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여자인가? 페미니즘의 한 경향에 대한 비판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를 여자로서 지지했던 한국 페미니즘의 한 경향이 있었다(관련 기사: “나는 박근혜를 찍겠다” 페미니스트의 지지 그 후 13년, 2015년 기사).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한 좋은 답을 제공하는 것은 50년도 더 전의 들뢰즈·과타리다. 《안티 오이디푸스》가 출간된 이듬해 봄에 진행된 한 인터뷰에서 들뢰즈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가난한 아이 혹은 부자 아이로 정치화된다. 아이는 정치적으로 성화된다(sexué). (…) 성화된다는 것은 자신이 부자로 살거나 가난한 자로 산다는 것을 뜻한다. 여자아이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녀를 고용주의 딸 혹은 바텐더의 딸 등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 아이의 성(sexualité)은 가족의 틀 안에 있지 않다. 아이의 성은 하녀, 부잣집 여자, 가난한 여자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그걸 파악한다. 따라서 아이는 정치적으로 성화된다.”(G. Deleuze, “Entretien sur L’Anti-Œdipe“(1973), Letter et autres textes, 2015, p. 239. 영어본, p. 239. 한글본 번역은 오류가 많음.)

쟁점은 이거다: 성(sexualit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타고난 생물학적 성은 얼마까지 유효한 기준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정치적 성화’라는 말로 요약된다. 생물학보다 정치가 규정력을 갖는다는 말이다. 중요한 건 박근혜나 힐러리 클린턴이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점이 아니라, 이들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이다. 고용주의 딸과 바텐더의 딸, 부잣집 여자의 딸과 가난한 여자의 딸 사이의 차이는 고용주의 아들과 바텐더의 아들, 부잣집 여자의 아들과 가난한 여자의 아들 사이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이 구분은 동물행동학(ethologie)으로서의 윤리학(ethique)을 말할 때와 똑같다. “경주마와 짐말의 차이는 짐말과 소의 차이보다 크다.”(들뢰즈·과타리, 《천 개의 고원》, 원서 314쪽, 한글본 487쪽; 관련 글: 사물도 지각할 수 있을까?)

들뢰즈·과타리가 견지하는 일관된 입장은 타고난 것(생물학)과 형성된 것(정치) 중에서 후자가 항상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들뢰즈의 ‘마조히즘’의 의미이기도 하다(《천 개의 고원》의 여섯 번째 고원 참조). 여기서부터 어려워지는데, 정치가 한 가지 의미만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거칠게 구분하면, 파시즘 대 혁명, 정신분석 대 분열분석, 예속 대 해방 등 서로 다른 경향성을 띤 두 종류의 정치가 있다. (들뢰즈의 정치철학에 대해서는,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 들뢰즈 철학 입문 [느티나무책방] (2016.06) 및  “무의식을 생산하라: 들뢰즈의 정치철학”, 철학, 혁명을 말하다: 68혁명 50주년 [이학사] (2018.10)를 참조.)

박근혜가 ‘여성’이라는 통념은 들뢰즈·과타리에 따르면 대표적인 착오다.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화’된다. 게다가 꼭 인간과 생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n개의 성”이 있다. 각자에게 n개의 성 중에 자신의 성을 찾게 해주는 것이 가장 정치적인 실천이다.

“어디에나 현미경적 횡단-성욕이 있어서, 여자 속에 남자만큼 남자들이 들어 있게 하고 또 남자 속에 여자만큼 여자들이 들어 있게 하되, 남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또 여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두 성의 통계적 질서를 뒤집는 욕망적·생산적 관계들 속에 들어갈 수 있게 한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하나만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나아가 둘을 하는 것도 아니며, 수천수만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욕망 기계들 또는 비-인간적 성이다. 즉 하나의 성이 아니요, 두 개의 성도 아니라, n개의 성이다. 사회가 주체에게 강요하고 주체 자신도 자기 자신의 성욕에 대해 받아 들이는 의인적 재현을 넘어, 분열 분석은 한 주체 안에 있는 n개의 성의 다양한 분석이다. 욕망적 혁명의 분열-분석적 공식은 무엇보다 이럴 것이다. 곧, 각자에게 자신의 성들을.”(《안티 오이디푸스》 원서 352쪽)

  • 선거의 계절에 예전 선거에서 쟁점의 하나였던 내용을 분석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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