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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자본주의와 분열증 이진경-바그너 기계

김재인 2005.04.17 22:05 조회 수 : 16317 추천:35

니체의 저서를 읽으려다 보면 '바그너'라는 이름의 책이 세 권 이상이라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 바그너가 무엇이었길래! <반시대적 고찰>의 제4논문이 '바리로이트의 바그너'이고, 그 다음, <바그너의 경우>와 마지막으로 <니체 대 바그너>가 있다. 니체에게 바그너는 '데카당'의 대표자요 상징이다. 이것을 오해한다면, 가령 정신분석 식으로 니체에게 바그너 컴플렉스가 있었다고 말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오해마저 니체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몰염치한 일이다.

작년 봄, 이 무렵이었을 것이다. 이진경이 쓴 <노마디즘> 1,2권을 읽었던 것이. 동시에 '<천 개의 고원>이 <노마디즘>에게'라는 다소 오해의 여지가 있는 글을 썼던 것이. 당시에 내가 집중적으로 비평했던 것은 '해석' 또는 '번역'의 문제였다. 외국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인데(물론 미합중국의 경우는 예외이고, 지금은 유학생이나 이민자들 때문에 조금 나아지고 있지만), 학문적으로 오역과 오독의 문제는 부끄러운, 부끄러워 해야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진경의 바로 그런 오독과 오역 행태를 문제 삼았던 것이고, 그를 그렇게 한 것은 그가 한국어권에서 갖고 있는 상징적 지위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감사하기는커녕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김재인은 불어도 못하는 어쩌구 저쩌구...). 누군가 지적했듯이, 그는 자신의 밥그릇이 직접 위협 받는 때가 오지 않는다면 대꾸할 사람은 아닌 것이다. 전형적인 386 정치인의 행태로다.

일찍이 이 문제를 지적했던 것도 니체였다.(출전 생략)

Uebersetzungen.— Man kann den Grad des historischen Sinnes, welchen eine Zeit besitzt, daran abschätzen, wie diese Zeit Uebersetzungen macht und vergangene Zeiten und Bücher sich einzuverleiben sucht. Die Franzosen Corneille's, und auch noch die der Revolution, bemächtigten sich des römischen Alterthums in einer Weise, zu der wir nicht den Muth mehr hätten—Dank unserem höheren historischen Sinne. Und das römische Alterthum selbst: wie gewaltsam und naiv zugleich legte es seine Hand auf alles Gute und Hohe des griechischen älteren Alterthums! Wie übersetzten sie in die römische Gegenwart hinein! Wie verwischten sie absichtlich und unbekümmert den Flügelstaub des Schmetterlings Augenblick! So übersetzte Horaz hier und da den Alcäus oder den Archilochus, so Properz den Callimachus und Philetas (Dichter gleichen Ranges mit Theokrit, wenn wir urtheilen dürfen): was lag ihnen daran, dass der eigentliche Schöpfer Diess und Jenes erlebt und die Zeichen davon in sein Gedicht hineingeschrieben hatte!—als Dichter waren sie dem antiquarischen Spürgeiste, der dem historischen Sinne voranläuft, abhold, als Dichter liessen sie diese ganz persönlichen Dinge und Namen und Alles, was einer Stadt, einer Küste, einem Jahrhundert als seine Tracht und Maske zu eigen war, nicht gelten, sondern stellten flugs das Gegenwärtige und das Römische an seine Stelle. Sie scheinen uns zu fragen: "Sollen wir das Alte nicht für uns neu machen und uns in ihm zurechtlegen? Sollen wir nicht unsere Seele diesem todten Leibe einblasen dürfen? denn todt ist er nun einmal: wie hässlich ist alles Todte!"—Sie kannten den Genuss des historischen Sinnes nicht; das Vergangene und Fremde war ihnen peinlich, und als Römern ein Anreiz zu einer römischen Eroberung. In der That, man eroberte damals, wenn man übersetzte,—nicht nur so, dass man das Historische wegliess: nein, man fügte die Anspielung auf das Gegenwärtige hinzu, man strich vor Allem den Namen des Dichters hinweg und setzte den eigenen an seine Stelle—nicht im Gefühl des Diebstahls, sondern mit dem allerbesten Gewissen des imperium Romanum.

마지막 구절이 멋지지 않은가?

그러나 이진경은 자신이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오히려 전도된 이성으로 자신의 행위를 '해석의 자유'라고 오해하고 있다. 맞다, 그 자유는 로마 제국의 최상의 양심을 지닌 자유이다. 오역과 해석의 자유 사이에는 얼마나 큰 간격이 있는가.

사실 더 큰 문제는 이진경에게 있지 않고 이진경의 옹호자에 있다. 그에는 몇 가지 부류가 있다. 1)이진경이니까 무조건 맞을 것이다. 2)이진경 말대로 김재인이 튀어보려고 그러는 것일 뿐이다. 3)이진경이 맞지는 않지만 그걸 무례하게도 발설한 김재인도 잘못했다, 영 학자답지 못하다. 4)싸우는 모든 작자들이 싸우는 것은 자신의 권력의지 때문이다, 똑같은 놈들이다, 다들 밥맛이다, 걍 조용히 살자. 5)김재인이 맞긴 맞는데, 한때 이진경에 맞장구쳤었으니 맞다고 하기가 좀 그렇다, 쪽팔리다, 걍 침묵하자. ... 모조리 정치적 접근이다. 하여간 기가 막히다.

사상에 맞고 틀린 것이 어디 있느냐고 강변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맞고 틀린 것은, 전 영역에 걸쳐서는 아니더라도, 때로는 분명하게 있다. 특히 언어 간의 번역의 문제에서 그러하다.

나는 니체가 말하는 Redlichkeit(진실성+성실성)를 문제 삼는 것이다. 이를테면, 텍스트를 읽지도 않고 읽었다고 말하는 것 따위가 그것이다. 중고딩도 아니고, 학부생도 아니고, 이진경 씩이나 되면서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들뢰즈 레이블을 팔아먹었으면 좀 솔직해지라는 말이다). 예전에 '도주'와 '계열'의 문제, 그리고 '의미'의 문제 등은 논문으로 발표했으므로, 이번에는 <안티 오이디푸스>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종합'의 문제를 통해 이진경의 무지와 용기를 밝혀보고 싶다. 내가 쉽게 필을 접을 사람이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까발리겠다. 나의 타이밍에 따라, 나의 기분에 따라, 나의 시간에 따라. 나는 <노마디즘>이 '어설픈 학부생 레포트'임을 완전히 밝힘으로써 소모적인 계몽을 해야만 하겠다. 그 소모적인 계몽이야말로 두 번째 종합의 의미란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꼭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개념이 '생산의 종합'이니 차례로 미리 선보이는 것도 좋다고 본다. 이참에 미리 이진경이 그 문제를 어떻게 정리했는지 꼭 짚어두자.

<노마디즘> 1권 91-3쪽:

  저자들에 따르면, 먼저 리좀은 '접속(connextion)'의 원리에 의해 정의되고 만들어집니다. 어떤 의미에선지는 불명료하지만, 예전에 칸딘스키는 20세기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는 주문에, 19세기가 "이것이냐 저것이냐(entweder... oder)"의 시대였다면, 20세기는 '와(und)'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기서의 '와'는 바로 접속을 표시하는 접속사예요. 즉 접속이란 말은 넓은 의미로는 '와(et, und/and)'로 연결되는 모든 경우를 지칭합니다. 책과 외부, 이 책과 저 책, 손과 자동차, 명사와 동사 등등.
  그러나 저자들은 접속이란 말에 특정한 외연을 부여합니다. 일찍이 들뢰즈는 ,의미의 논리>에서 접속과 이접(離接, disjonction)과 통접(統接, conjonction)을 구별한 바 있는데, 이러한 구별은 가타리와 함께 쓴 <안티 오이디푸스>에서도 반복하여 나타납니다. 접속의 접속사는 '...... et ......'(......와......)예요. 이접의 접속사는 'soit...... soit......'('이것이든 저것이든', '이것이냐 저것이냐')지요. 통접의 접속사는 'donc......'(그리하여......)예요. 세 경우 모두 가령 A와 B가 결합하거나 분지(分枝)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접속은 A와 B가 등위적(等位的)으로 결합하여, A도 아니고 B도 아닌 제3의 것인 C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입과 식도(食道)가 접속하여 먹는 기계가 되고, 입과 성대가 접속하여 말하는 기계가 되며, 입과 입이 접속하여 입맞추는 기계(섹스기계)가 됩니다.
  이접은 A냐 B냐를 선택--논리학에서는 '선언(選言)'이라고 하지요--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둘 중 하나를 배타적으로 선택하는 배타적(exclusive) 이접과, 상이한 경우를 허용하는 포함적(inclusive) 이접이 있습니다. "네가 남자냐 여자냐?" 하는 질문, 혹은 "동성애자인가 이성애자인가"라는 질문이 앞의 경우라면, "네가 남자든 여자든" 내지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하는 문장이 뒤의 경우예요. 접속이 등가적인 위치에서 두 항을 연결하는 것이라면, 이접, 특히 우리가 흔히 접하게 되는 배타적 이접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대개의 이분법은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도록 요구하거나 호오(好惡)의 가치판단을 포함하고 있지요.
  통접은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하여 어떤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즉 A와 B는 물론, C, D 등 그 이상의 것들이 모여 모두가 어떤 하나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소화기관과 호흡기관, 순환기관, 배설기관 등이 모여 하나의 유기체를 형성한다든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등의 기관이 모여 국가장치를 구성하는 경우나, 혹은 이런저런 장들이 모여서 하나의 책이 되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또한 이와 달리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흐름이 되는 경우도 역시 통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금, 이윤, 소득, 이자 등등이 모여 '통화량'이라고 부르는 하나의 화폐의 흐름이 되는 것이 그것입니다. 전자가 각각이 부분적인 기관이 되어 하나의 유기체 내지 통일적 전체로 통합되는 것이란 점에서 '유기적 통접'이라면, 후자는 각각이 탈형식화되어 '통화량'이라고 부르는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되는 것이란 점에서 '흐름으로의 통접'입니다.
  포함적인 이접이나 흐름으로의 통접이 있긴 하지만, 이접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이항적 선택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통접은 하나의 유기체나 결과물로 통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통상적인 의미에서(포함적 이접이나 흐름으로서의 통접이 아니란 의미에서) 이접과 통접은 관련된 항들을 어떤 하나의 방향으로 몰고갑니다. 반면 접속은 두 항이 등가적으로 만나서 제3의 것, 새로운 무언가를 생성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귀결점도 없고, 호오의 선별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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