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과타리의 ‘전쟁 기계’의 의미

학술대회 발표 준비차, 간만에 들뢰즈·과타리의 《천 개의 고원 》의 몇 대목을 읽었다. ‘리토르넬로’ 고원과 ‘결론’. 특히 결론에서 두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발견과 함께, 《천 개의 고원 》을 꼼꼼히 통독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20년 넘게 부분독만 했으니 몸과 머리가 더 굳기 전에 통독이 필요하긴 하다.

첫째 발견. 영어본에서 conjunction이 conjonction의 번역어이면서 동시에 conjugaison의 번역어이기도 하다는 점. “우리는 conjugaison과 connexion을 아주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종종 동의어로 취급했지만,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것들을 대립시킨다.” (참고: c’est en ce sens que nous opposions conjugaison et connexion, bien que nous les ayons souvent traitées comme des synonymes d’un point de vue très général. – MP 636. it is in this sense that we have opposed conjunction to connection, although we have often treated them as synonyms from a very general point of view. – ATP 510.) 영어본을 읽을 때 주의가 필요하하며, 또한 conjonction, conjugaison, connexion의 의미 차이를 세밀하게 구별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둘째 발견. 사실 이게 더 중요한데, ‘전쟁 기계’ 개념의 의미를 들뢰즈·과타리가 언급했다는 점. 해당 대목은 다음과 같다.

“특히 우리는 인간 형태이며 이형조성적인 두 개의 큰 배치체인 전쟁 기계와 국가 장치를 고려했다. 본성상 다를 뿐 아니라 “바로 그(la)” 추상적 기계와 관련해서 서로 다르게 양화된다는 점에서도 이 두 배치체가 중요하다. (…) 이 두 배치체와 각각의 계수들을 분석하면, 전쟁 기계는 그 자체가 전쟁을 목적으로 삼지 않지만 국가 장치에 의해 전유될 때는 반드시 이 목적을 취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바로 정확히 이 지점에서 도주선과 이 선이 가동하는 추상적 생명선은 죽음과 파괴의 선으로 전환한다. 따라서 전쟁 “기계”(여기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는 그것의 변신 역량을 잃게 만드는 국가 장치보다 추상적 기계에 훨씬 더 가깝다. 글과 음악은 전쟁 기계일 수 있다.”(한글본 974~975; MP 639; ATP 513)

요약하면, 전쟁 기계는 국가 장치가 포획해 자신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면 변신 역량을 발휘하는 창조 기계다. 사실 전쟁 기계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그림도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설명: 나무로만 만들어진 유목민 전차, 알타이, 기원전 5~4세기. 한글본 669; MP 434; ATP 351]

이 때문에 “전쟁 ‘장치“가 아니라 “전쟁 ‘기계‘”라고 명명한 것이다. 기계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과 이해가 필요하지만 후일로 미루기로 한다.

One thought on “들뢰즈·과타리의 ‘전쟁 기계’의 의미

  1. 그림의 유목민 전차는 물건을 운반하는 이동 수단으로, 유목민의 발명을 대표한다. 수레를 실질적인 운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유목민이었다. 양떼를 몰아야 했던 유목민은 1년에 고작 50km 정도를 이동했지만, 말이 모는 수레를 이용하면서부터는 수레에 실은 텐트, 식품, 물에 의지해 한 번에 몇 주에서 몇 달을 이동하며 유라시아 초원 곳곳을 넘나들 수 있었다. 이런 원거리 이동은 언어(인도유럽어족)의 전파와 교류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유목민은 유라시아를 서로 연결되지 않은 문화 집합체에서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행시켰다. 전차는 전적으로 속도만을 위해 고안한 최초의 바퀴 달린 수레였다. (참고: 데이비드 W. 앤서니, 《말, 바퀴, 언어》, 공원국 역, 에코리브르,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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