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임즈 인터뷰 정리 2023.06.01
철학자가 말하는 챗GPT “언어의 한계에 갇힌, 잘해봤자 노예” (김재인 경희대 교수①)
Q: 생성 AI를 ‘캄브리아 대폭발‘이 아니라 ‘빅뱅‘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A: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생명종이 갑자기 늘어난 폭발적으로 늘어난 사건이고요. 그런데 빅뱅은 새로운 세상이 탄생하는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조금 더 강한 인상을 주는 것 같아요.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고 하는 분들은 생성 AI 서비스가 엄청 다양해지고 늘어난다는 의미로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저는 오히려 뭔가 한 단계 뛰어넘는 새로운 변화가 왔다고 본 거죠. 인간과 인공지능이 관계를 맺는 방식에 있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고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빅뱅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세상이다. 인간과 소통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지요.
Q: 챗GPT를 앵무새라고 정의했는데, 생성이라기보다는 기억하고 있는 내용을 인출하거나 재구성하는 것이라는 의미인가?
A: 학습을 통해서 뭔가 만들어 놨어요. 그걸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기자님께서 인출, 재구성 하셨는데, 인출이라고 하면 마치 냉장고에 있는 사과를 꺼낸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건 아니에요. 그거보다는 잠재태로 있는 거를 꺼내면서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하는 거에 가깝습니다. 생성 인공지능이 하는 일이요. 우리가 매개 변수라는 말을 쓰잖아요. 패러미터. 그게 사실 무슨 뜻인지 쓰는 분들도 잘 몰라요. GPT 3가 매개 변수를 1750억 개 갖고 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 단어를 학습했잖아요. 더 정확하게는 토큰이라고 합니다. 여하튼 비슷한 의미로 치고요. 단어 간에 여러 관계들이 있죠. 인터넷에서 긁어모을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단어와 문장을 활용해서 단어와 단어 사이의 관계들을 찾아낸 거예요. 찾아낸 관계의 개수가 가령 1750억 개인 거죠. 그러니까 관계를 찾아내면 새로운 문장을 생성할 때 그 관계 속에서 끄집어내는 형태가 된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관계를 인출한다, 이렇게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 어떤 단어 다음에는 어떤 단어가 나오고, 또 그다음에는 어떤 단어가 나오고를, 지금은 수십 페이지까지도 가능해졌죠, 그 관계들 중에서 찾아낸 거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Q: 단순히 명사 다음에 동사가 와야 된다는 정도가 아닌 건가?
A: 그 정도가 아니죠. 한국어뿐 아니라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굉장히 많은 단어들이 있어요. 그 단어들 간의 관계가 어떤 건 굉장히 긴밀하고 어떤 건 느슨하죠. 이런 것들까지 포함한 관계들의 좌표 또는 입체 지도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거기에서 뭔가 끄집어내서 문장을 만드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앵무새라고 볼 수가 있어요. 어떤 분은 그렇게 얘기했어요. 앵무새한테 너무 미안하지 않냐, 앵무새가 더 능력이 뛰어나다. 뭐 그렇게까지 얘기하는데, 그건 비유고요. 사실은 기계가 지금 해내는 일이 워낙 엄청나죠.
Q: 인출이나 재구성이라고 하면 생성보다는 좀 아래에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 건가?
A: 그렇죠, 엄밀하게 생성은 아니죠. 왜냐하면 있는 것들 중에 끄집어내니까. 근데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수 있을 수준은 전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들도 잘 못해요. 근데 탁월한 인간이 하는 작업하고는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예를 들면 과학자, 예술가, 소설가, 이런 사람들이 창작해내는 것과는 급이 좀 달라요. 제가 볼 때는 한 단계 떨어집니다.
Q: LLM의 한계가 언어 모델이기 때문이고, 결과가 정확하지 않은 것도 언어의 한계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 설명해달라.
A: 그러니까 라지 랭귀지 모델(LLM)의 대표적인 게 GPT, 제너러티브 프리 트레인드 트랜스포머, 미리 학습되고 언어를 생성하는 트랜스포머 모델이죠다. 이건 언어를 학습 데이터로 삼고 있습니다. 거기까지는 많이 아실 거예요. 언어라는 게 뭘까를 좀 생각해 보면, 사실은 우리 세계, 우리 우주의 극히 일부분밖에 안 돼요. 인간이 언어로 진술한 것들에 국한되니까. 세상은 훨씬 그것보다 풍요롭죠. 세계를 충분히 담아내지도 못해요. 그다음에 더 중요한 건 인간은 거짓말하고 뻥 치고 지어내고 상상하고 환상을 그려내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그런 것들이 언어에 굉장히 많아요. 언어에는 세계에 없는 것들도 굉장히 많아요. 세상을 부분적으로는 반영했지만, 언어의 상당수는 세상 밖에 있는 꿈과 상상과 환상의 세계까지도 담고 있다는 게 되게 중요한 특징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걸 배워서 말을 시키면 할 수 있는 말이, 가령 환상과 상상 거짓말을 배운 측면에서는 당연히 지어내는 말도 뭔가 세상의 진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들일 수밖에 없겠죠.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얘기할 때 빈틈, 빠진 구멍이 많겠죠.
Q: 실제로 결과물을 봤을 때 그런 빈틈이 보인다는 건가?
A: 우리가 환각 얘기하잖아요. 없는 얘기를 지어낸다. 세종대왕이 맥북을 던졌다든지, 그렇죠. 그런 아주 유명한 사건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 왜 나오느냐? 결국은 어떤 빈틈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이라면 관계를 알고 있는 부분을 얘는 굳이 집어넣어줘야만 그 관계까지도 아는 거기 때문에, 빠뜨리고 있는 거죠. 매개 변수 엄청 많이 발견해서 언어 속에 있는 관계들만 학습했다고 아까 그랬잖아요. 근데 매개 변수를 아무리 늘린다 해도 언어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1750억 개가 아니라 1조 7500억 개를 찾아낸다 한들 이게 얼마나 확장 가능할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GPT 3하고 GPT 3.5 정도 나왔을 때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른 게 아니냐, 거기다 관계를 더 집어넣는다 한들 얼마나 확장되겠냐 하는 생각을 했는데, GPT 4에서 파라미터 수를 공개하지 않는 게, 더 늘려봤자 소용없다라고 엔지니어들이 얘기하는 것도 그걸 확인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오히려 어떻게 보면 적절하게 잘 골라낸 데이터들을 가지고 학습을 시키면 파르미터 수가 더 줄어도 더 나은 작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언어가 갖고 있는 규모나 범위, 한계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Q: 그러니까 언어라는 게 기본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세상 전체에 비해서 너무 적다고 이해하면 될까?
A: 그렇죠, 그래서 인간이 언어로 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다 인터넷 상에 내뱉었는데, 도서관 문서, 텍스트 아무리 더 올려봤자 얼마나 나아질까요? 결국은 비슷비슷한 얘기들이 계속 중첩되는 거 아니겠느냐 싶은 거죠.
Q: 사람은 뻥 치는 것도 좋아하고 상상하는 것도 좋아하고 소설이라든지 SF 영화 같은 것들이 다 그런 거잖아요. 세종대왕 맥북 이런 것도 생성 AI가 그런 상상력을 발휘했다 이런 식으로 평가할 수도 있지 않나?
A: 아, 그건 상상이 아니에요. 원래 트랜스포머라는 모델이 진실 여부랑은 상관이 없어요. 어떤 말이 있으면 그 말 다음 단어, 그 다음 단어를 계속 예측해서 뽑아내는 방식이거든요. 그러니까 질문에다 세종대왕하고 맥북 던진 사건 이렇게 질문하니까, 세종대왕과 맥북 사이에 어울리는 관계를 지어낸 거죠. 그냥 무작위로 지어내서 둘이 연관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거죠. 마치 별로 지식이 없는 아이들이 얘기 지어내는 거랑 비슷한 상황입니다. 상상력의 발현이 아니라 말하자면 무지의 발현에 더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관계를 모르니까.
Q: 그러면 상상과 무지의 발현은 어떻게 다른 건가?
A: 상상이라는 거는 결국에는 얘기가 되는 거잖아요. 우리가 소설가들이 상상해서 소설을 쓴다는 거는 이야기가 되게 만드는 건데, 챗GPT가 내놓은 세종대왕 맥북 사건은 그냥 말만 되게 만들어 놓은 거예요. 이야기가 되지 않고 말만 되는. 말을 진짜 잘하는 애들이 있어요. 말하는 재미 때문에, 이야기를 지어내는 재미 때문에 말은 잘하는데, 내용을 보면 아무 말이나 연결해요. 바로 그런 애들이 하는 짓하고 비슷하다 보면 됩니다.
Q: 챗GPT가 주었던 충격이 고점일 거라고 했는데, 왜 지금이 고점인가?
A: 제가 시작할 때 ‘AI 빅뱅’이라고 말하면서 관계가 좀 바뀌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뭐냐 하면 알파고도 6년 전에 우리에게 굉장히 충격이었어요. 근데 알파고랑 지금 챗GPT 차이가 뭐냐? 알파고는 바둑 두는 사람들에 국한해서 충격이었습니다. 일반인들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챗GPT 또는 저는 그전에 나온 미드저니, 달리 같은 그림 생성 인공지능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것들의 특징은 뭐냐 하면 우리들이 원하면 바로 사이트에 접속하거나 프로그램을 통해 사용해 볼 수 있어요. AI 닷컴 가면 오픈AI의 챗GPT 화면이 나오죠. 회원가입 간단히 하고 입력하면 바로 답을 해요. 인터페이스의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채팅 형태 대화를 한다는 점이에요. 내가 한 마디 건네면 저쪽에서 한 마디 건네주는 형태를 그대로 인터페이스에 도입한 거죠. 전에 이런 인공지능은 없었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모든 인공지능이 이런 대화형이 될 거예요. 주고받는 형태가 될 거예요. 그게 현재 AI 빅뱅의 원천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전까지는 남 얘기처럼 했어요. 신문 보니까, 방송 보니까, 유튜브 보니까 그렇다더라. 그게 아니라 내가 해보니까 진짜 그런 거예요. 3월인가 조사로는 한국 사람들이 한 30% 좀 넘게 챗GPT를 써봤다고 해요. 지금 5월 말인데, 3분의 2는 써봤을 거예요. 일단 20, 30대는 다 써봤다고 생각해도 되고요. 그렇게 보면 전 국민이 느낀 겁니다. 그리고 전 세계인이 느낀 거죠. 아, 인공지능이 이런 것까지 하는구나, 그 충격이 컸다고 봐요.
Q: 그런데 왜 이 충격이 고점이라고 보는 건가?
A: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GPT 또는 언어 모델이 갖고 있는 한계 때문에 여기서 더 개량된 버전이 나오기 좀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GPT 3, 4, 5 이렇게 버전이 올라가도 언어의 한계 안에 여전히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새로운 충격을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거예요. 얘 좀 더 똑똑해졌네, 답을 좀 더 잘하네, 말을 좀 더 세련되게 지어내네, 이런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내용상 우리에게 지금 준 충격보다 한 단계 넘어서는 충격이 오긴 어렵겠다고 봐요. 기능적으로 조금 더 향상이 있을 수는 있지만, 채팅으로 실시간으로 인공지능에게 질문하고 답을 듣는 인터페이스적인 변화는 이번이 처음이고 이 충격이 가장 강할 거예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건 사실이에요. 그리고 제가 그걸 낮게 평가하고 싶은 생각 전혀 없고요. 하지만 지금 충격 같은 충격이 또 올까요?
Q: 스마트폰 시대에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충격처럼, 그 이후에 아무리 좋은 스마트폰이 나와도 그만큼의 충격은 없는 것과 비슷한 건가?
A: 그만큼 충격은 없죠. 기능적으로는 조금 더 개선되고, 얘가 좀 분명히 개선되겠죠, 똑똑해지겠죠. 그림 생성하면 더 정교해지고 영상 생성도 더 잘하겠죠. 그러나 어차피 내가 뭔가 프롬프트를 쳐서 결과물을 얻어내는 과정은 똑같을 거예요. 지금 써보고 안 쓰시는 분들도, 뭐 당연히 되는 거 아니야, 하게 되는 거죠. 실사 같은 영상을 AI로 만들어서 갖고 와도, 그건 뭐 당연히 되는 거 아닌가, 할 거라는 거죠.
Q: 언어 모델이 담을 수 없는 인간의 영역에는 또 뭐가 있을까?
A: 인공지능은 두 가지가 없는데, 하나는 몸이 없고 또 하나는 친구가 없어요. 세계랑 직접 만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만들어 놓았던 언어를 통해서만, 책상 물림으로만 뭘 배운 거예요. 옛날에 시트콤 ‘하이킥’ 시리즈 아세요? 제일 재미있게 봤던 에피소드가 키스를 책으로만 배운 게 있었어요. 안 돼요, 안 되죠, 안 돼요, 안 되죠. 언어 모델이 갖고 있는 한계 중에 몸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한계가 그런 부분이라고 볼 수 있어요. 책상 물림으로만 세상을 아니까 관계를 맺지 못해요. 친구가 없기 때문에 자폐적인 세계, 고립된 세계 안에 갇혀 있어요. 아무리 내부가 양적으로 풍요롭다 해도 타자가 없는 거예요. 타자가 없다, 친구가 없다는 말은 자기 동일성에 갇혀버린다는 뜻이에요. 바뀔 여지가 없죠. 밖에서 누군가가 자극도 주고 충격도 주고 하는 관계 속에서 사람은 성장하는데, 얘는 그게 없어요. 학습한다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 준 가능성의 영역 안에서 뽑아내는 것에 불과하니까, 성장이라는 표현은 불가능해요.
Q: AI의 성장과 인간의 성장은 다른 건가?
A: 성장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해도 굉장히 달라요. AI는 사람이 인터넷에 올린 글들을 학습해서 기능적으로 성장하겠죠. 자기가 학습하는 게 아니고 인간이 학습시키는 거죠. 하지만 소위 사람이 하는 성장, 관계 속에서 상처받기도 하고 혼나기도 하고 칭찬도 받고 하면서 하는 성장은 불가능해요. 완전한 자족적 세계, 고립된 세계라고 보면 되고요. 또 하나는 지금 언어 모델이나, 거기에 그림이나 코드나 이런 걸 짝 지은 멀티 모달이라고 하죠, 이 언어 모델이나 멀티 모달이 주로 시각 영역하고 청각 영역에 국한돼 있습니다. 시각이나 청각은 제가 ‘원격 감각’이라고 불러요. 이건 디지털로 구현 가능해요. 스피커랑 디스플레이만 있으면 멀리 있는 것도 만날 수 있어요. 사실은 TV, 유튜브, 영화, 이런 것들이 다 여기에 해당해요.
Q: 그에 반해 언어 모델이 담지 못하는 영역은?
A: 그에 반해 제가 ‘근접 감각’이라고 부르는 게 있어요. 가까운 감각이에요. 촉각, 미각, 후각, 내 몸이 미칠 수 있는 범위에 있는 것들 대부분이 언어 모델 안에 들어가지 못해요. 가령 맛은 묘사가 안 되잖아요. 나한테 맛있는데 누군 맛이 없죠. 향도 마찬가지죠. 향수인데 누구한테는 악취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니까 그런 근접 감각의 성격을 우리는 잘 몰라요. 인간끼리도 엄밀하게 소통되기 어려운 부분이죠. 서로 차이가 나니까. 그래서 이런 거는 못 다루는 거죠.
Q: 예술 영역은 어떤가?
A: 언어 모델이니까 예술에 취약해요. 미술은 시각, 음악은 청각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게 단순하지 않아요. 가령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이 있다 치면 그걸 듣고 느낀 감동을 친구한테 말로 아무리 진술한들 요만큼도 전달 안 되죠.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모양이 이렇고 색깔이 저렇고 말로 아무리 묘사해도 그림을 직접 봤을 때의 느낌은 전달이 안 됩니다. 그걸 진술하는 것도 굉장히 어렵고요. 그러니까 이런 영역들이 인공지능이 처리하거나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되고요. 이 점 때문에 메타의 수석 과학자 얀 르쿤이 하는 얘기가 있어요. 언어 모델은 세계가 없다. 친구가 없고 몸이 없다는 거랑 비슷한 관점이에요. 한계가 분명하고, 아주 다른 모델로 접근하지 않으면 제가 말씀드린 영역들은 근처에도 못 간다는 거죠.
Q: 그러면 지금 생성 AI 예술 얘기도 많이 나오고 실제로 경연 대회 같은 것도 많은데 그런 건 좀 어떻게 이해해야 되나?
A: 그거 도구예요. 콜로라도 박람회에서 디지털 아트 부문 우승까지 했죠.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그건 프롬프트 작가 인간이 프롬프트를 정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구현해 낼 때까지 입력한 결과물이죠.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게요. 제가 책에서도 많이 썼지만, 작가가 미드저니를 활용했단 말이에요, ‘만족할 때까지’ 이게 중요합니다. 인간이 만족할 때까지. 내가 이걸 출품해야겠다, 여기서 완성작이라고 치고 사인한 다음 출품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지점. 프롬프트 작업하는 모든 분들은 다 그렇게 해요. 제일 잘 된 거 고르기. 인간은 될 때까지 돌려요. 남들이 이 프롬프트가 좋았다더라 하면 갖다 써먹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자기가 보기에 남한테 보여줄 때 근사해 보이고, 쪽팔리지 않고 멋있어 보이는지를 평가해요. 음악도 마찬가지고. 편집이라는 거 있잖아요. 유튜브 하시니까 해볼 거예요. 만족할 때까지 편집하는 거죠. 보는 사람이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내 마음에 들 때까지는 편집을 계속합니다. 시간 제한이 없다면 정말 계속하겠죠. 그러니까 도구지 걔가 창작한다 이런 표현을 쓰기에는 급의 차이가 나죠.
Q: 인공지능은 나중에는 본인이 평가를 하기도 할까? 스스로의 작업물에 대해서?
A: 인공지능은 평가할 수 없습니다. 이게 굉장히 묘한 건데요. 스튜어트 러셀하고 피터 노빅, 러셀은 버클리 교수고 노빅은 구글 이사인데요, 이 두 사람이 같이 쓴 인공지능이라는 책이 있어요. 부제가 ‘현대적 접근’인데, 되게 두꺼워요. 여기에 재미있는 그림이 하나 나와요. 인공지능이 있다 치면, 바깥에서 이 인공지능이 어떤 일을 하라고 지시해 줍니다. 어떨 때는 어떻게 하고 어떨 때는 어떻게 해, 이런 입력이 있으면 이런 그림을 생성해, 하고 바깥에서 지정해 주는 게 되게 중요해요. 누가 지정하냐면 인간이 지정하죠. 근데 인간은 이 바깥이 없어요. 자기 안에 뭐를 어떻게 하라가 내장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평가 기준, 수행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차이고요.
Q: 그게 인간과 인공지능의 근본적인 차이인가?
A: 인간은 생물이기 때문에 진화의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해야 할 것, 추구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을 내장하게 되었어요. 지금 하는 모든 행동들은 그것과 관련됩니다.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멈추고 고통이 있으면 피하고 즐거운 게 있으면 그걸 더 추구하고, 이 네 가지가 중요할 거예요. 생식하고 자손을 번식하는 것도 포함되겠죠. 이런 몇 가지 기본 기준이 내장돼 있고, 거기에 더 유리하면 어떻게 한다, 이게 있어요. 인공지능은 인간이 그런 기준을 알려줘야만 작동한다는 점에서 인간하고 너무 다르죠. 이게 인간 지능과 인공지능의 가장 큰 차이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인공지능은 잘해봤자 똑똑한 심부름꾼 또는 노예 아니면 도구라고 봐야 할 겁니다. 원리 또는 원칙상의 문제, 근본적인 설계의 문제예요. 그래서 둘 다 인텔리전스, 지능이라는 말을 쓰는데, 같은 지능인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Q: 레이어가 좀 다르다는 건가?
A: 인공지능은 수학적으로 계산 가능한데, 보통 논리 게이트라고 부르거든요. 논리 게이트 중에서 XOR이라는 게이트가 있는데요. 아무리 복잡한 프로그램도 XOR 게이트을 무수하게 늘린 거예요. 수퍼 컴퓨터랑 애들 장난감에 들어있는 컴퓨터는 원리가 같아요. XOR이 몇 개 있느냐 차이입니다. 바로 그렇게 논리 연산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다 푼다고 봐도 되는데, 그럼 인간이 그런 연산으로 다 환원되느냐? 아닌 영역들이 많습니다.
Q: 인공지능은 스스로 문제를 포착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해결하는 게 아니라 밖에서 지시하는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는 말씀인 거잖아요. 최근에 오토 GPT라고 해서 인간이 큰 목표를 설정해 놓으면 인공지능이 이거를 이루려면 뭘 해야 될지를 설정하고 일을 하는데, 이거를 좀 확대해서 보면 환경 보호라는 큰 목표를 인간이 설정을 해 준다. 근데 인공지능이 생각하기에 인간들이 죽어야 환경보호가 완성이 될 것 같다라고 하면 또 그렇게 인간을 없애버릴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보면 인공지능도 의지를 갖고 뭔가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A: 그건 좀 엄밀하게 구분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이런 보조 목표 또는 하위 목표는 일단 인간이 지시한 목표에 종속됩니다. 그런 점에서 심부름 하고 있는 거고요. 심부름꾼이 자기가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의지를 발휘한다, 이런 얘기는 하기가 어렵죠. 하지만 여기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가령 스튜어트 러셀이 두려워하는 게 있어요. 그걸 ‘가치 정렬 문제’라고 부릅니다. 영어로 얼라인먼트(alignment)라고 하는데요. 인공지능의 목표와 인간의 가치가 서로 정렬되어야 한다,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거예요. 인공지능은 인간과 양립 가능한 또는 공존 가능한 일들을 수행해야 되는데 방금 말씀처럼 목표를 주고 나머지를 모두 인공지능한테 맡겨버리면 걔가 스스로 하는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하위 목표들을 만들어서 인간에게 엄청난 해를 주는 일들을 수행할 수 있다는 거예요. 따라서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뭔가를 시킬 때 그런 부분을 미리 알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방법을 찾아야 된다는 거죠.
Q: 근데 그건 참 알기가 어렵지 않나?
A: 굉장히 어렵죠. 초기에 이런 버전에서 나온 것 중에 하나가 클립을 만드는 거예요. 페이퍼 클립 있죠 우리 종이 꿰는 그 클립을 만드는데 최대한 많이 만들어라라는 명령을 준 거예요. 네 그랬더니 인공지능이 지구의 모든 자원을 활용해서 클립 만드는 일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데 써야 될 것. 그렇죠 안 쓰고 인간도 다 죽여버리고 지구 전체가 클립으로 넘쳐나는 상황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결국 명령을 잘못 내린 거죠. 그럼 프롬프트를 잘못 입력한 거네요. 그렇죠 어떻게까지 해야 될지는 되게 복잡한 문제고 방금 말씀처럼 미리 생각을 많이 해야 되는데 그렇더라도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파생 결과가 나올지는 나비 효과가 있잖아요.
Q: 인공지능 관련하면 사실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이 되게 많잖아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결국엔 그렇게 하다가 나왔다고 볼 수 있을까?
A: 그건 좀 접근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에서 의식을 갖는 인공지능이 상상되고 있기 때문에 좀 다른 문제입니다. 의식이 없더라도 시킨 일을 잘 수행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어요.
“AI판사가 인간판사보다 공정하다 더 보수적이다.” (김재인 경희대 교수②)
Q: 사람들은 인공지능 판사가 인간 판사보다 훨씬 공정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댓글 보면 인공지능한테 맡겨라 GPT한테 물어봐라 그런 거 많은데 결국에 판사분들이 하는 것도 판례들을 보고 검토한 다음에 거기에 맞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근데 GPT는 그런 판례를 엄청나게 분석하는 데 훨씬 유리한데 교수님은 그건 환상일 뿐이라고 말씀을 주셨어요. 이유가 있나?
A: 잘 따져봐야 하는데요. 판례라는 게 어떤 성격을 갖고 있냐면, 최종 판결이에요.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내린 최종 판결인데 이 판례들은 굉장히 보수적입니다. 판례가 잘 안 바뀌어요. 가령 간통죄 폐지, 간통죄를 형사 처벌하면 안 된다고 처음 문제 제기했던 시점에서 바뀔 때까지 몇십 년이 걸렸어요. 또 대체 복무를 허용하라는 것도 마찬가지였어요. 모든 판례는 과거의 가장 보수적인 부분을 사회가 바꿈으로써 조금씩 바꿔가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근데 인공지능이 판례로 학습하니까 어떻겠어요? 인간보다 더 보수적입니다. 가장 보수적인 인간 판사가 내리는 판결하고 똑같아요.
Q: 그러니까 인공지능은 끝 지점에 있는 거네요. 인간 판사는 이 끝 지점에서 조금씩 조금씩 사회가 예컨대 진보한다고 가정했을 때 거기에 맞춰서 조금씩 우상향이라고 표현한다면 조금 더 진보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인공지능 판사는 그 끝지점에 있는 것만 학습을 해놓은 상태인 거니까 거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A: 가장 앞서 간 판례의 내용들은 아직 학습 데이터가 아닌 거죠. 평가를 바꾸는 건 인간입니다. 그래서 판례가 바뀌어야만, 즉 사회가 먼저 바뀌고 사회의 가치관이 바뀌고 그다음에 1심 판결, 2심 판결 차례대로 바뀐 후에 마지막 바뀌는 게 판례죠. 판례 그런 점에서 인간이 먼저 바뀌어야 돼요. 사회가 바뀌어야만 우리가 지금 불만을 갖는 판결이 바뀌지, 인공지능한테 판결을 맡기면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절대 판례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인공지능은 새로운 거랑은 관계가 없어요. 딱 멈춰 있어요. 판결을 생성한다고 해도 이거는 그동안 학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판결을 내리는 거기 때문에 굉장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새로운 사회나 가치관을 반영할 거라고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요. 댓글에 인공지능 판사 도입해라, 이런 걸 쓸 시간에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를 고민하는 게 더 쓸모가 있습니다.
Q: 인공지능은 또 계산만 할 뿐이고 고민도 궁리도 성찰도 못 한다 이렇게 말씀을 주셨어요. 근데 특정 활동을 하는 인공지능에다가 얘를 점검하고 평가하는 AI를 붙이면 인공지능도 결국에는 약간 의식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뭔가 궁리하고 그러는 것도 결국엔 계산의 영역으로 XOR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닌가?
A: 이 부분이 굉장히 쟁점이에요. 제가 어제 컴퓨터 공학하는 카이스트 교수님하고 대화를 나눴는데, 의식이 뭐냐 또 자의식이 뭐냐를 우리가 답하기 쉽지 않아요. 저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냐 하면 의식이란 내가 나를 돌아보는 거다, 나를 성찰하는 거다, 그러려면 보는 나와 보이는 나가 분리돼야 해요. 두 층이 나눠져야 됩니다. 한쪽은 기능하고 작동하고, 다른 한쪽은 그걸 지켜봅니다. 그러다 고장이 나면 고치기도 해요. 심지어 이 둘이 하나로 통일돼 있습니다. 우리가 고민한다는 것도 가만히 보면 고민하는 나와 고민하는 걸 풀어보려는 나가 복잡하게 가다 어느 순간 평정을 찾죠. 고민이 풀린 겁니다. 이걸 계속 반복해요.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 우리도 알지 못합니다. 어느 틈엔가 우리한테 그런 능력이 부여된 거니까요. 인공지능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은 어떨까 생각해 보면 단일 평면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종종 드는 비유가 디버깅 프로그램이에요. 디버깅 프로그램이 돌아갈 때 작동하는 프로그램과 고치는 프로그램이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비슷하지 않나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근데 디버깅 프로그램이 고장 나면 어떻게 돼요? 위에 한 놈 더 붙여야죠. 더 붙이고, 또 더 붙이고, 이걸 어디까지 할 거냐? 최종에는 결국 인간이 고쳐줘야 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해요. 애기들도 해요.
Q: 안에 들어 있는 거네요, 인간은?
A: 뭔가 있어요. 신비하게도 고장날 때 또는 뭔가 빈틈이 생겼을 때 그걸 스스로 고치거나 빈틈을 버텨줘요. 붕괴되지 않고 망가져 버리지 않는 거죠. 폭발하거나 터져버리지 않아요. 인공지능이나 프로그램은 고장이나 빈틈이 생기면 무한 루프, 즉 똑같은 게 계속되거나 윈도우 블루스크린 화면 비슷하게 작동이 멈춰요. 그다음 단계가 없어요. 근데 인간은 어떻게든 며칠 고민하고 나면 풀리기도 하고 회복이 가능합니다. 사실 컴퓨터는 뭔가 하나가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껐다 켜도 그 지점에서 계속 안 되잖아요. 사실 코딩 버그 찾는 게 진짜 어려운 거잖아요. 점 하나 잘못 찍었는데 작동이 안 돼요. 개발자가 하는 일이 그거잖아요. 점 하나를 어디 잘못 찍었는지 찾는 거.
Q: 이렇게 생각하니까 인간이라는 거에 대한 자부심도 좀 생기는 것 같고. 잘났다는 게 아니라 특징이 다르죠. 지금 인공지능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오히려 인간에 대해 더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A: 제가 책을 쓸 때 부제를 ‘생성 인공지능과 인문학 르네상스’ 이렇게 지었는데요. 왜냐하면 인공지능 문제는 생각할수록 인간을 돌아보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인간이 뭔지를 더 밝히게 되죠. 사람의 의식에는 레이어가 2층이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결국 한 층밖에 없는 거고, 이걸 계속 덧붙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죠.
Q: 챗GPT가 결과를 요약도 해주고 설명도 써주고 하지만 이해를 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이렇게 말씀을 주셨어요. 그러니까 이해라는 거는 결국에는 눈치이고 눈치껏 알아내는 게 또 이해인 건데 인공지능은 이런 눈치가 없다. 이건 어떤 의미일까?
A: 제가 영화 볼 때 너무 재미있어서 그 장면을 기억했는데 마침 딱 어울려요. 인공지능의 창시자 중에 앨런 튜링이라는 수학자 있죠. 튜링을 다룬 영화가 <이미테이션 게임>인데, 거기에 어떤 장면이 있냐 하면, 암호 푸는 연구 동료들이 웅성웅성 하다가, 튜링이 작업하는데 동료가 일어나서 ‘우리 점심 먹으러 가’ 그래요. 한 두세 번 물어봐요. 튜링은 ‘응, 응, 알았어’라고 응대해요. 동료가 말하죠. ‘아니 점심 먹으러 가자고 물었잖아.’ 튜링은 답해요. ‘아니, 니네가 점심 먹으러 간다고 했지 않았느냐. 네, 그렇죠. 액면 그대로면 우리 점심 먹으러 간다는 정보를 준 거죠. 그런데 사실 일상에서 그렇지 않잖아요. 뭐 먹으러 갈 거냐? 같이 먹으러 가야지? 이따 먹을게. 아니면 여러 가지 다른 반응이 가능한데, 튜링은 그러지 않았어요. 바로 인공지능이 하는 일이 그렇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언어 밖에 굉장히 많은 맥락들이 있죠. 우리는 그걸 굉장히 잘 파악하는데, 못 알아채면 그 사람이 눈치가 없다,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다고 하죠.
Q: 근데 가끔 그런 반론 펼치는 분 계시죠. 아니 인공지능도 맥락 파악하는 것 같은데. 이루다 같은 서비스는 채팅형 하다 보면, 나 밥 먹으러 가 하면 뭐 먹으러 가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하지 않나?
A: 사전에 그 맥락 정도는 준비돼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미리 학습되지 않은 뜬금없는 얘기를 던지면 거기에는 속수무책입니다. 인간은 농담이라는 거, 유머라는 게 뭐예요?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물론 아재개그 잘못하면 큰일 나지만, 일상 대화에서 우리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생각과 맥락이 있는데 그걸 삐딱하게 벗어나면 그때 웃음이 터지거든요. 개그맨들 하는 대화 보면 당연한 듯한 다음 반응이 아닌 다른 반응이 나올 때 그렇죠. 이건 맥락을 뒤트는 거거든요. 맥락을 바꾸는 일이에요. 어렸을 때 놀이할 때, 애들은 그걸 잘하는데 요즘은 모르겠네요, 놀다가 요건 요렇게 해보자 하고 규칙을 살짝 바꿔요. 그럼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되죠. 그리고 그걸로 놀아요. 한 개만 하면 지루하니까, 재미가 없어지니까, 규칙을 바꾸고 맥락을 바꿔요. 그걸 늘상 합니다. 심지어는 동물들도 가끔은 그런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반려동물들 보면 다른 규칙을 줬을 때 처음에 당황하다가 그다음 하잖아요. 이런 식으로 인간뿐 아니라 생명이라는 게 기계나 인공지능과 다르게 관계를 맺으면서 맥락들을 구성하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Q: 아까 말씀 주셨던 거랑 연결되는 게, 몸도 없고 친구도 없는 게 관계를 맺지 못하는 거랑 연결되고 그게 결국에는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가 없는 걸로 이어지는 거네요. 근데 또 이루다처럼 AI의 페르소나라든지 인격을 부여하는 경우도 많이 나오고 있고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인다든지 해서 의인화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고 실제로 그런 서비스가 많이 나오잖아요. 오히려 이런 현상들이 인간이 뭔지를 더 잘 보여주는 거다. 그래서 흥미롭다 이렇게 말씀을 주셨는데, 이건 또 어떤 의미일까?
A: 지피티도 그렇고, 우리가 사람처럼 대해요. 얘가 어떻게 답했어. 근데 그건 최근에 인공지능 또는 반려 로봇이 등장하면서 처음 생겨난 현상은 아닙니다. 옛날에 하늘의 별을 보면서 신화를 지어내고 영웅담, 전설을 꾸며내고 이야기를 지어냈어요. 이건 인간이 태초부터 해왔던 일이에요. 소설, 영화, 연극, 이런 거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인간은 원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의인화하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걸 즐겨왔습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게 되는 거죠. 나무에 끈 묶어 놓고 신이라고 부르고. 들판에 눈이 녹아 있는데 그게 예수님 얼굴이라고 하죠. 이런 식으로 인간은 자신을 외부에 투사하는 걸 너무 좋아해요. 그러니까 AI에 인격을 부여하고 있는 것 자체도 인간의 본성이에요. 거기에 인격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부여함으로써 생기는 게 되는 건데, 인간의 특징이죠. 아마 다른 동물은 안 그럴 거예요.
Q: 우리가 얘야라고 얘가 어쨌다라고 부름으로써 얘가 인격이 부여되는 거네요. 사실 우리 집에 있는 가전 제품에도 이름 많이 붙이고. 차에도 이름 붙이고. 스마트폰 같은 것도 얘라고 부르기도 하고. 사물에 그런 식으로 많이 부르잖아요. 얘, 어디 갔나? 이런 식으로. 그런 것도 무의식 중에 의인화하는 거라고 볼 수 있는 거네요?
A: 한마디로 인간을 세상에 온통 투사한 거예요. 세상 사물 전체가 다 인간스러운 거죠. 보면 서양도 그렇고 뭐 동양, 중국, 남미, 아프리카, 다 그래요.
Q: 그게 오히려 더 인간임을 잘 보여준다. 인간이 무엇인지 너무 재밌습니다. 인공지능이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창조적인 일은 하기 어려울 거다, 이렇게 말씀을 주셨잖아요.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인데, 지금 저희가 보기로는 인공지능이 뭐 패션도 디자인해 주고 그림도 그려주고 광고 카피도 써주고 그러잖아요. 그럼에도 왜 창조성은 인간의 능력으로 남을 것인가 이게 좀 궁금합니다.
A: 여기서 한 가지 먼저 해명하고 가야 할 건, 인간 평균 수준과 생성 인공지능 사이에 누가 더 뛰어나냐면, 아마 생성 인공지능이 더 뛰어날 수도 있어요. 제가 그림 잘 못 그려요. 그런데 미드저니는 잘 만들어줘요. 나도 못하는 걸 얘가 하는 거 아니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근데 방금 질문하신 영역, 패션, 디자인, 그림 그리기, 광고 카피는 사람이 그걸 활용해요. 디자이너가 인공지능 활용해 시안들을 뽑아내요. 근데 다 채택하는 게 아니죠. 골라내죠. 선택하는 거죠. 바로 그겁니다. 광고 문구 100개를 생성해 준다? 그중에 골라요. 그리고 또 고쳐요. 결국은 얘가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라는 거죠. 그림 생성했을 때 사람들한테 그냥 내보이는 경우가 없잖아요. 자기 마음에 들 때까지 생성하니까 결국 도구라고 이해하는 게 적합한 거죠.
Q: 인간보다 더 낫냐 아니냐를 따질 때 중요한 건 뭔가?
A: 인간의 최고 대표와 인공지능의 최고 대표가 겨루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이세돌 구단이 알파고한테 졌잖아요. 이건 말이 돼요. 네가 이겼어, 알파고. 근데 인간 최고 가령 화가와 미드저니가 대결한다. 항상 이 상황을 생각해야 해요. 인간은 항상 자기를 넘어선 역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재 고인물로 머물지 않고요. 계속 자기를 넘어서고 극복하고 그것이 축적돼어 여기까지 왔어요. 넘어서는 인간이 누구냐? 최첨단에 있는 몇몇들이에요. 그들이 발견하면, 그 다음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걸 하나 발견하고 발명하면 나머지 인류가 그걸 다 배워요. 학습해서 그렇죠. 그 수준까지 따라가요. 그다음에 또 누군가가 하나 갖고 오면 그걸 다 공유합니다. 인간은 대표 선수가 뭔 일을 하면 나머지가 그걸 다 수용하는 역사를 밟아왔어요. 그런 수용 속에서 또 다른 대표 선수가 나오고, 그 대표 선수가 인간을 대표한다는 자부심과 명성을 얻는 거죠. 처음에 돌도끼를 깬 순간부터 여기까지 왔어요. 인류는, 천재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고요, 누가 새로운 걸 찾아와서 전체가 공유하는 순환 과정을속 해왔습니다. 인간은 그런 점에서 공동 존재고 협업하는 존재였습니다. 공유가 없었으면 금방 사라지고 마니까 쓸모없는 게 되고 말죠.
Q: 결국 교수님이 말씀해 주신 대로 창작의 진정한 의미는 평가에 있는 거고 평가하는 게 인간의 핵심 능력으로 남게 될 거다 말씀해 주셨는데, 같은 의미라고 보면 될까?
A: 그렇죠. 평가라는 게 중요한 거죠. 넘어서는 게 인간이다. 이 이야기를 한는 사람도 니체인데, 또 평가하는 게 인간이다고 얘기한 것도 니체예요. 어떤 구절을 니체가 말했냐? 평가는 창조다. 평가 자체가 평가된 모든 사물에게는 보물이자 보석이다. 평가를 통해 비로소 가치가 있다. 이런 구절을 이야기해요. 뭐냐 하면 돌덩어리에 불과한 건데 누가 이걸 보석이다고 해주면 보석이 됩니다. 애초에 본래적인 가치, 본래적으로 예쁘고 본래적으로 옳고 본래적으로 선하고 이런 게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러하다고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 대표적으로 선악 같은 것도 그래요. 민족마다 선악의 기준이 다 달라요. 내용도 다르고. 우리가 세상이 이러하다고 하는 행위가 인간다운 일이기도 하고요.
Q: 그럼 앞으로 인공지능이 생성한 것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게 우리 인간의 핵심 업무가 될까?
A: 네, 그럴 수 있습니다. 건축 현장을 보면 건축하는 건설사가 있고 감리사가 있죠. 감리사가 뭐예요? 건설이 잘 됐는지 확인하는 거죠. 그런 종류의 작업이 주로 인간의 몫이라고 보면 될 거예요. 인공지능이 건설해요. 인간은 감리해요. 인공지능은 정말 속도가 훨씬 빠르죠. 인공지능은 계속 만들어내고 인간은 평가하고.
“수학이라는 언어를 빼고 가르친다 문맹 만드는 것” (철학자 김재인 경희대 교수③)
Q: 챗GPT를 대학에서 학생들이 많이 쓴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많이 학생들이 쓰나? 그런데 챗GPT로 리포트를 쓰게 할지 말지 교수님들이 고민을 많이 하신다고 들었어요. 실제로 교수님들 만나 봐도 그런 얘기하시고 그런데 교수님은 그게 본질이 아니다. 무엇보다 글쓰기가 뭔지 그리고 글쓰기의 본질을 물어야 된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이거는 좀 어떤 의미인지 설명을 부탁드려볼게요.
A: 학생들 많이 써요. 숙제를 대신 해 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어요. 사실 어저께 자리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왔는데 학생들이 챗GPT를 도움을 받아서 글을 썼을 때 전보다 평균치가 올라가니까 같은 글을 써도 점수는 떨어질 거다 그런 얘기를 해요. 왜냐하면 기대치가 우리 챗GPT가 쓴 정도의 글을 b 정도라고 치면 b 정도는 기본으로 하니까 그보다 더 잘해야만 a가 되는 거지 뭐 그런 얘기하는데 그거는 사실 별로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노엄 촘스키가 하이테크 표절이다 뭐 이런 얘기를 해서 회자된 떠들썩한 그런 이 일이 있었는데요. 그러니까 도대체 챗GPT 같은 걸 써서 보고서를 제출하는 학생의 머릿속엔 뭐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좀 해볼 수 있어요. 글 쓰는 과정은 일종의 훈련이에요. 어떤 훈련이냐면 생각의 근력을 키우는 훈련이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운동을 직접 해야 자기 근육이 튼실해지죠. 생각을 튼실하게 하려면 결국 글을 써서 정리하는 걸 최종 아웃풋으로 내놓는 게 기본이 된다고 봐요. 물론 꼭 다 글만은 아니고 콘텐츠를 잘 가공하는 것도 마찬가지겠지 바로 그 과정을 훈련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상태가 돼서 졸업해야 돼요. 그래야 자기 트레이닝을 충분히 했으니까 그걸 사회에서 발휘하는 거죠. 그 힘을.
Q: 만약에 챗GPT로 리포트를 내서 졸업했다면?
A: 근데 만약에 챗GPT로 내서 뭐 a 플러스 어 졸업했다 쳐요 회사 갔어 그다음에 뭐 할 거예요? 얘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요? 4년 동안 이거 한 건데 챗GPT 쓴 건데 그러니까 결국은 글쓰기라는 게 목표가 뭐냐 이거를 명확하게 알아야 되고요. 저는 촘스키 같은 석학이 단지 그런 하이테크 표절 이 수준으로 이 문제를 느끼고 있다라는 거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으로 봅니다. 우리 교육이 망가져도 보통 망가진 게 아니구나 그런 느낌이 들어서 어떻게 해야 이 근력을 키울 건가를 사실은 뭔가 놓친 거 아니냐.
Q: 제 GPT로 이걸 낸 거를 점수를 어떻게 줄 거냐 안 줄 거냐 그 문제가 아니라 당장 교육 현장에서 느끼시기에 뭔가 정말 치열하게 고민을 하고 리포트를 쓰고 그러는 과정에서 말씀대로 못 쓰기도 할 수도 있고 잘 쓰기도 할 수도 있지만 그런 과정에서 이런 사고의 근력 훈련이 되고 근력이 생기는 건데 그런 거에 대한 논의가 거의 지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라고 보시는 거죠?
A: 그래서 어떻게 보면 종래 말하기 대화하기 그다음에 글쓰기 이런 것들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술이 우리가 그런 종류의 일을 대신하는 게 쉬워질수록 잘 안 하게 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직접 해봐야만 느는 그런 성격을 갖고 있는데 점점 기계에 의존하고 이러다 보면 자기의 능력은 떨어지는 거죠. 체육학과에서 매일 훈련하는 것처럼 글쓰기도 이런 훈련을 계속 해야 되는 게 정상인데. 대학 자체가 사실은 그런 훈련을 시켜야죠. 공대생이라고 해서 글 못 써도 된다 이건 아니잖아요. 발표도 잘 해야 된다. 그럼 그럴 말하는 능력도 다 계속 해야 되는 길러야죠.
Q: 그러면 교수님이 이런 생성 AI 시대지만 암기 교육이 강조돼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비슷한 맥락일까? 오히려 챗GPT 덕분에 암기 안 해도 돼 뭐 이런 얘기들 생각들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A: 사실 암기에 대해서 우리가 오해가 많다고 봐요. 왜냐하면 일단 싫죠. 누가 외우라고 그러면 싫죠. 그러면 싫죠.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사실 우리가 알아야 될 지식과 기술의 내용이 딱 한정돼 있었어요. 그걸 막 쑤셔 넣어 그럼 그걸 갖고 평생 사회에 가서 써먹는 거야. 그러니까 들어가야 돼. 그런데 암기하는 건 누구나 귀찮아하고 싫어하죠. 그런데 제가 강조하는 암기는 그게 아니고요. 기억 자체의 본성을 제대로 보자라는 거예요. 기억은 내 안에 내 머릿속에 뭔가가 들어 있는 상태죠. 그러니까 알고 있는 거 기억은 지식이에요. 노하우고 이거는 언제든지 인출이 가능합니다. 꺼내서 쓸 수가 있어요. 내 안에 있으면 0.01초 검색하면 아무리 빨라도 2 3초 결국은 지식과 노하우 이런 데 빨리 접속하는 게 결국 내 머릿속에 넣는 거인 거죠.
Q: 그리고 또 하나 더 중요한 거는?
A: 그리고 또 하나 더 중요한 거는 우리가 생성 인공지능이 뭘 만들어줬어요? 그런데 이게 참인지 거짓인지 아니면 가치가 있는지 이걸 판단하고 평가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렇죠 어떻게 평가해요? 검색해서요? 내 안에 있는 기존의 지식 이걸 바탕으로 검증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결국 내 안에 더 많은 것들이 들어 있어야만 이게 가능한 거죠. 속도도 빠르고 이걸 근데 남들이 이걸 알아야 돼라고 이걸 외워야 돼 이렇게 시키면 안 되는 거고요. 결국은 내가 내 안에 집어넣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걸 실천하는 게 중요한 거죠.
Q: 뭐 내 도메인 안에서든 관심사 안에서든 그게 자동으로 탁탁탁 튀어나올 수가 있어야 그거를 지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고 내 거라고 부를 수 있는 거고 그게 있어야만 인공지능이 뭘 만들어주든 평가를 할 수 있는 거니까 암기 교육이라는 말이 맞지만 어떻게 보면 약간 습관을 기르는 거기도 하죠?
A: 그렇죠. 제가 약간 자극적인 표현을 쓴 거죠. 그렇죠. 암기 중요하다. 그런데 중요한 거 맞거든요.
Q: 위에서 말씀하신 근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건가?
A: 네 네 그리고 그런 근력이 있어야 우리 정신 활동 지적인 활동에 해당하는 다른 것들도 우리가 주도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좀 더 이렇게 창조적인 일을 하려고 할 때 자원이 내 안에 이제 들어 있단 말이에요. 조금만 보태면 되겠다라는 걸 빨리 알아챌 수 있어요. 경험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아니면 인터넷 서칭을 하거나 사람들하고 대화를 하거나 자기 안에 있는 게 좀 있어야 뭐가 플러스 알파가 되지 가진 게 없으면 배울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어요.
Q: 그러면 모르는 거 있으면 검색하면 되지라는 거는 굉장히 나태한 거네요. 어떻게 보면 인공지능적인 관점인 거네요. 사실 기계적인 관점에서 사람을 이해하는 거네요. 우리가 계속 얘기하듯이 인간은 지금 굉장히 다른 존재인데 그냥 기계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 같아요.
A: 와이파이 끊기고 통신 끊기면 이제 속수무책 되잖아요.
Q: 그러면 인문학 교육을 강조하시는 것도 이 같은 의미인 것 같은데?
A: 그렇죠. 인공지능 시대일수록 사실은 저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많은 분들이 인간의 일자리 이걸 대체하게 되면 인간이 어떻게 살 거냐 막막하다 노동 문제죠. 그런 얘기하는데 조금 전향적으로 상황을 좀 바라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사회 제도화 시스템이 좀 개선되면 이런 상황인 거예요. 이 기계가 또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부분 대신해줘.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도 별로 없어 이런 상황이 될 수 있겠죠. 그럴 때 뭐 할 거냐 뭐 하고 살 거냐 건물주가 꾸는 사람 되게 많잖아요. 좋아 건물주가 됐어. 그래서 이제 나는 일을 더 이상 안 해도 돼. 이 상황 사실은 같은 상황이에요. 그럼 때 어떻게 살 거냐 뭘 하면서 의미와 가치를 즐길 거냐 어떻게 좀 더 재미있게 살아갈 거냐 이 질문에 답하는 건 인문학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미래 사회에 우리가 정말 노동에 해당하는 고역이죠. 이걸 더 이상 안 해도 될 때 어떻게 살지 어떻게 더 재미있게 살지. 그걸 다 할 수 있는 게 인문학이고 또 예술이 아닌가 생각을 해요.
Q: 그런데 사실 또 보면은 걱정 없이 돈 쓰고 다니면 좋지 막 이러는 분들도 있잖아요.
A: 질려요. 금방 진짜 금방 질려요. 뭐 또 누가 댓글을 달겠죠? 니가 해봤냐? 그렇죠 별로 그런 소비만으로는 즐거울 수가 없어요. 지속적이지 못해요. 그리고 또 모두가 그렇게 되면 사실. 맞아요. 과시를 못해요. 인스타 해봤자 소용이 없어 요.아무도 안 봐요. 스스로 발명할 수 있어야 되고 뭔가 창조하고 재미거리를 찾아낼 수 있어야 되고. 그러니까 인간이 사실 좀 그래요. 차별화 속에서 되게 자부심도 느끼고 느끼는 거 좋아하고 플렉스도 되고 하는데 그럴 거리가 없어지면 ,통장 잔고 다 비슷하면 뭘로 어떻게 어필할 건데요. 그때는 정말 두뇌로. 뭔가 이렇게 하여튼 두뇌와 몸뚱아리로 해야 될 것들이 이제 필요하죠.
Q: 오히려 좀 더 더 원초적으로 갈 수도 있겠네요. 그때가 되면 비교가 되는 게 그러면 인문학도 뭐 다양한데 이제 어떤 인문학이어야 되냐가 좀 궁금한 부분이 있어요. 교수님은 기존의 문사철은 해체가 돼야 된다. 저는 이제 사학을 전공했는데 그러시군요. 굉장히 그러면 이제 교수님이 말씀해 주시는 확장된 언어라든지 확장된 문해력 확장된 인문학이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A: 사실 전문 분야로서의 인문학 개별적인 거 가령 17세기 프랑스어 해독 능력 이런 게 없어질 수는 없죠. 그런 전문 분야로서의 인문학에 해당하는 과목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해체하자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런 전문가는 물론 필요해요. 그런데 이제 문사철이라는 말로 묶는 묶어내는 그런 인문학이 과연 지금 시대에 의미가 있을까요? 왜냐하면 인문학은 이제 역사를 통해서 좀 살펴보면 시대마다 그 성격이 달라졌어요. 인문학의 성격이요. 그리고 우리가 문사철 그러는데 문학 역사 철학이라는 말이 생긴 게 19세기 후반입니다. 그전에는 그런 말이 없었어요. 동양의 문화권 내에서는.
Q: 그럼 뭐라고 불렀나요?
A: 그냥 시와 사. 철학은 없었고요. 유가 경전이나 불가, 도가 이런 거 있잖아요. 그리고 사라는 것도 서양식의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그 역사가 아니었어요. 사서라고 불리는 이 문헌들도 다른 성격을 갖고 있었고요. 그게 이 리터러처, 히스토리, 필로소피, 이 말을 일본의 근대 메이지 유신 시기에 니시 아마네라는 사람이 고민 끝에 말을 만들어서 번역한 거예요. 철학이란 말은 1800년대 후반에 발명된 말입니다. 그전에 그런 말이 동양에 없어요. 동양 철학은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라면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문사철 인문학 이거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최근에 (150년 전에) 만들어진 묶음이고. 그런데 제가 고민을 좀 더 해 보니까 인문학의 핵심에는 언어 사랑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인문대’ 그러면 언어를 중심으로 가잖아요. 문헌을 좋아하고 그 의미를 따지고. 쓰는 거 좋아하고. 인문학이 결국 언어 사랑이라면 지금의 언어가 뭘까를 생각해 본 거예요. 지금의 언어는 단지 글과 말 이걸로 이제 한정되지 않는 거예요. 당장 신문을 봐도 뭐 그래프 나오고 약간의 수식도 나오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수학, 과학, 예술, 디지털 이런 것들도 다 언어라고 우리가 봐야 된다, 그러면 이걸 해독할 수 있어야 돼요. 과거에 언어를 해독하는 리터러시라고 그걸 한 게 인문학이었다면 이제는 확장된 리터러시가 필요한 거죠. 그리고 그걸 다루는 확장된 인문학이 필요하다, 이제 그렇게까지 가는 겁니다.
Q: 지금의 기준으로는 이과의 영역까지 포함이 되는 건가?
A: 상당 부분 포함돼야 되죠. 그거 모르면 그냥 말 못하는 사람하고 똑같아요. 현대의 문맹은 그 디지털 문맹 예술 문맹 수학 문맹이기도 한 거예요. 그건 누구나 배워야 되는 기초로서 우리가 모두 갖춰야 할 능력 그렇게 봐야 되는데.
Q: 보통 문사철 전공하는 사람들이 보면은 옛날에는 소위 수포자들이 많잖아요. 수학 포기한 사람들이 그런데 지금의 확장된 인문학의 개념으로 보면은 그러면 안 될 거네요.
A: 그렇죠 안 되죠. 사실은 현대를 살아갈 때 수학을 빼고 살아간다 말이 안 되는 건데 지금 우리 현실은 안타깝게 그런 경향이 크죠. 특히 이제 나이 든 분들이 더 자기 세대에서 배웠던 그걸 그냥 그대로 후손에게 미래 세대에게 전가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고. 마치 그거는 애들한테 한글 안 가르치고 구구단 안 가르치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문사철만 이렇게 가르치는 거는, 기본 능력인데 안 하고 있다, 그게 제 문제의식인 거죠.
Q: 그래서 이게 이제 인문학 르네상스라는 게 이제 그런 의미인가?
A: 인문학의 힘을 발휘해야 돼요. 이런 형태로 모두에게 필요한 거다. 사회의 고민을 같이 같이 풀어줄 수 있다, 이것까지 우리가 입증해야 되는 거죠. 그러면 이제 그동안 인문학의 위기니 지원을 안 하느니 그렇죠 뭐 이런 얘기들이 들어갈 거예요. 왜냐하면 사회가 인문학을 필요로 한다라고 공감하게 되면 지원도 해야 되지. 왜 앞으로 교수들이 안 나오는데 박사가 없대, 이게 이제 풀릴 수 있지 않나 생각을 하는 거죠.
Q: 대신에 그 인문학이라는 게 지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거에 비해서는 훨씬 확장된 개념인 거네요.
A: 그러니까 교양 과정 전체 수준으로 확장되는 거죠. 그중에 이제 전통 인문학도 역할을 하되 자연과학, 예술, 디지털, 수학 이런 것도 얼마만큼은 같이 거기 들어가야 한다. 그러니까 사실 이런 거예요. 인문학의 영토를 넓히겠다는 거예요. 우리도 좀 같이 역할도 하고 생활도 하고. AI 세상 속에서 인문학의 영토를 넓혀보자 넓혀야 하고. 모두에게 필요해요.
Q: 그리고 챗GPT 등장 이후에 프롬프트를 쓰는 능력 한편으로는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고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교수님은 또 그것도 본질은 아니다 이렇게 말씀을 주셨는데 오히려 더 전문적인 지식을 공부해야 한다 이렇게 말씀을 주셨어요. 이게 삶의 태도가 달라져야 된다 그러면 어떤 능력을 갖춰야 되는 건가요?
A: 생성 인공지능 챗GPT 이런 애들 써가지고 뭐 쉽게 뽑아내는 거 이거는 별일 아니에요. 태도를 우리가 이제 달리해야 되는데 질문을 잘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질문 잘하려면 어때야 할까요? 우리가 알아야 질문해요. 그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제대로 모르면 질문도 잘 못해요. 일단 뭘 질문 해야 될지 자체도 몰라요. 그래서 우리가 전문 역량 전문 지식 이걸 갖출수록 더 더 깊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일종의 마중물 같은 건데요. 마중물이 사실은 양하고 관련되는 건 아니지만 자기가 잘 집어넣어야 꺼낼 수 있는 거, 그러려면 집어넣는 실체가 되는 뭐 이게 이제 전문성이랄까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아까도 잠깐 말씀드린 것 좀 생성된 거의 결과물의 진위, 가치, 이런 것들을 판정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요. 만약에 그걸 게을리하면 한마디로 인공지능하고 똑같은 수준 또는 인공지능만도 못한. 왜냐하면 할 수 있는 건 자기는 적으니까 그걸로 이제 머무는 거죠.
Q: 그러면 정말 더 열심히 살아야겠네요.
A: 네 사회에 나가서 할 일도 없고 그리고 또 당장 자존심 상하잖아요. 그렇죠 인공지능하고 비교해서 비슷하거나 못하다 이거는 좀 아닌 거죠. 그렇게 살면 안 되겠죠.
Q: 그러니까 최소한 내가 인공지능의 결과물을 평가할 수 있는 정도의 위치가 되려면 어느 정도는 뭔가를 공부를 하든 뭘 하든 노력을 해야 되는 거네요.
A: 그렇죠. 과거보다 사실은 더 전문적이어야 한다. 더 지식을 갖춰야 한다. 저는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더라고요.
Q: 오히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다 해주니까 이거 리포트 쓰는 학생들도 그렇겠지만 인공지능이 해주니까 되는 거 아니냐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해서는 인공지능 정도의 레벨이거나 혹은 그것보다 아래에 머물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되고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되는 거네요.
A: 인공지능이 생성한 결과물들이 인터넷에 막 늘어나잖아요. 또 인공지능이 얘를 학습하면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품질이 떨어지게 된다. 하향 평준화가 될 거다. 인터넷 콘텐츠가 그런 얘기가 많이 있어요. 우리가 이제 미드저니 얘네들이 만든 거 보면 너무 판에 박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판에 박힌 걸 학습해서 더 판에 박힌 게 되고 하는 방향으로, 또 거짓 정보 이런 것들이 확대 재생산해 가지고 인터넷 상에 늘어난 걸 또 학습하고 이런 상황이 될 수 있는데 그걸 우려하는 분들 되게 많아요. 왜냐하면 인터넷상의 99%가 그런 정보다. 인터넷이 완전 방사능 오염된 그런 상황하고 비슷하게 되는 거죠.
Q: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저는 거기에 대해서도 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 생각을 해요.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인터넷 상에 온갖 거짓 정보와 질 낮은 정보가 가득 찼을 때 어떻게 하고 싶어요? 거기서 좋은 정보를 일단 건져서. 야 그렇죠 누구나 원할 거예요. 아 이거 검색해서 나오는 이건 더 이상 내가 만나면 안 되겠다. 그러면 이런 아이디어가 가능해요. 어떤 신뢰할 만한 그런 사이트나 커뮤니티 이게 형성돼서 그 안에 있는 건 일단 엄청 검증된 거고 서로 그 구성원들이 동의할 수 있는 그런 거다라고 하면 딴 데 안 가겠죠. 이런 데 몇 군데만 가겠죠. 그럼 거꾸로 보면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실질적으로 공론장이 사라졌어요. 왜냐하면 다 막 서로 거짓 정보의 끼리끼리, 에코 챔버라고 그러죠, 서로 모여가지고 같은 비슷한 얘기끼리만 듣고 이런 상황인데 어찌 보자면 그러면서 이제 공론장 자체가 실종된 상황이라면 오히려 이렇게 더 오염되고 나면 자기가 틀리면 안 되니까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정확해야 하니까, 그런 커뮤니티에 돈을 내더라도 모이게 될 거예요.
Q: 오히려 대피소 같이?
A: 그렇죠 ,그래서 쉘터, 대피소가 돼서 그 안에서 새로운 공론장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라고 생각해요.
Q: 그러면 그런 공론장에서 유통되는 정보들 혹은 콘텐츠들은 인간이 직접 만든 거일 가능성이 좀 높겠네요.
A: 그렇죠, 직접 만들고 이제 확인도 하고. 사실에도 여러 등급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경제적으로건 사회 인간관계에서건 자기한테 이익이 될 수 있는 그걸 알았을 때 이익이 될 수 있는 거라면 그걸 이용할 것 같아요. 그리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 가령 부장님께 보고하는데 생성물을 그대로 믿을 거냐 아니면 여기를 한번 거쳐서 그렇죠 보고할 거냐? 이런 식의 차이가 날 뭔가가 형성되면 거기서 이제 뭔가 이렇게 합의도 가능하고 이런 담론들이 오가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좀 해보게 됩니다. 아예 다 망가지면 오히려 그런 게 생겨날 수도. 더 가치가 있어지겠죠.
Q: 마지막으로 이제 교육과정 재편에 대한 문제도 한번 여쭤보고 싶은데 교수님 주장 중에서 이제 문과를 폐지해야 한다 이런 말씀도 있으셨어요. 이거는 또 어떤 의미인가요?
A: 문과를 폐지하면 뭐가 남죠? 이과가 남나요? 아니죠. 이과가 남는 게 아니죠. 그걸 이제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것 같아요. 문과를 없애면 이과가 남는다. 이게 너무 문이과 쌍을 가지고 우리가 그동안 익숙했으니까. 문과가 있는 게 사실은 일본하고 한국밖에 없고 일본의 어떤 잔재거든요. 잘못된 제도의 잔재 근데 문과를 없애면 그냥 통합된 것만 남아요. 그럼 같은 얘기라도 이과를 없애자고 그러지 왜 문과를 없애자고 그러냐, 안 그래도 문송인데? 그거는 요점이 있습니다. 아까도 잠깐 그 말씀하셨는데 이과의 핵심에는 수학이 있어요. 수포자가 문과 간다, 이런 얘기도 많이 현실에서는 성립하고요. 근데 수학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현대 사회의 기본 언어예요. 이 언어를 모르면 바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문이과를 구분하고 문과 학생들에게, 인구의 절반이건 뭐 조금 절반보다 못 미치는 애들이건, 그 미래 세대에게 수학을 빼고 가르치는, 저는 그게 핵심이라고 봅니다.
Q: 수학을 빼고 가르친다는 게 문제라는 건가요?
A: 기본 소양인데, 기본. 구구단이나 글자 아는 것 수준의 소양에 해당하는 그것을 누구한테는 빼고 가르친다, 빼기식 교육이다라고 생각하니까 이건 아닌 거죠. 수학도 양도 많고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그 안에 복잡한데 수학의 얼마만큼을 기본으로 생각하고 가르쳐야 하느냐 , 어떤 수학적인 사고 얼마나 해야 되느냐, 이런 것들은 사회적인 논의가 좀 필요하겠죠. 이과 수학을 다 가르친다 이거 아니죠. 그렇게까지 가자는 얘기는 전혀 아니니까, 어느 정도의 양을 정해놓고 여기까지는 다 같이 다 같이 배우고 배우고, 그다음에 전문적으로 들어갈 일종의 선택 과목에 해당하는 것들도 완전히 배우자, 이런 건 아닌 거죠. 하지만 빼기 교육은 안 된다, 애들한테 기회를 박탈하는 거라고. 그런데 지금은 너무 줄인 것 같아요. 문과 애들은 완전 바보 만드는 그런 교육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굉장히 위험한 발언인데요. 어쩔 수 없이 할 얘기는 해야 되는 것 같아요.
Q: 아니 근데 이게 입시 제도는 근데 지금도 제가 알기로는 문이과가 통합해서 이렇게 하는 걸로 최근에는 바뀐 걸로 알고 있는데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여전히 그래도 뭐 문과반 이과반 이렇게 나누잖아요. 그럼 여기가 먼저 바뀌어야겠네요.
A: 아니죠. 대학교가 바뀌어야지요. 대학이 바뀌면 따라가는. 대학이 바뀌고 대학 편제가 가령 지금은 학과로 뽑죠. 그러면 그 학과가 원하는 과목을 입시에서 봐요. 그럼 가령 이제 문이과는 폐지됐지만 선택 과목별로 미적분을 선택하면 이과인 거예요. 확률과 통계를 선택하면 문과인 거예요. 사실상 나뉘는 거죠. 네 그러니까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서 뽑는 사람들이 원하는 게 지정돼 있기 때문에 갈라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 학교 가서 공학 공부하고 싶으면 무조건 미적분 해라.
Q: 근데 그것도 이상한 게 있는 거 아닌가요?
A: 근데 그것도 이상한 게 사실은 미적분뿐 아니라 확률 통계도 엄청 중요하거든요. 그렇죠 다 배워야 돼요. 이게 이제 딜레마이긴 해요. 미적분이 문과 애들한테는 안 중요하냐? 그 사고는 중요해요. 변화에 대한 사고라든지 그걸 배울 기회가 없게 된다. 그거는 제가 볼 때는 좀 말이 안 되죠.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생각하는 거이기도 할 텐데, 사회적으로 좀 잘 합의를 봐야 되는데 입시 앞에서는 꽉 막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교수들도 사실은 자기 기득권을 별로 놓고 싶어 하지 않는 부분도 있고요.
Q: 조금 더 나아가서 지금 대학에서 산업에 즉각 투입할 수 있는 기업에서 채용만 딱 하면 바로 일할 수 있는 그런 인력을 양성하는 곳으로 바뀌었잖아요. 이미 그런 건 꽤 된 것 같은데 이게 어떻게 보면 청년들한테 되게 무책임한 일이다 이렇게 말씀을 주셨어요. 그러면 대학은 어떻게 바뀌어야 될까요? 그러니까 고등 소위 말하는 고등 교육은 어떤 인재를 양성을 해야 되는 건가요?
A: 이 지점도 되게 중요한데 제도적으로는 별로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는 곳인 것 같아요. 앞으로 기자님은 몇 살까지 살 것 같아요? (저희는 90은 되겠네요. 보다. 거의 한 100살까지는 살지 않을까요.) 맞아요. 그 정도 대답을 해요. 보통 대학교 때 배운 것 갖고 100살까지 갈 수 있을까? 이게 가장 큰 질문인 거예요.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도 빠르게 바뀌지만 직업 상황도 계속 바뀌고 그 새로운 직업에 필요한 어떤 역량을 학습하는 시기도 거쳐야 될 거예요. 과거 산업시대에는 한 번 대학에서 배운 거를 평생 활용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 지식은 별로 큰 의미를 갖지 못해요. 그렇다면 그걸 직업 소양에 해당하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거 이게 과연 중요하냐 20살 언저리의 그 젊은 사람들이 아니면 그때 학습 능력 자체를 기르는 아까 말씀하신 근육을 기르는, 그래서 나중에 재교육을 필요로 할 때 그 내용을 습득할 수 있게끔 하는 그 능력 이걸 기르느냐 이건 되게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Q: 대학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최소 저는 대학교 초기 아니면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이라도, 앞으로 뭘 배울지 모르잖아요, 지금 뭐 이과라고 계속 이과 인문사회계라고 앞으로도 계속 인문사회계, 이건 아니니까 골고루 좀 배우자는 거예요. 골고루 기본에 해당하는 걸 배우고 그다음에 전문 영역으로 가죠. 가령 대학을 한 3년으로 줄이고 그 과정에서는 이런 공통에 해당하는 뭔가를 배우고 그다음에 대학원 과정 석사 조금 당겨서 그 기간에 이제 보통 전공이라고 과거에 불렀던 걸 배우자 ,이렇게 가면 두 가지가 좋은데 한 개인의 미래를 위해서 좋아요. 뭘 앞으로 배워야 할지 모르니까. 두 번째는 이른바 융합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어요. 지금 융합이 잘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공계와 인문사회계 언어가 너무 달라서 그래요. 대화가 안 통합니다. 실제로 융합하고 협업한다고 모여놓고 프로젝트 끝날 때쯤 돼서 야 네가 얘기했던 게 그거였냐? 뒤풀이 자리에서 이런 경우가 태반이에요. 너무 언어와 사고 방식과 이런 게 달라서 근데 만약에 한 3년 정도라도 공통의 언어를 서로 이른바 문과 이과 이렇게 치자면 그 공통의 언어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면 10년 뒤에 다시 만났을 때 바로 협업 가능합니다. 그래서 이제 그런 종류의 교육을 하는 게 개인에게도 우리 사회에도 좋지 않나. 그리고 거기가 바뀌면 중고등학교 때부터 준비할 수 있으니까 더 유리하고요. 그러니까 지금 어떻게 보면 대학 교육이라는 게 학생들이 이렇게 그릇을 가져오면은 일단은 막 뭐를 그냥 채워 넣는 시기인데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거는 당장 채워 놓은 거 4년 동안 아무리 채워 가지고 나가 봐야 5년이면 다 거덜나잖아요.
Q: 그러니까 사실 저 같은 경우도 아까 말씀드렸듯이 역사 전공을 했는데 실제 일하면서도 많이 쓸 일이 없고 끽해 봐야 뭐 대학교 동기들이랑 모여서 그냥 저희끼리 소위 이제 뭐 술 먹으면서 농담할 때나 이제 뭐 쓰는 정도가 돼버렸는데 그럴 게 아니라 차라리 그릇을 쫙 키워놓으면 아 비유 좋네요.
A: 나중에 내가 다시 또 뭔가를 공부해야 될 때 혹은 일을 하면서 뭔가 공부해야 될 때 이거를 훨씬 더 받아들이기 수월하고 더 넓게 많이 저장을 할 수 있으니까 오래오래 쓸 수 있겠다. 일단 그게 하나가 있는 거고, 다른 하나는 융합적인 측면에서 사회적인 지식의 융합이라고 할까요.
Q: 업무상의 협업도 마찬가지라는 건가요?
A: 업무상의 협업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모여서 어차피 같이 작업을 해야 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면 이거는 안 되는 거죠. (저희 같은 경우도 개발자분들이랑 일할 일이 있을 때 서로 약간 못 알아듣는다라는 느낌을 가지고 서로 소통을 하고 그런 게 어떻게 보면 되게 힘들 때도 있고 불편할 때도 있고 일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말씀하신 대로 나중에 말해보면 말씀대로 아 그게 그 얘기였어요.) 대학에서 진행되는 거의 모든 융합 프로젝트는 다 실패했어요. 그러니까 그건 한국뿐 아니라 외국도 그래요. 지금 외국의 융합 사례 MIT 미디어 랩 어쩌고 나오잖아요? 지금 얘기 없어요. 그 얘기는 언젠가부터 지지부진하다는 거예요. 별로 성공 사례가 안 나옵니다. 그렇죠 융합 성공 사례 옛날 얘기들이에요. 다 이게 뭔가 안 되고 있는 거죠. 좀 어설픈 융합이거나 성공적인 사례를 우리가 이제 만들어내려면 결국 사람이 대화가 돼야 된다. 그러니까 대학교에서 통합 교육을 하잖아요. 그럼 입시에도 통합된 뭔가 능력을 볼 거 아니에요? 그럼 통합 능력을 기르는 거죠. 좁은 게 아니라 넓게 넓게.
Q: GPT 얘기에서 시작을 해서 또 교육 얘기까지 나왔는데 저는 정말 너무 재미있었던 게 사람이어서 너무 뿌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항상 GPT 관련해서 이제 많은 분들을 모시고 얘기를 하면 인공지능한테 우리가 막 잡아먹힐 거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모두 어쩌보면 기계적인 관점에서 얘기를 하시는 건데 오히려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게 이렇게 많구나라를 좀 더 많이 느낀 것 같아요. 저 얘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또 그런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기 위해서 교육 과정까지 좀 바뀌어야 된다 이런 얘기까지 저희가 들어본 것 같은데 긴 시간 동안 너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가지고 또 감사합니다. 교수님 더 해주고 싶으신 말씀 있으신가요?
A: 아니요. 말씀보다는 이 책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데 오늘 나눈 이야기가 이 책의 10분의 1도 안 될 거예요. 그러니까요. 맞습니다. 아 근데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이 책을 다 읽고 재밌는 질문들을 쏙쏙 뽑아서 이렇게 우리 시청자께 주시고 역시 문과 공부, 역사 공부 역사, 인문학 공부를 한 분이어서 더 좋은 질문을 하실 수 있었던 것 같네요.
Q: 시청자의 입장에서 또 여쭤보는 거니까요. 아마도 굉장히 재미있으실 거라고 저도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책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요. 또 교수님도 긴 시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A: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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