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는 분류의 달인이다. 거의 모든 책을 분류로 이끌어간다. 그의 분류는 사후적이다. 즉, 이미 분류를 끝내놓고 나서 그 분류를 출발점으로 삼는 서술을 보여준다. 아래에 몇 개의 예를 들 수 있는데, 이는 명시적으로 도식이 등장하는 예일 뿐, 사실상 모든 저술에서 분류 표를 만들자면 만들 수 있다. 《니체와 철학》(1962) 《베르그손주의》(1966)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1968) 《안티 오이디푸스》(1972), 과타리와 공저 《시네마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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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February 2024
[짧은 철학 상식] 스피노자가 사용한 언어는? 사과나무 이야기의 진실은?
오늘은 스피노자와 관련된 몇 개의 에피소드를 익혀 보아요. 스피노자는 어떤 말을 사용했을까? 네덜란드 사람이니 당연히 네덜란드어일 거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포르투갈어였다. “물론 스피노자 가족이 사용했던 말은 포르투갈어였다. 최소한 그 집안의 남자들은 문학적 언어인 에스파냐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히브리어로 기도했다.”(스티븐 내들러, 『스피노자. 철학을 도발한 철학자』, 김호경 옮김, 텍스트, p. 116)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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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훈 교수의 반론에 보태] 가짜의 역량이다
“들뢰즈와 니체, ‘거짓의 역량?’, 아니, ‘가짜의 역량’”이라는 글에 정대훈 교수가 다음과 같은 논평을 보탰다. 토론은 언제나 환영할 일이다. “‘가짜’도 좋은 번역어지만 ‘거짓’도 원의에 충실한 면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가짜’든 ‘거짓’이든 존재론적이면서도 인식론적인 준거점인 ‘진짜’ 혹은 ‘참/진실’을 상정한 채 하위의 혹은 가치 없는 것을 나타내지만, 니체와 들뢰즈는 ‘가짜’ 혹은 ‘거짓’이 더이상 이러한 위계질서에 종속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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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연구자들의 기만에 속지 않는 법
철학 연구자들의 기만에 속지 않는 법. 첫째, “변증법적 통일” 얘기 나오면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실제로는 자기도 모른다는, 뭘 말하고 있는지도 뭘 말해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아무 생각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둘째, 뭘 좀 물어보면 “이게 철학이라서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또는 “철학사를 깊게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텐데” 하며 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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