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선진국을 위한 인문학의 역할’ 세미나에서의 질의응답 몇 가지

지난 토요일(2025.12.13) 디지털소사이어티에서 주최한 학술세미나 ‘AI 선진국을 위한 인문학의 역할’에서 제게 주어진 질문 및 소감을 아래와 같이 답했습니다.

“지금 AI 양강이 미국하고 중국인데요. 과연 이 나라시민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괜찮은가, 행복한가, 이걸 꼭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AI 3강을 목표로 하면서 미중의 모습을 지향하고 있다면, 굉장히 길을 잘못 든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고요. 그런 점에서 현재의 방향에 대한 질문을 함께 던져야 합니다. 기술적인 성취가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걸 환기하는 자리였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AI의 도구적 측면을 예전의 기술과 비교해 보면, 지금까지의 기술은 대부분 몸의 확장이란 성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디지털 기술도 일부 그렇지만, 현재 AI 기술은 우리의 생각 활동, 뇌 활동을 증강시켜 주거나 그것과 연관된 활동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증강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자꾸 외주 주고 의탁하는 경향이 만연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이들부터 초등생 그리고 대학생까지 그리고 심지어 일부 연구자나 전문직 종사자들도 그러고 있다는 겁니다. 아까 제가 발표할 때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처음엔 그냥 도움을 받으려고 그렇게 해 볼 수도 있어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전적으로 의탁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요다. 제가 소개해드린 미국의 많은 자료들이 그 현황을 보여주고 있고요. 국내에선 유감스럽게도 아직 거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그런 차이만 있지 결국은 전 인류 수준에서 그렇게 갈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우려됩니다.”

“우리 교육은 어떻게 가야 하나인데, 사실 굉장히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의 교육 모델은, 특히 입시와 선발이라는 모델은, 산업화 시대를 표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때는 대학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은 거의 다 선진국에서 수입한 거였고, 대학에서 배워서 졸업하면 평생 정년 마칠 때까지 써먹을 수 있었습다. 근데 얼마 전부터인데 성격이 바뀌었죠. 그러니까 지금은 대학을 졸한 후에도 성인으로서 평생교육 형태로 지속적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회에 유의미한 활동을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습니다. 꽤 됐는데, AI가 들어오면서 그게 가속화된 부분도 있어요. 문제는 우리의 선발과 평가 방식이 여전하다는 겁니다. 그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도 굉장히 오래 됐고요.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대입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입시라는 게 도대체 도대체 교육적으로 어떤 훈련 효과가 있느냐, 즉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데 있어서 얼마나 유의미하게 작동하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사실 수능 점수 잘 따는 것과 아이들의 지적인 역량은 전혀 상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과거엔 상관관계가 꽤 있었을 것 같을 것 같아요. 지금은 대학 교수들도 못 푸는 문제를 과목별로 출제하는 게 현재 상황인데, 애들은 그걸 잘 푼다는 거죠. 다르게 얘기하면 그런 걸 풀기 위한 연습을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 얘기는 거꾸로 얘기하면, 꼭 배양해야 할 역량을 기르는 데 투자하는 시간 대부분을 낭비하거나 허비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학년에서 글쓰기 교육이 강조되는 건 맞고 중요하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입시와의 연관성이 멀어지면서 저학년 수준의 활동으로 머문다는 게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인간이 몸을 갖고 있다는 건 굉장히 특별합니다. 아까 AI가 외계지능, 낯선 지능이라고 했지요? 좋아요, 그건 맞는데, 인간 사이에서 뭔가가 오갈 수 있다, 아주 넓은 의미의 커뮤니케이션 또는 공감, 공진,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건 우리가 얼마나 비슷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덕분에 예술도 가능하고 문학도 가능하고 철학도 가능하고, 등등, 이런 것들이 가능한 이유가 거기에 있고요. 우리가 그런 활동을 하면서 그게 필요하고 소중하다라는 걸 그냥 바로 알아요! 그러니까 기술과 경제와 돈이 중요하다는 걸 아는 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 같아요. 우리가 몸을 지니고 있고, 유한한 존재고, 얼마 있다 죽고, 이런 건 너무 뻔한 우리들의 조건이죠. 우리는 설명하지 않더라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층위에 존재하는 많은 현상이 있고, 그건 데이터화하기 힘든 굉장히 어려운 것으로 여전히 남는 것 같아요. 우리 사이에 대화와 소통이 가능하고 예술 활동이 가능하다는 게 도대체 뭘 뜻하는지 확인됩니다. 동시에 이를테면 ‘마감의 미감’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어디까지를 완성품으로 생각할 것이냐에 대한 감각이죠. 어떤 안목이자 취향일 겁니다. 그게 점점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는 건 굉장히 우려할 만한 상황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인간만의 독특함이 어디서 주로 확인되냐면 ‘뾰족함’이거든요. 평균적인 것, 그냥 판에 박힌 것, 이런 것들은 AI가 잘 처리하고, 그런 것들을 외주 주는 건 큰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뾰족함마저 우리가 외주 주거나 포기한다면 결국 ‘인간이라는 가치’에 남는 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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