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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숭례문 화재는 `위험'을 보여주는 거울">(종합)
`위험사회' 저자 울리히 벡 교수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숭례문 화재 사건은 `위험(risk)' 그 자체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위험사회'의 저자로 유명한 울리히 벡(Ulrich Beck) 독일 뮌헨대 교수는 31일 "숭례문 화재 사건이 한국사회에 잠재하고 있는 `위험'을 보여준다"며 우리 사회에서 최근 잇따르고 있는 참사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서울대 초청으로 부인과 함께 한국을 첫 방문한 벡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가 정체성의 상징물인 숭례문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생활 속에서 뭔가 불편을 느끼거나 좌절감을 느꼈다는 의미이고 사회 전체에 충격을 던졌을 것"이라며 이 같이 언급했다.

   그는 태안 기름유출 사고와 이천 냉동창고 화재 등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기관 사이에 만연한 불신과 책임회피 등 사회 체계의 문제와 관련돼 있다"며 "압축적인 근대화 속에 담긴 `위험'을 보여주는 사례 중의 하나"라고 풀이했다.

   벡 교수는 이어 "`위험'이라는 것은 재해(catastrophe) 그 자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예견이나 예측도 함께 의미한다"며 "그래서 위험은 아직 발생하지 않는 재앙이며 정치적으로 매우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위협의 예견이라는 측면에서 남북관계의 속성을 짚어내기도 했다.

   벡 교수는 "북한 관련 이슈는 근대화 과정이나 경제 문제에 있어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위협을) 예견할 때 신중해야 한다"며 "위협이 극적으로 전환되는 것을 경계하고 국제 정치를 통해 이를 줄이거나 조절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벡 교수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번영을 이룩했고 분단을 겪었다는 점에서 한국과 독일은 비슷한 점이 많지만 독일은 통일을 과소평가해 높은 실업률과 경제침체 등 수많은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며 "익숙한 것을 포기하고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는 등 한국은 독일의 실수를 보고 많이 배우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세계인을 뜻하는 `코스모폴리탄'의 개념을 도입해 위험을 보는 시각을 확장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세계 사회에서 아시아의 기여나 위험을 다루기 위한 공동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벡 교수는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환경과 같은 이슈는 국제 여론을 통해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국내 위협 뿐만 아니라 국제적 위협이 지니는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기 때문에 코스모폴리탄의 개념이 더욱 필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이어 문화관 중강당에서 열린 강연에서 9.11 테러의 경험을 언급하며 "테러리스트와의 싸움은 실체가 있는 특정한 존재와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 국가 대 국가 차원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국제연합(UN)은 전쟁을 담당하는 군대보다는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벡 교수는 "과거에는 유럽 중심으로 국제 질서가 움직였지만 이제 한중일 3국도 강대국이고 국제 이슈를 이끌어가는 행위자가 됐다"며 "이들은 아시아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기여를 할지 등에 대한 문제에 대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벡 교수 부부는 다음달 5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위험사회 이론과 가족, 여성 등을 주제로 공개 강연회와 전문가 워크숍, 간담회 등을 열 계획이다.

   sewonlee@yna.co.kr
(끝)                                                2008/03/31 19:0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