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AI투자 규모 140조? 인류에 불행한 일… 기술은 ‘가성비’ 있어야 의미” (미디어오늘, 202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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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미디어의 미래] 철학자 김재인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생성형AI, 검색 엔진 대체 불가능 이야기 나오는 까닭은
“AI는 과거정보 토대, 새로운 것 찾는 기자 역할 기대할 수 없어”

박재령 기자 입력   2024.08.13 00:30

인공지능(AI) 시대라고 하는데, 일상생활에서 크게 변화한 건 없다. 만능 비서 역할을 기대했던 생성형AI는 친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틀린 답을 해 조롱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언론 등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았던 AI 기술의 한계가 곳곳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 러쉬마저 ‘버블’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주가는 요동치고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기업이 주도하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는 가운데 인문학적 관점에서 AI를 연구하는 철학자 김재인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AI를 기술적으로만 분석해선 안 된다고 단언했다. 인류 그리고 사회에 무엇이 이로울지 생각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재인 교수는 오는 9월 4~5일 이틀 간 열리는 2024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 ‘AI의 충격, 저널리즘의 위기와 기회’ 세션에 토론자로 나선다. 다음은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진행된 일문일답.

“생산성이 입증된 다른 AI도 많은데, 생성형AI가 꼭 답일까”

– 생성형AI(인공지능) 기준, 탄생 초기 관심을 받았던 것만큼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쓰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게 지금 문제다. 사실 저는 생성형AI에서 기대할 게 많지 않다고 본다. 그 안에 오류들이 많은 걸 사람들이 경험했지 않나.”

– 기자 입장에선 생성형AI를 써도 어차피 사실관계 확인을 한 번 더 거쳐야 하기 때문에 꺼려지는 면이 있다.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체험적으로 연구할 때나 논문을 쓸 때 생성형AI를 써보니 별로였다는 회의적인 얘기가 많이 나온다. 과학을 하는 분들도 최근에 토로하더라. 가령 통계 자료로 그래프를 그렸는데 오류가 너무 많아 그대로 발표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식이다. 정확성을 요구하는 전문적인 일에서 쓰긴 어렵다고 본다.”

– 이건 아직 기술이 과도기라 그런 건가.
“그런 것 같진 않다. 그래서 계속 강조하는 것이 생성형 AI는 검색 엔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학술작업을 하려면 신뢰할 수 있는 논문, 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요약해준다는 것도 100% 믿지는 못한다. 대중적 사안의 경우 활용할 수 있겠지만 네이버 지식IN보다 낫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하는 건 생성형AI가 아닌 다른 인공지능일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 AI는 치킨게임… 돌이킬 수 없다

– 생성형AI에 대한 투자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빅4(마이크로소프트·메타·알파벳·아마존)가 올해 AI에 투자한 금액이 140조 원이 넘는다 하더라. 기술이 인류에게 의미 있는 건 ‘가성비’가 있을 때다. 저렴하게 많은 사람들이 어떤 기능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생성형AI는 너무 비싸다. 데이터센터만 봐도 물, 전기 먹는 양이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비싼데 쓸모가 한정적이라면 인류가 굳이 계속 해야 할까. 생산성이 입증된 다른 AI도 많다. 생성형AI가 꼭 답일까. 이런 의문들이 드는 상황이다.”

– 기업들은 가능성을 믿고 있으니 투자를 계속 늘리는 것 아닌가.
“그들 입장에선 (돈을) 쓸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죽으니까. 이미 치킨게임에 돌입했다. 기술자들이 숨기는 것도 있다. 비즈니스를 하는 입장에선 생성형AI가 검색 엔진이 될 수 없다는 걸 얘기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숨긴다.”

– 포털 기업들이 주로 생성형AI에 주목했다. 검색 엔진을 대체할 것이라 사람들도 예상해왔다.
“생성형AI는 모르는 부분을 지어내서 메꾼다. 검색 엔진은 그렇지 않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봤을 때는 엉터리 정보가 무조건 섞여 있다. 처음 AI가 등장했을 때 포털 트래픽이 좀 떨어지기도 했는데 사실 그건 구글 독점 이슈 같은 게 훨씬 클 것이다. 생성형AI보다 검색 엔진이 경쟁력을 얼마나 갖추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 AI를 향한 기업들의 천문학적 투자의 끝은 결국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하나.
“돈을 써야 할 용처는 많은데 인류에게 불행한 일이다. 두 업체 정도만이 남지 않을까. 나머지는 투자 비용 날리는 것이다. 저는 그렇게 예상하는데 기업 쪽 계신 분들의 의견은 다르다. 당연히 저처럼 얘기하기는 상황상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 인문학적, 철학적 관점에서 AI를 연구해왔다. 기업이 기술적으로 AI를 설명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기업 활동을 하는 과학자들은 기업의 관점으로 얘기한다. 자신들이 내놓은 서비스와 제품이 아주 좋고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 지속해서 보여준다. 조작된 영상을 시연하는 등 거짓말도 섞여 있다. 언론에서 구별이 안 될 때가 많으니 사실로 받아들이는 거다. 인문학적, 철학적으로 접근한다는 건 이 지점이다. 기술이 개개인들에 미칠 영향을 한 번 더 성찰하는 것. 사회에 어떤 이로움을 줄 수 있는지 걸러내는 작업이다. 사회적으로 중요한데 아직 잘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 분야다. 외국도 비슷하다.”

AI 시대 위기 맞은 언론, 반전 계기 삼을 수 있다

– AI 시대가 언론에 주는 의미는 뭘까. 언론계는 AI의 등장으로 인한 홈페이지 트래픽 저하를 우려했다. 기사 링크를 통해 기사를 읽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다.
“그건 기본적으로 AI 문제가 아니다. 2000년대 초 포털에 언론이 종속되면서 생긴 문제가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금 언론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자극적인 기사다. 그런 건 오히려 더 빨리 웹에 뿌려질 수 있다. AI로 거의 무한정 기사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커뮤니티 인용하는 식의 기사가 ‘가성비’를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런 문제가 언론에 반전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다고 본다.”

– 어떤 반전의 계기인가.
“AI가 범람하고 무의미한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믿을 만한 콘텐츠’를 갈구할 수밖에 없다. 언론의 수익 모델이 다 한계에 와 있다. 뉴욕타임스(NYT)를 많이 모델로 삼는데, 한국에선 불가능하다고 본다. 독자층이 매우 제한돼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 초의 ‘서프라이즈’(커뮤니티) 모델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논객, 필진이 의견을 제시하면서 공론장을 형성하는 구조다. 그렇게 하면 생성형AI가 만드는 이상한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언론이 오히려 기회를 잡을 수 있다.”

– 언론이 ‘커뮤니티화’돼야 한다고 보는 건가.
“연합체가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언론 10개 정도를 모아 ‘미니 포털’을 꾸리면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기성 언론의 틀에서 벗어난 미디어오늘, 시사IN 같은 형태의 언론들도 메일링, 구독 등 독자관리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다. 신뢰도 있는 언론 10개가 따로 콘텐츠를 쏟아내면 사람들이 다 볼 수가 없다. 결국 제 살 깎아먹기다. 거버넌스 구성이 어렵다는 건 알지만 이런 것 말고 생존을 모색할 방법이 있나 싶다. 응원하는 마음에서 하는 걱정이다.”

– 서로 다른 독자층과 수익 구조를 가진 언론이 합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은 전 세계가 아침에 일어나면 뉴욕타임스를 본다. 그런 구조로 가고 있다. 한국은 사이즈가 작다. 제대로 취재할 기자가 적으니 농도·밀도가 떨어지고 괜찮은 기사의 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기자들이 합치는 형태가 돼서 좋은 기사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유입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기자들에게 시간이 좀 더 주어질 수 있다.”

– AI가 기자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보나.
“절대 없다. 이건 가치의 문제다. 뭐가 중요한지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큐레이션 능력이라 할 수도 있는데, 수백만 개의 사실 중에서 몇백 개의 중요한 사실을 뽑는 걸 AI가 할 수 있겠나. AI는 과거의 사실을 향한다. 이전에 존재하는 패턴을 잘 뽑아내는 게 AI가 잘하는 일인데 인간은 새로운 걸 주목한다. 새로운 걸 찾는 촉, 이걸 AI에 기대할 순 없다.”

– 작년 할리우드를 멈추게 한 미국작가조합(WGA) 파업의 쟁점 역시 AI였다. 넷플릭스가 AI 전문 인력을 채용하고 AI를 이용한 시나리오 작성 등이 늘어나면서 업무 대체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AI 작가가 쓴 작품이 흥행에 성공했나. OTT 기업들이 (AI에) 투자를 많이 한 건 사실이지만 흥행한 건 없다. 우려되는 건 메인 작가의 대체가 아니다. 파트 작가들이 위협받는 건 맞다. 큰 줄기는 짜놓고 구체적인 대화, 상황들을 많이 학습한 다음에 (AI에) 뽑아라 하는 건 가능하다. 전체적인 흐름에 영향을 주진 않지만 반복되는 작업은 대체할 수도 있다. 창작의 본질을 건드리진 못할 것이다.”

– AI 시대에서 언론은 무엇을 해야 할까.
“민족의 형성은 언론을 매개로 한다. 같은 신문을 보는 사람들은 같은 커뮤니티에 있는 것이다. 얘깃거리와 소재를 공유하는 것이 언론이 했던 역할이라면 지금은 그 범위가 너무 넓어지거나 뭔가 변했다. 이런 상황 전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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