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이 공통되며 반복되는 것에 주목하지 않아서 자연과학 같은 ‘과학’이 되지 못했다는 타르드의 지적은 다른 학문 연구에서도 뼈아프게 새겨들어야 한다.
타르드는 인간 활동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모방’에 주목한다. 들뢰즈 식으로 표현하면 ‘차이와 반복’의 자리에 ‘발명과 모방’을 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모방이 작건 크건 발명과 발견에서 출발하는 건 사실이지만, 최초의 발명과 발명이 의미를 갖는 건 모방됨에 의해서다. 모방되지 않은 발명과 발견은 곧 소멸한다. 소멸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사본이 생겨나야 한다. 사회학 수준에서 모방은 발명과 발견과 동등한 자격을 갖는다.
우리는 새로운 가치의 발생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현대는 최초의 발생자에게 과도한 보상을 하는 경향이 있다. 타르드의 통찰은 발생된 가치가 전파되지 않으면 가치로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았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타르드의 이 통찰을 ‘네트워크 효과’라는 현상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네트워크 효과를 네트워크 참여자가 산술적으로 증가하면 효과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전화기 10명이면 10명 사이에 망이 형성되지만 100명이면 망의 크기가 10배가 아니라 100배로 증가하는 식(그림 참조). 여기서 전화기의 발명자는 얼마의 몫을 기여했고, 참여자(모방자)는 얼마의 몫을 기여했는가?
지금까지는 참여자의 기여를 발명자가 흡수하는 형태로 이윤이 분배되었다. 참여자는 ‘통화’라는 혜택을 누린 것으로 충분하다는 식이다. 이게 적절한 계산법일까?(그렇다고 참여자가 웹3 형태로 분배받을 수 있다는 전망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하나 더. 네트워크 확장에 기여한 (편의상 표현하면) 망 건설자는 어떤가? 이용자 개개인이 일정한 비용을 지불해서 그걸 이윤으로 가져가는 것으로 충분한 보상을 얻는 걸까? 물론 과금되는 비용에 따라 답은 달라질 것이다. 요점은 망 건설자의 기여도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발명가, 망 건설자, 참여자를 아우르는 거버넌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망 건설에는 결국 사회 전체 혹은 국가(범국가)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처음 전신망이 건설될 때 사기업이 전신 망을 건설한 건 맞지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관리하고 보호해준 건 정부(들)였다.
모방의 중요성은 빅테크의 분배 논리를 다시 생각할 여지를 준다. 또한 숨어서 혹은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정부의 역할, 특히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미국 정부의 역할도. 미국 정치인을 미국 국적자만 선출하는 것은 이런 면에서도 부당한데. 이 문제에 대해선 답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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