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논문이란 무엇인가? (주로 인문사회계열에 해당)

오늘날 유통되는 ‘논문’ 혹은 ‘학술논문’은 엄격한 형식과 규범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 형식이 통용된 게 채 100년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왜 그 형식에 집착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학자 대부분이 한국어로 논문을 쓴다는 점을 고려하고, 어차피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읽을 수 없다는 한계까지 염두에 두면, 왜 외국어로 된 논문과의 차별성을 그토록 강조해야 하는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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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팔레스타인 문제

근래에 봤던 논문/저서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논문 하나를 읽었다. Kathryn Medién, “Palestine in Deleuze” (2019), Theory, Culture & Society, Vol. 36(5), 2019, p.45-70. DOI: 10.1177/0263276418816369. (검색하면 원고 pdf를 쉽게 찾을 수 있음. 또한 어떤 분이 한글로 친절하게 번역해 놓아서 참조 가능함.) 이 논문은 들뢰즈의 저술 몇 편(1978, 1982, 1983, 1988)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국가가 건국되면서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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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의 개방성의 딜레마?

보편적 언어란 없다. 자기가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구체어가 있을 뿐이다. 가령 내 경우라면, 한국어. 물론 한국어도 단일한 보편어가 아니다. 한국어는 지역, 연령, 성별, 계층, 학력, 국적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조합된 여러 언어의 집합이다. 이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저 요인들이 뒤얽혀 형성하는 집단마다 같은 한국어일지라도 맥락과 의미가 달라진다. 가령 ‘정의(justice)’라는 말의 정의(definition)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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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가 ’유목‘ 대 ’국가‘, ’전쟁기계‘ 대 ’포획장치‘를 말한 이유

들뢰즈가 ‘유목’ 대 ‘국가‘’, ‘전쟁기계’ 대 ‘포획장치‘’를 말할 때, 가장 중심에는 공간의 문제가 있다. 나는 “매끈한 공간 대 홈 파인 공간 : 전쟁기계, 또는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 들뢰즈의 공간의 정치철학” (2018.12)에서 이 공간의 문제를 개략적으로 살핀 바 있다. 유목과 전쟁기계는 홈 파인 공간을 매끈한 공간으로 만드는 삶의 방식이자 운동인 데 반해, 반면 국가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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