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지능의 시대 (2025 행복북구문화재단 문화예술담론지 함지 vol.9)

2025 행복북구문화재단 문화예술담론지 함지 vol.9, 38-43쪽에 수록된 글입니다.

AI를 포함한 디지털 기술이 시대를 삼키고 있다. 기술 발전에 따른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하고 있다. 미래를 예측 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매일이 다르다. 이처럼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시절에 어울리지 않게, 나는 취향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소식과 더불어 취향을 훈련하는 방법을 말해볼까 한다.

오늘날 기술은 모든 걸 주도하고 있다. 기술만 잘 구사하면 ‘떼돈 번다’라는 풍토가 전 인류를 휩쓸고 있는 형국이다. 기술로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은 시작에 불과하다. 때마침 2024년 9월 20일, 아누 아트룰루(Anu Atluru)가 운영하는 ‘Working Theorys’라는 블로그에 흥미 로운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취향이 실리콘밸리를 삼키고 있다(Taste Is Eating Silicon Valley」. 그렇지 않아도 ‘취향’ 이 중요하다고 떠들고 다니던 터에, 무슨 말을 하는지 호기 심이 일었다.

글의 핵심은 ‘미학적 생태계’를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있다. 그러면 왜 이런 주장이 나왔을까? 과거 2000년대에 막접어들어 닷컴 버블이 꺼진 후, 가장 중요한 것은 디지털 기술이었다. 기술력이 있으면 다 잡아먹었다. 뭘 잡아먹었느 냐? 전통적인 오프라인 사업들을 다 잡아먹었다. 가령 유통은 아마존이, 상거래는 이베이가, 광고 시장은 구글이 독점 하다시피 했다. 이렇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기술력, 즉 소프트웨어를 잘 만들면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20년 넘게 이어져 왔으며, 최근에는 AI 기술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된다.

그러면 지금은 어떠냐? 아트룰루에 따르면, 상황이 달라 지고 있다. 발전한 기술을 누구나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기술 발전, 비용과 복잡성 감소, 코딩 기술의 민주화로 인해 소프트웨어의 대중화가 실현되었다. 지금은 AI가 소프트웨어 개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단계에 왔다. 이런 점들이 중요한 변화다. 이제 기술력만으로 승부하기 에는 서로 실력이 비슷비슷하다. 독보적인 기술 우월 성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경쟁과 실력이 치열하다 보니 최첨단 기술을 누가 유일하게 갖고 있다고 얘기 하기가 참 어려워졌다. 성능이 비슷비슷해진 측면이 있다. 이제 기술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까? 기술력만으로 승부를볼 수 없게 되니까 실리콘밸리에서도 취향이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트룰루는 말한다.

본래부터 기술은 문화와 깊이 얽혀 있었다. 다만 과거에는, 이 사실이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기술력이 비슷해지면서 문화가 눈에 띄게 되었다. 아트룰루는 ‘미학적 생태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요 키워드는 가치관, 디자인, 브랜드, 사용자 경험, 스토리텔링, 역사, 커뮤니티, 라이 프스타일, 문화적 적합성, 느낌, 감정적 경험(울림), 정체성, 주목(attention) 같은 것들이다.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미학적 생태계를 이루 는데, 이건 기술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이 점이 중요 하다. 아트룰루가 언급한 건 아니지만, 최근의 예를 보자. 패션 업체 파타고니아는 환경 문제에 대한 진지한 메시지와 활동으로 인해 강력한 브랜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 옷을 사지 말라’고 하는데도 자발적으로 구매가 이루어진다. 한편 트럼프 정부 2기가 출범하면서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정부효율부(DOGE)의 수장으로 가는 바람에 테슬라의 판매량이 급감했다. 트럼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엮이면서 일어난 일이다. 기업의 창업자나 최고 경영자 등 주요 인물이 갖고 있는 내러티브, 스토리가 기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건 최근의 일만은 아니 다. 사실 이런 걸 굉장히 잘하는 기업이 애플이다. 또 2025년 APEC 기간 중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 젠슨 황이 이재용 회장 및 정의성 회장과 깐부치킨에서 회동한 사건도 실은 스토리 만들기의 일종으로 볼 수있다. 이런 건 모두 기술력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미학적 생태계가 주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자본은 이제 취향을 입은 실용성, 아름답게 조각된 기능, 예술로 포장된 기술, 이런 것들이 몰리고 있다고 아트룰루는 말한다.

이어서 스테파니 타일러(Stepfanie Tyler)의 칼럼을 볼 텐데, 제목이 「취향은 새로운 지능이다(Taste is the new intelligence)」이다. 이 칼럼은 앞에서 본것보다 한 걸음 더 나갔다. 기술뿐 아니라 현대 사회 에서 가장 중요한 게 취향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AI 가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에 ‘이거 과연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고, ‘과연 만들 가치가 있을까?’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가치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이 없다면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늘날 가치 있는 건 무엇일까? 타일러는 주목(attention)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답한다. 콘텐츠가 넘쳐날 때는 특히 ‘이거’라고 내보일 수 있는 것, 그러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꽂히게 할 수 있는 무엇을 찾아내거나 만드는 게 필요하다. 그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능력은 바로 ‘큐레이션’이다. 미술 전시회 같은 것을 할 때 어떤 작가와 작품을 어떤 주제와 순서로 꾸며서 관람객에게 보여줄 것인가를 짜는 사람이 큐레이터고, 그 작업이 큐레이션이다. 큐레이션은 영화나 드라마, 혹은 유튜브 콘텐츠의 콘티 짜고 연출하는 작업과 동일한 능력이 필요하다. 타일러는 큐레이션이야말로 새로운 IQ라고까지 말한다. 이 능력이 있으면 오늘날 우리가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이 고, 없으면 꽝인 셈이다.

그런데 큐레이션을 좌우하는 건 결국 취향이다. 하지만 취향과 관련해서 많은 오해가 있다. 최신 유행을 민감하게 따라가는 것은 취향이 아니다. 좋아 보이는 걸 미적으로 모방하는 것도 흉내 내는 것일뿐 취향이 아니다.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비싸게 지불해서 갖추는 일, 즉 명품 두르는 것 따위도 취향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피상적 감각에 불과하 다. 그러면 취향은 무엇일까?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중요한 걸 고르는 내적 일관성 (coherence)이다. ‘일관성’이란 비슷한 눈높이에서 계속 골라낼 수 있는 안목이고, 바깥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에 ‘내적’이라는 말을 썼다. 취향은 노이즈 속에서 어떤 신호를 식별해 내는 능력이기도 하다.

취향은 훈련을 통해 길러낼 수 있다. 타일러는 세가지를 언급한다. 첫째, 의도적인 소비. 유행 좇아서 소비하는 게 아니라 내가 고르고 골라서 마음에 드는 것만 소비하겠다는 뜻이다. 둘째, 인내. 인내는 진짜 중요하다. 인내는 내 마음에 드는 게 발견될 때까지 버티는 일이다. 끝으로, 자각. 나 자신을 돌아볼 줄아는 능력이다. 자각이 안 될 때 우화에 나오는 까마 귀처럼 된다. 이쁜 깃털들을 주워 모아 자기한테 꽂고 이게 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참된 아름다움이 아니다. 취향은 훈련을 통해서 길러질 수있는 능력이다.

내 오랜 경험과 숙고에 따르면, 취향의 훈련은 인문학과 예술을 통해서 가장 잘 이루어진다. 인문학과 예술에는 오랫동안 고민하고 탐구한 ‘인간’의 대표적인 유형들이 담겨 있다. 인문학과 예술을 만남으로써 같은 고민과 탐구를 되풀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취향을 다듬어 갈 수 있다. 자기만의 심지(心 志)라고나 할까, 마음의 기둥 같은 것을 갖추어야 한다. 그건 어떤 것이 옳다는 도덕적 평가뿐 아니라 자기만의 아름다움과 멋짐을 보는 미적 평가의 잣대다. 그런 것들이 자기만의 취향을 형성하며, 그런 취향은 남들에게도 통한다. 취향은 훈련해야만 획득할 수 있는, 대신에 훈련하면 길러지는 자질이다.

나는 지금 시대에 취향이 승부처라고 본다. 맥락이 조금 다르지만, 기술력은 미국에서 이렇게 저렇게 훼방 놓을 수 있다. 일본은 40년 전에 반도체 1등 이었다. 그래서 미국이 개발을 막아서 결국 한국한테 뒤처졌고 지금 반도체, IT, 그다음에 디지털 기술 전반, 심지어 AI까지 후진국이 돼버렸다. 미국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완전히 밟아 죽이는 짓을 그동안 해왔다. 미국의 패권 앞에서 기술로 승부를 걸 때의 한계다. 하지만 문화는 성격이 다르다. 문화는 밟을 수가 없다. 마음이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K-pop이나 K-컬처는 누가 외부에서 강요해서 억누를 수 없다. 문화도 그렇고 취향은 무엇보다 그러하 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문화로 승부할 수 있는 최적 시기이다. K-로 시작하는 팝, 영화, 드라마, 음식, 뷰티, 패션 등이 승기를 탔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걸 어떻게 더 발전시킬지 생각해 봐야 하는 시점이다.

AI가 세상을 뒤덮고 있는 시대에 취향은 더 근본 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지금 시대를 ‘취향 지능의 시대’라고 명명하고 싶다. 기술이 일자리를 빼앗 으면서 ‘노동에서의 해방’이 아니라 ‘노동으로부터의 소외’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다른 한편 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일자리를 빼앗기면 상품을 살사람도 사라지기 때문에 기업은 더 이상 이윤을 창출 하기 어렵게 되리라는 또 다른 전망도 있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자본주의는 ‘기본 소득’에 해당하는 것을 전 인류에 지급하리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기계가 인간의 일을 상당 부분 대신할 수 있게 된다면, 인간은 이제 노동의 의무에서 벗어나서 삶, 자기의 삶 자체를 집중할 수 있는 식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일하는 시간이 대폭 줄고 주 4일 근무도 얘기되는데 그런 방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지금 불평등이 극심한 상황인데, 특정 집단이 그렇게 많이 가져가지 않게 하는 방식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가난, 굶주림, 재난 때문에 고통받지 않을 정도까지는 글로벌 거버넌스(governance) 수준에서 일단 보장하고, 그 밖에 더 즐길 사람은 즐기도록 하되 대부 분의 사람은 소소하게 자기 기쁨을 찾는 식으로 사회 구조나 제도 자체가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노동이 전부인 삶을 살다 보니 일 자체가곧 ‘나’이다. 앞으로 노동의 의무에서 벗어나면 일 말고 다른 것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찾아가야 할까? 인간이 인류의 역사 전체를 통해 성취하려고 했던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바로 ‘노동에서의 해방’인 것 같다. 가령 한국에서 현대인, 특히 젊은 친구들 모두의 꿈은 건물 주다. 노동에서의 해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이 라고 본다. 나는 이런 소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항상 질문한다. ‘그러면 건물주가 됐고 월 소득 1억이 됐다고 쳤을 때 어떻게 살 거야?’, ‘돈이 충분하고 시간이 충분하다면 너는 어떻게 살 거야?’, ‘뭐가 너한테 재밌는 거야?’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대답을 못 한다. 여행 좀 가고, 맛있는 것 먹는 거? 그건 금방 질린다. 다들 알고 있다. 그런 활동들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마약을 하고 극단적으로 가는 것도 재밌게 노는 법을 몰라서라고 본다. 이게왜 문제일까?

앞으로는 더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노동에 매여 있는 시간 동안에는 별 고민을 안 해도 됐다. 하지만 노동에서 놓여나는 순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정말 실존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타인과의 관계는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혼자 있을 때 뭘 해야 할지, 뭐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등등, 이런 것들이 물밀듯이 질문거리로 들이닥칠 수밖에 없다. 이건 아마 우리보다 더 잘 사는 나라들이 먼저 겪게 될 사회적 문제일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보면, 이를테면 상류 혹은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나 잘 사는 사람들이 여유가 생긴 다음에 할 일이 뭔지 고민해 본 적이 없어서, 방탕한 생활로 빠졌다. 그들에게 조금 먼저 닥친 일인데, 우리도 꽤 높은 수준의 선진 국이니까 곧 닥칠 문제일 것 같다. 그래서 인문학과 예술이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한다.

역사 이래 인문학과 예술은 잘 노는 법을 찾아온 노력의 기록이다. 비용이 많이 들지도 않고 질리지도 않는다. 심지어 일단 발을 들이면 아주 재미있다. 생
계 걱정이 앞선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즐길 여유를 인문학과 예술로 채우는 게 가능하며, 그것은 실로 바람직하다. 앞에서는 취향이 기술력을 넘어설 수 있는 성공 요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면, 지금 말하는 것은 취향이 더 잘 즐길 줄 아는 더 나은 인간을 만드는 요인이라는 점이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나아졌다는 느낌은 삶을 살 만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다. 내일은 오늘 보다 더 나아지겠다고 생각으로 노력한다. 지금껏 우리는 ‘더 나아진다’라는 말을 경제적, 사회적 의미로 받아들여 왔다. ‘더 나아진다’라는 말을 인간적 의미로 이해한다면 전보다 성숙했다는 징표가 아닐까?

기술 시대에 취향 지능이 새삼 소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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