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생명 : 또는 ‘박노자’ 비판

이번 포스팅은 많은 지지층을 가진 글쟁이 ‘박노자’ 교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써놓았던 글이지만,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번 ‘김훈’을 비판한 글도 포스팅했지만(김훈의 수사벽), 저는 대중적 지지를 받는 이들을 심하게 비판할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비판한다 해도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만) 그 행위를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서로 비판(인신공격 말고요)하고 반박하는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이었던가, 아니면 다른 칼럼이었던가, 잘 기억나진 않는다. 아무튼 그의 글 중에 호국불교에 대한 강한 비판이 있었다. 불교 사상의 핵심이 생명 존중인데(살생의 금지도 포함한다), 이유야 어쨌건 살생을 일삼은 호국불교의 전통을 찬양하는 것은 국가주의에서 비롯된 이율배반이라는 것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비판에서 이상한 점을 왜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지 늘 궁금했다.

사실 박노자는 한국에 와서 쉽게(?) 교수활동을 하게 되었으니 소장 학자의 자잘한 고민과 고통도 모를 것이고 한국의 독특한 대학원 시스템과 교수 임용 과정도 몸소 겪진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그의 입장이 지나친 순수주의요 근본주의라고 생각되는 까닭은 그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저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하니 큰 소리로 말하진 않겠다.

아무튼 내가 이상하게 여긴 대목은 불교가 보이는 인간중심주의적 행태이다. 이를테면 동물과 식물을 차별하고, 특별히 동물을 우대하는 그런 대목. 아마 내가 불교의 심오한 면모를 몰라서 이렇게 어림짐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초기불교에서는 육식까지도 일정 범위에서 허용했다 하니, 내가 비판하는 건 제도화된 근래의 불교이리라). 채식주의자가 범생명존중사상 때문에 채식주의를 택했다면 그건 정당하지 못하다. 식물도 생명이므로. 아마도 다른 배려와 선택이 그를 채식주의자가 되게 했어야 옳다. 가령 현대 사회의 육식이 가져오는 생태계 파괴라는 측면 따위. 그렇지 않다면 채식주의건 불교건 사상으로서 정직하지 못한 것이리라.

하나 더 덧붙이자면, 박노자의 논의에는 ‘국가가 먼저냐 종교가 먼저냐’ 하는 물음에 종교보다 국가를 택했다는 점을 국가주의로 비난하는 대목이 있다. 물론 나는 국가주의자가 아니다. 허나, 인간은 영토에 종속된 존재라는 점은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고 본다. 그 영토가 초토화될 때 이른바 상부구조인 종교는 설 땅이 없어진다. 특히나 종교 제도라는 권력은.

박노자의 생각에는 ‘힘의 관계’라는 개념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특히 그가 우리 사회를 비판할 때는 묘한 느낌이 엇갈린다. 이방인의 시선에서 까발려진 부끄러움과 이방인의 시선이 주는 무례함. 시간이 갈수록, 그의 목소리엔 교수의 거리감이 느껴지고 구체적인 삶이 증발해버린 듯한 의구심이 커진다. 즉 비판을 위한 비판, 글 쓰기 위한 글이라는 느낌이.

 

(2018.03. 마지막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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