과적이다.

3) 감각-운동 참여(sensorimotor engagement) (pp. 48-49)

전자책 독자보다 종이책 독자가 “책을 읽을 때 일어난 사건을 더 잘 장소화(localizing)한다.” 추정컨대 “종이책 독자는 시각적 단서(가령 쪽수)뿐 아니라 손 움직임에 의해 생기는 촉각과 고유감각의 단서(가령 왼쪽과 오른쪽이 무게가 달라지면 독자는 읽기 과정을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도 사건에 대한 공간적 연대기적 정보를 얻는다.” 반면, 전자책 독서에서는 사건을 장소화할 단서가 거의 없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지금 연재의 3편을 참고. 해설자)

 

(해설 및 연재 계속)

(5편 추가: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 책의 일그러진 비유일 뿐이다 (5편) : 논문 “디지털 시대의 동적 읽기: 인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2023) 정리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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