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철학자에게 묻다 “AI시대에 필요한 직장인의 능력은?” (잡플래닛. 2024. 08. 30)

원문

철학자에게 묻다 “AI시대에 필요한 직장인의 능력은?”

[인터뷰] 김재인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2024. 08. 30 (금) 09:37 | 최종 업데이트 2024. 08. 30 (금) 15:08

프롤로그:
AI로 세상이 시끄러운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디를 가나 AI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회사에서 생성형AI를 사용했다거나, 친구들끼리 AI 필터로 감쪽같이 사진 보정을 했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나눈다. 전문성을 지닌 산업군에서도, 평범한 일상에서도 자연스럽게 AI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인공지능이 우리 일상에 깊숙하게 들어왔으며, 그 수준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 스마트폰이 순식간에 보급돼 당연해진 것처럼 AI의 ‘일상 침투’도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이뤄졌다. 어릴 적 그렸던 상상화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공지능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쉽게 답할 수는 없겠다. AI의 신뢰도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며, 아직은 인간이 해야 할 일을 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수준에 그친다. 게다가 얼마나 AI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지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결과도 다르다. 어떤 이는 업무의 효율을 극대화했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검색창을 대신하는 간단한 도구일 뿐이다. 어떤 이는 AI를 일상에서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른다.

발전하는 AI 기술과 변화 중인 시대, 그 속에서 생겨난 정보 격차.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고민은 날로 늘어난다. 어떻게 하면 AI를 업무에 활용할 수 있을지, 혹여 다가올 미래엔 AI에 직업이 대체되지 않을지 걱정된다. 이미 변화는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AI 기술이 어느 정도까지 나의 직업에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그럼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AI 기술을 활용하는 법을 알아야 할까? 빠르게 발전하는 속도를 따라가다 보면, 이제 막 익힌 기술이 곧바로 과거의 것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는 인공지능에게 없는, ‘인간만이 갖춘 능력’을 다져야 하지 않을까?

AI시대에 인간이 갖춰야 할 능력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답변을 얻기 위해 김재인 경희대학교 교수를 찾아갔다. 그는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한 철학자다. 저서와 다양한 강의를 통해 AI시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이 시대에 인간에게 필요한 능력은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과학과 철학을 통합해 세상의 변화를 연구하고 있는 김재인 교수와 대화를 나눴다.

 

첫 번째 질문:
철학자로서 AI시대를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교수님, 안녕하세요.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AI 이야기를 철학의 관점으로 이야기 나눌  수 있어 기대됩니다. 먼저 독자분들께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교 때 미학과를 전공한 뒤,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았습니다. 미학과에 들어가기 전, 잠시 생명공학을 공부한 적이 있고요. 요즘 ‘반수’라고 부르듯 이공계에 다니다가 인문계로 학교에 다시 들어간 거였죠. 대학원에서는 니체, 들뢰즈와 같은 철학자를 주로 공부했습니다. 둘 다 미학적인 철학자라고 볼 수 있어요. 미학과에서 철학과로 대학원을 진학한 건 공부의 방향을 바꿨다기보단, 소속이 바뀌었다는 정도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학생 때 이공계에서 인문계로 넘어간 경험이 있으시군요. 현재 교수님의 행보에 영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철학자로서 ≪AI빅뱅≫, ≪인공지능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등 AI에 관한 책을 출간하셨어요. 철학자로서 AI를 깊이 탐구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컴퓨터의 발전을 몸소 겪은 게 밑바탕이 되지 않았을까요. 저는 1980년대 후반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한국의 IT 발전과 함께 청춘을 보낸 세대죠. 286컴퓨터부터 인터넷, 모바일, 지금의 인공지능까지 이어온, ICT 혁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 발전 과정을 모두 겪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저는 이공계에서 인문계로 넘어왔습니다만, 이후에도 이공계에 대한 관심이 늘 있었습니다. 컴퓨터라는 존재를 뜯어보고,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오면 사용해 보곤 했죠. 그러던 중 90년대 후반에 초고속 인터넷이 서비스되기 시작했어요. 이때 개인 홈페이지를 직접 구축해 보면서 개발 언어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보다 훨씬 전의 일화도 생각나네요. 중학생 때 국가에서 시행하는 교육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막 ‘컴퓨터’라는 게 등장한 시점이었죠. 그 교육에서 BASIC 프로그램으로 알고리즘을 짜면 기계가 작동한다는 이 원리를 익힐 수 있었어요. 이 모든 경험이 기저에 깔려있습니다.

기술에 대한 호기심도 기본적으로 있으셨을 것 같고요. 

호기심을 넘어서는 진짜 계기는 따로 있는데요. 제가 박사학위를 좀 늦게 받았습니다. 학위를 받고 얼마 뒤에 서울대학교에서 ‘컴퓨터와 마음’이라는 수업을 맡게 됐어요. 마음과 컴퓨터에 대한 연구, 요즘으로 말하면 인공지능에 관한 공부인 거죠. 철학과 교양으로 개설하니 공대생부터 의대생, 문학을 공부하는 친구들까지 다 모이더군요. 이렇게 다양한 과의 학생들이 모이니 나누는 이야기가 재밌을 수밖에 없고요.

인공지능이 실제로 구현된 것은 기껏해야 2010년쯤이에요. 그전까지는 인공지능에 관한 이론과 담론은 있었지만, 기술로 구현되지는 않았어요. 그러니 수업에서도 “인공지능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과 “과거에는 이렇게 실패했어”라는 실패의 역사를 말하는 게 다였습니다.

그러다 딥러닝이 실용화되기 시작하면서 인공지능의 구현이 성공하기 시작했죠. 딥러닝은 우리 뇌가 작동하는 구조를 모방하고 있는데요. 이 기술이 발전해 결정적으로 충격을 준 건 2016년 알파고와 인간의 대결입니다. 아까 기껏해야 2010년이라 말씀드렸는데요. 약 5년 사이에 인간을 능가할 만큼 급격하게 발전했죠. 이 대결로 수업 내용이 싹 다 바뀌고, 개인적으로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 실패의 역사에서 벗어나 인공지능에 관해 제대로 탐구하기 시작했겠네요.

이후로 저도 ≪인공지능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라는 책을 썼고, 논문이나 발표를 보면서 꾸준히 공부해 왔습니다. 인공지능에 관한 새로운 발표를 따라가기만 해도 많은 공부가 됐죠.

또 인간에게 이런 발전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철학은 어떤 현상이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관해 탐구하게 되어있거든요. 철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평소에 이런저런 생각의 훈련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다가 세상에 ‘인공지능’이라는 소재가 등장하니까, 거기에 대해서 한번 물어보게 된 거죠.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흉내 낸다는 말이 나오니, 그럼 도대체 인간의 지능은 무엇인지도 탐구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생각’이라는 게 뭔지 고민하게 되고요. 이런 식으로 철학에서 몇천 년 동안 다뤘던 주제와 인공지능을 함께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두 번째 질문:
AI는 얼마만큼
발전된 상태인가요? 

 

인공지능을 대상으로 ‘철학’을 하기 시작하신 거군요. 많은 연구와 논문을 보시면서 AI 발전의 흐름을 파악하셨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현재 AI의 수준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먼저, 인공지능마다 세밀하게 나눠 봐야 합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건 딱 하나가 아니거든요. 지금 수많은 서비스가 뭉뚱그려져서 ‘인공지능’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요. 예를 들어 챗GPT라는 인공지능은 문장도 만들고 코드도 짭니다. 그런데 알파고라는 인공지능은 바둑만 잘 둬요. 이 둘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냐고 묻는다면 사실 거의 없거든요. 그러니 인공지능의 발전 수준이라고 해도 기술별로 세밀하게 뜯어봐야 하는 거죠.

각각의 발전 수준을 따져본다면요.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은 이제 개발할 필요가 없을 수준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는 아니에요. 챗GPT는 데이터를 가져와 변형한 뒤 결과를 내뱉는 방식입니다. 그러니 수학 계산을 시키면 가져올 데이터가 없어 이상한 답을 출력해요. 답변은 너무 그럴싸한데도 말이에요.

그러니 챗GPT의 발전 수준을 평가한다면 극단적으로 갈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인문사회 연구자로서 챗GPT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합니다. 차라리 전통적인 방식으로 논문을 찾고, 믿을만한 책을 읽고, 정보를 캐는 방식이 더 빨라요.

그럼 이 거대한 신기술은 누가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걸까요? 많은 인력과 자본을 투입하고 있으니, 누군가는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텐데요. 

엔지니어들은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답변도 자세히 봐야 하더군요. 엔지니어가 모여있는 사이트에서 챗GPT의 효용을 설문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에서 시니어들은 회의적인 답변을 내놨어요. 반면, 주니어나 이제 막 입문한 사람들은 상당히 높은 호감도를 보였고요.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났을까 싶은데요. 시니어들은 업무 수준에 있어 눈높이가 높으니 챗GPT가 하는 답변이 실제로 적용하기에는 무리라는 걸 아는 겁니다. 업무에 미숙한 주니어에겐 출력된 정보가 상당히 도움이 되는 거고요. 여기서 모두가 느끼는 공통 의견은 출력된 코드를 ‘그대로’ 가져다 쓸 수는 없다는 거예요. 한 번 더 확인해야 하고, 손을 봐야한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고 있고요. 챗GPT는 오류인 코드 데이터도 그대로 학습하고 출력합니다. 이처럼 어떤 분야에서건 그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생성형AI가 출력하는 결과를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하지는 않더라고요.

생성형AI의 발전 수준에 관한 아쉬움을 말씀하셨는데요. 그럼 여러 유형 중 교수님께서 희망적이라고 보고 계신 인공지능도 있나요?

네이버의 ‘클로바 노트’처럼 음성을 텍스트로 바꿔주는 인공지능 서비스죠. 정확도도 높고 사용 빈도도 높아요. 또 ‘vFlat’이라고 인공지능을 활용한 문서 스캔 앱이 있습니다. 저는 책을 인용하는 경우도 많고, 책의 내용을 노트에 정리해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펼쳐서 굴곡져 있는 책을 찍으면 화면에서 평평한 사진으로 바꿔줘요. 책 속 글자를 OCR로 변환하면 복사하거나, 문서로 만들 수 있고요. 또 같은 기업에서 동영상의 자막을 생성하는 음성 인식 프로그램도 개발했어요.

이렇게 딥러닝 기술이 쓰였지만, 챗GPT처럼 초거대언어모델은 아닌 형태의 인공지능은 개발비가 그리 많이 들지 않아요. 생산성은 엄청나게 높여주고 오류도 별로 없죠. 인공지능은 개발 비용과 사람들에게 얼마나 생산성을 높여주느냐가 관건인데, 초거대언어모델은 아직 그 부분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아직 오류가 많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직업에 생성형AI를 활용해 보고 싶은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은 본인의 업무 중에서 인공지능이 도와줄 수 있는 건 무엇이고, 각 인공지능이 나의 생산성을 얼마나 향상시키는지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언론에서 뭉뚱그려 ‘AI 기술이 발전되고 있다’라고 말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은 챗GPT가 화두인데요. 이러한 초거대언어모델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해요. 물론 번역에 꽤 유용한데요. 저는 기술에서 중요한 건 가성비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언어모델은 번역에 사용하기엔 너무 비싼 인공지능입니다.

인공지능을 말할 때 가성비를 고려하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챗GPT와 같은 초거대 언어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몇백조 원이 들어갑니다. 개발이란 곧 모델을 구성하는 일을 말해요. 예를 들어 개발 인력 비용, 전기 요금, GPU 같은 하드웨어 등이 필요할 테고요. 초거대언어모델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돈이 투입됩니다. 간단한 번역 용도로 쓰기엔 개발 비용이 많이 드는 비싼 기술이에요. 번역에만 사용하기엔 가성비가 좋지 않은 거죠.

그래서 저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전 사람이 어디에서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인가를 따져보고, 그 규모에 맞게 인공지능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점에서 클로바 노트, 음성에 자막을 달아주는 기술, AI를 활용한 내비게이션 등의 서비스가 가성비를 생각했을 때 알맞은 수준이라 생각하고요. 게다가 영국 과학 학술지인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는 데이터 고갈 문제로 인해 거대언어모델이 붕괴할 수 있다고도 바라봅니다.

세상에 이렇게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있는데도, 고갈될 수 있나요?

초거대언어모델은 데이터를 학습해 결과를 출력하죠. 그럼 결국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출력한 데이터를 되먹임질 해서 학습할 수밖에 없어요. 그럼 정보의 품질이 점점 악화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결국 모델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입니다.

현재 인공지능이 생성한 데이터는 늘어나고 있고, 데이터는 거의 고갈되고 있어요. 이런 상황이 예상되니 “생성형AI가 과연 발전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차라리 적은 비용으로 용도를 정해 만든 인공지능 앱에 더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세 번째 질문:
인공지능의 수준이 발전하면,
인간을 대체하지 않을까요?

 

인공지능이 출력한 결과에 오류가 많고, 기술의 전망도 마냥 희망적이진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많은 직업군에서 고민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여요.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화가처럼 정교한 그림을 완성할 수 있는 수준이더라고요. 그럼에도 교수님은 AI가 예술을 대체할 수 없다고 책에 쓰셨습니다. 어떤 이유인가요?

높은 수준의 AI 그림은 고도의 프롬프트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디자이너가 포토샵으로 툴을 만지듯, 인공지능에게 복잡한 지시를 할 수 있어야 해요. 이 과정을 인공지능이 주체가 돼 예술가처럼 작품을 생성한다고 말할 수는 없죠. 예술가가 그 일을 하되, 앞으로의 시대에는 예술을 할 때 포토샵도 쓰고, 미드저니도 쓰고, 손으로 그린 그림도 덧붙이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함께 쓰는 거예요. 정리하자면, 도구로서 AI가 이용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대가들의 작품은 확실히 뭔가 달라요. 고전을 만든 작가들의 위치인 거죠. 처음엔 낯설어 보일지라도, 그들의 예술 작품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보여줍니다. 예술을 있는 것을 다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걸 보이게끔 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는데요. 그런 면에서 과학자도, 철학자도 똑같고요. 여태껏 보이지 않던 세계를 전달해 주거든요. 그런데 이 AI는 이러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창작의 본질을 행할 수 없고, 학습한 데이터만 출력할 뿐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직업의 미래에 관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웃음) 인공지능이 스스로 사고해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내진 못하니까요. 

그래서 어떤 이는 AI를 두고 ‘성능 좋은 통계 기계’라고 말하죠. 제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인공지능은 과거밖에 모른다”라고요. 인간은 과거도 필요하고 소중해요. 하지만 그걸로 만족하지는 못합니다. 새로움을 찾아 미래를 건설하죠. 이것은 인간과 다른 동물이 구별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고도화되어도 인간만이 가진 창의의 본질은 따라잡지 못할 겁니다. 시도도 못 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인간은 동물이기 때문에, 특히 생존과 번식을 위해 오랜 진화 과정에서 습득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인공지능은 이런 동기가 없어요. 인간이 시키는 일을 잘 처리하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죠.

 

마지막 질문:
AI시대에 인간이 갖춰야 할
필수 능력은 무엇일까요?

인공지능이 도구 수준에 머무른다 한들, 이 기술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고민이 필요했어요. 챗GPT만 써봐도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결과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더라고요. AI 기술을 잘 이용하기 위해 이제는 생각하는 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된 사람들의 ‘사고력’을 키우는 방법은 찾기 어려운데요, 직장인들은 생각하는 힘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저도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요. 제가 생각한 답은 ‘읽기와 쓰기’입니다. 예를 들어 읽는 것에 익숙한 사람, 특히 연구자들은 어떤 문서 안에 있는 내용을 두루두루 읽고도 핵심을 파악할 수 있는데요. 읽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딱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챙겨요. 그럼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확인하는 수준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럼 많이, 제대로 읽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여러 명이 함께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좋은 유료 북클럽이 많잖아요. 왜 돈을 내면서까지 그렇게 할까 고민해 보면, 결국 사고력 강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같이 읽고 의견을 말하면서 생각하는 힘이 성장하는 걸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함께 읽기가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봅니다. 동시에 읽은 것에 대하여 글로 정리해 보기, 즉 읽기와 쓰기를 병행하면 분명히 생각하는 힘이 늘어나죠.

저도 독서모임에 참여해본 적이 있는데, 평소에 하지 않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어 말씀하신 것 같이 생각하는 힘이 길러진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어떤 책을 읽을까에 대한 고민도 하시더라고요.

책이 너무 많으니 그럴 수밖에 없죠. 저는 추천하자면, 신문에 어느 정도의 분량을 갖춰 서평이 쓰여진 책을 추천합니다. 그래도 아직 신문에 서평을 쓰는 사람들은 프로라고 볼 수 있거든요. 깊게 공부한 사람들이 소개하는 책이니 믿음직합니다. 그중에서 몇 권의 책을 추려 모인 사람들이 함께 읽고 싶어 하는 책을 고르면 저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책을 정하고, 서로 쓴 서평도 같이 읽어보면 훈련이 됩니다. 읽고 쓰면서 정리하기 때문에 최고의 두뇌 훈련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읽기와 쓰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제가 강연에서 ‘확장된 문해력’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앞으로의 시대에는 인간이 더욱 확장된 언어를 가져야 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이때 읽기와 쓰기가 우선되어야 하거든요.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확장된 문해력’이 무엇인가요?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자연어 외에 좀 더 확장된 언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확장된 언어란 예를 들어 수학, 과학, 기술, 예술, 디지털 분야 등에서 쓰이는 단어들을 말해요. 이런 분야 속에서 쓰는 언어들이 새로운 시대에는 꼭 필요한 언어가 됐습니다.

과거에는 대부분 자연어 속에 지식과 기술이 대부분 담겨 있었어요. 기본적인 언어 능력만 있으면 세상을 잘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언어를 구사하는 자체로 힘이 있었죠. 미국에서는 노예가 자유인이 될까봐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죠. 글을 배운다는 건 그만큼 세상을 읽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을 읽기 위해 필요한 언어가 달라졌어요. 필요한 언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수학, 과학, 기술 등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될 것입니다. 신문을 읽을 때 건너뛰지 않고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은 갖춰야 해요. 수학과 과학을 언어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은, 내용을 이해하려는 접근과는 다릅니다. 얼마만큼 내용을 깊이 습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 분야에서 언급되는 기초 언어 습득해야 한다는 거죠. 신문을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언어는 갖춰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과학에서 ‘촉매’라는 게 무엇을 말하는지, ‘양자 얽힘’이라는 게 무엇인지, 수학에서 ‘미분’이라는 게 뭔지 알고 있는 거예요. 얼핏 들어보기는 했지만 진짜 의미는 모르는 채 넘어가게 되거든요. 이런 지식을 언어라는 차원에서 이해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문해력을 갖출 수 있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어휘력이 있어야, 노예로 살지 않고 내가 직접 판단할 수 있어요.

이런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도 읽기와 쓰기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이때의 ‘쓰기’는 결과물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이 글쓰기의 본질입니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필요한 뒷받침 근거 자료를 수집하고, 구체적인 사례랑 연결시켜 보고, 모든 걸 종합해 본인이 직접 글을 쓰는 과정에서 문해력을 키울 수 있어요.

사실 모든 업무에서 이 4단계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글쓰기 하나를 잘하면, 다른 것도 다 잘해요. 회사 업무도 잘하고, 연구도 잘하죠. 이 훈련을 10번 하느냐, 100번 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집니다.

읽기와 쓰기를 많이 하라는 명쾌한 대답에 가지고 있던 궁금증이 풀립니다. 교수님, 요즘 인문학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데요. 기술이 발전된 시대일수록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오고요. 인문학이 무엇이길래 탐구해야 하는지, 왜 인간을 탐구하는 게 필요한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문학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한 마디로 정의해 인간을 주제로 연구하는 학문이죠. 인간에 대한 탐구니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모두 인문학이라고 볼 수 있고요. 인간을 탐구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뭘 하든 간에 인간을 알아 유리하지 않은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간에 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문학이나 역사, 철학, 예술 안에는 이미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인간을 탐구하고 서술한 자료가 많이 있어요. 그러니 인문학에서 인간을 배우는 건 정말 현명한 일이죠.

특히 고전은 오랜 시간 검증을 거친 작품입니다. 당대의 사람들은 물론 후대의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 살아남은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을 탐구하는 것은 모든 이에게 자양분이 될 겁니다. 인문학을 탐구하는 건 직업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필요해요.

그러네요. 마케팅이든, 영업이든 어떤 직업이든 인간의 속성을 알게 되면 일이 수월해지죠. 공감합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립니다. AI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가기 위해 직장인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려요.

평생 무언가를 탐구하고 공부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업무 때문에 힘들어서 시간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요. 모임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함께 책 읽고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또 앞으로의 시대는 계속 직업을 바꿔야만 할 것입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에 직업을 바꿀 일이 더 많아질 거예요. 그러니 자기계발을 일상적으로 하되, 자기계발서에서 요령만 배울 게 아니라 충분히 검증을 거친 고전을 통해서 깊이 사고하는 훈련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고전은 누룽지 같은 매력이 있어서, 씹고 음미할수록 얻는 것이 많거든요. 반면, 자기계발서는 밀키트 같은 느낌이 있죠. 트렌드를 담은 자기계발서를 읽더라도, 고전 읽기를 병행하며 꼭꼭 음미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장경림 기자 kyunglim.jang@companytimes.co.kr

Comments

Leave a Reply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