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가 ‘유목’ 대 ‘국가‘’, ‘전쟁기계’ 대 ‘포획장치‘’를 말할 때, 가장 중심에는 공간의 문제가 있다. 나는 “매끈한 공간 대 홈 파인 공간 : 전쟁기계, 또는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 들뢰즈의 공간의 정치철학” (2018.12)에서 이 공간의 문제를 개략적으로 살핀 바 있다.
유목과 전쟁기계는 홈 파인 공간을 매끈한 공간으로 만드는 삶의 방식이자 운동인 데 반해, 반면 국가와 포획장치는 모든 공간에 홈을 파서 틀에 박힌 삶과 운동을 강요한다. 자본주의가 온 세상에 ‘자본과 이윤’에 따르도록 하는 홈을 판 것은 잘 알려져 있거니와, 우리의 삶과 행동은 온통 이 홈을 따를 수밖에 없다.
유목과 전쟁기계는 기왕에 파인 홈을 메우며 다시 매끈한 공간을 만든다. 그렇다면 굳이 ‘전쟁기계’라는 명칭을 쓴 까닭은 무엇일까? 들뢰즈는 전쟁기계, 즉 ‘무기’의 근원에는 ‘전쟁’이라는 목표에 앞서 ‘공간을 매끈하게 만드는 기계‘’가 있다고 본다. 이는 유목민의 발명이다. 다만 국가가 유목민의 활동을 제약해서 충돌을 일으키거나 국가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전쟁기계를 점유하면, 전쟁기계는 원래의 목표가 아닌 ‘전쟁’을 목표로 삼게 용도가 변경된다. 왜냐하면 들뢰즈가 열거하는 전쟁기계의 주요 사례는 수레, 야금술, 인력 운용법, 병참(즉, 오늘날의 ‘택배’) 기술, 농경술 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종이도 전쟁기계다. 이것들은 ‘전쟁’을 목표로 전용될 수 있지만(물론 그렇지 않은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원래의 목적이 ‘해방적’ 성격을 갖는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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