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생산과 재생산 문제: 인공지능과의 관련성 (1)

개별적인 몸에 주목하면, 두 가지가 중요하다는 걸 금세 깨달을 수 있다. 몸을 재생산하는 일몸이 생산하는 일이 그것이다. 세부적인 필수 성분을 과감히 생략하고 말하면, 재생산에 필요한 것이 몸의 주재료인 ‘단백질’이고 생산에 필요한 것이 몸의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이다. 몸의 재생산이란 살아가는 동안 몸을 건강하게, 즉 안정적으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지 보수하는 일이다. 몸의 생산이란 몸 바깥에 유용하고 의미 있는 것을 창출하는 일이다. 요컨대 삶이란 몸의 재생산과 몸의 생산이다(여기서 2격 ‘~의’의 의미가 다르다는 점도 주목하자. 전자는 3격, 직접 목적격이고 후자는 1격, 주격이다).

생각의 생산도 몸이 하는 중요한 일의 하나다. 일반적으로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것의 생산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지만(공학의 영역), 물질적 생산물은 비물질적인 생각의 생산과 맞물리지 않고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생각 중에 대표적인 것을 몇 꼽자면 이런 것들이 있다. 의미, 가치, 제도, 관행, 약속, 묵계, 사용법 등. 이런 일은 철학, 예술, 교육, 정치, 법 같은 영역의 종사자가 담당하고 발전시켜 왔다. 이렇게 보면, 생각의 생산은 인간의 주된 활동에 속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의존하는 ‘기본 생각’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모든 생각은 다 누군가가 발명하고 재생산하고 교육한 것들이다. 단지 시간이 지나면서 잊혔을 뿐이다. 무엇이 좋고 중요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같은 고도로 추상적인 생각부터, 길을 갈 때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대중교통 탑승 시 요금을 먼저 지불하고, 같은 일상 생활의 규칙을 담은 생각을 포함해, 영화관에서 떠들지 말고 공공장소에서 줄을 서야 한다는 등 인간 관계를 규율하는 생각도 있다. 심지어 자동차를 조작하고 운전하는 법이나, 스마트폰 사용법도 생각의 영역이다. 이런 모든 생각은 모두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나와서 모두에게 전달되고 공유되었다. 모든 생각에는 출처가 있다. 그것은 어느 누군가의 뇌다.

생각의 확산이라는 주제를 잘 발전시킨 사람이 미시사회학의 창시자로 평가 받는 프랑스의 가브리엘 타르드다(《모방의 법칙》(1890)을 보라). (관련된 두 편의 짧은 글 참조. (1) 소셜미디어와 모방의 확산, (2) 《천 개의 고원》과 가브리엘 타르드) 자세한 논의는 추후에.

몸의 작업을 인공지능에 대입해 보자. 인공지능은 재생산하는가? 인공지능에게 단백질은 무엇인가? 인공지능은 생산하는가? 인공지능에게 탄수화물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인공지능에 몸이 있는가? 나는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살핀 적이 있다(인공지능이 몸을 가질 수 있을까?). 여기서는 이와 별도로 재생산과 생산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겠다.

우선 인공지능이 재생산하는 것은 인간이 준 자료다. 자료를 분석해서 패턴을 찾기도 하고  미지의 것을 예측도 한다. 자료를 분류하기도 하고 생성물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생산 작업일까? 여기에 ‘생산’이라는 명칭을 붙일 수는 있겠지만, 몸의 생산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 있다. 몸의 생산이 ‘발견’과 ‘발명’을 두루 해낸다면, 인공지능의 저런 작업(패턴 찾기, 예측, 분류, 생성)은 주로 ‘발견’에 속한다. 솔직히 말해, 발명의 영역이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가령 알파폴트의 작업은 발견일까 발명일까? 미드저니는 발견할까 발명할까?). 오히려 ‘발명’이 ‘발명’일 수 있는 조건을 묻는 편이 유의미하겠다.

통상 ‘발견’은 자연과 사회에 이미 있지만 그 존재를 몰랐던 것을 찾는 활동으로, ‘발명’은 없던 것을 만드는 활동으로 구별된다.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신조를 가진 이에게 순수한 ‘발명’은 없다고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자연이 늘 재활용한다고 해서 아이디어까지 재활용한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일이다. 고로 발명은 아이디어 수준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으리라. 새로운 아이디어, 혹은 생각은 물질과 결합할 수도 있고 비물질적인 채로 있을 수도 있다.

결국 인공지능의 작업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관련되겠는가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한 쟁점일 것이다. 다른 말로, 새로운 것의 새로움은 어떻게 인식·식별되는 걸까? 그 새로움은 어떻게 존재·탄생하게 되는 걸까? 인공지능을 둘러싼 철학적 담론이 필요해지는 것이 이런 지점에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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