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과 달리 철학자들은 ‘개념의 창조자’로서 나름의 철학적 문제와 지반(plan)에서 개념을 쓴다. 따라서 철학책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철학자의 용어법을 먼저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다. 다른 철학자의 개념은 항상 굴곡되어 재전유된다.
한 철학자의 글을 다른 철학자의 개념틀로 읽으려 하면 도무지 말도 안 되고 이해 불가하며 심지어 모순되기까지 하겠지만, 철학 읽기의 재미와 기술은 철학자들 사이의 바로 그 자유로운 넘나듦에 있다고 하겠다. 이게 안 되면 철학 읽기와 공부는 황이다.
철학 읽기란 개념으로 표현된 한 철학자의 사고 안으로 뛰어들어 익사하지 않고 다시 나와 자기 말로 그 체험을 번역하는 일이다. 그러나 도중에 익사하거나 다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점도 지적해 두어야 하겠다.
(2012년 3월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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