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과타리의 ‘phylum(문)’ 개념, 또는 ‘기계문’

들뢰즈·과타리가 《천 개의 고원》(1980)에서 사용하는 까다로운 개념 중 하나가 phylum이다. 이 말은 용법이 아주 제한되어 있는데, 무엇인고 하니 생물 분류에서 ‘문(門)‘이다. 분류의 역사와 기준에 따라 이견이 있긴 하지만, 전통적으로 문에는 ‘동물’과 ‘식물’이 속한다. 즉, 문은 ‘동물문’과 ‘식물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들뢰즈·과타리는 문에 ‘기계문(un phylum machinique; a machinc phylum; ein Maschinen-Phylum)’을 추가한다. 때로는 ‘기계문’을 ‘문’으로 지칭하기도 한다(나는 이 점에서 phylum이라고만 할 때도 ‘기계문’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제안한다). 이렇게 하는 의도는 단순하다. 기계를 동물과 생물 곁에 나란히 놓겠다는 거다.

여기서 두 가지를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첫째, 기계문은 ‘광물(minéral)’보다 상위 범주이긴 하지만 광물과 호환되기도 한다. 사실상 광물은 동물과 식물 곳곳에 퍼져 있다.

둘째, 기계문은 ‘비유기체적 생명(vie non organique)’의 자리다. 동물과 식물이 ‘유기체적 생명’을 대표한다면, 비유기체적 생명도 있다는 것이다. 비유기체적 생명이라는 개념을 위해서는 미술사가 보링거(Wilhelm Worringer, 1881~1965)의 《고딕 예술》을 이용한다.

물론 생물학 분류에서 ‘비유기체적 생명’이라는 착상을 얼마나 수용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생태계의 관점에서 생명과 비생명을 단순히 구별하는 것은 이미 부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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