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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번역]니체 : 탈도덕감에 있어 진리와 거짓에 관해

변요섭 2000.03.29 22:31 조회 수 : 1815 추천:29

이 번역은 Walter Kaufmann의 The Portable Nietzsche에서 발췌 영역된 글을 옮긴 겁니다. 저는 이 글이 니체의 철학이 집약된(굵직한 철학적 주제들이 들어있는) 글로 평가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짧은 만큼 오해의 소지도 많이 일어날 수 있는 글이라고 봅니다. 특히 뒷부분이 상당히 애매했는데, 여기서 니체가 '거짓'으로 몰아부치는 것이 상대적 윤리의 자의성을 의미한다고 치면, 인위적 관습이 단박에 허위라고 부정되겠지만, 이게 말처럼 그렇게 쉽게 단정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동일성의 철학을 부정하는 상징적 선언문 정도로 보는게 큰 무리가 없는 해석이 아닐까 여깁니다.

[번역]
우주의 먼 구석, 셀 수 없는 태양계들로부터 흘러나와 반짝이는 한 별이 있었는데, 여기서 영리한 동물이 지식을 발견했다. 이것은 가장 오만스럽고 허위에 찬 세계사의 순간에 불과했다. 자연이 짧은 호흡을 거두어 들였다면 그 별은 식었을 것이고 그 영리한 동물은 죽어야 했을 것이었다.
누군가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이나, 비참하고 허영스럽고 경솔하며 목적없고 자의적인 인간 지성이 어떻게 나타나게 됐는지는 아직 충분히 설명되진 못했다. 그것[인간 지성]이 없었을 때 거기[자연]엔 영원이 있었다; 그것[인간 지성]이 다시 존재할 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지성은 인간 삶을 넘어설 그 이상의 임무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세계가 그것[지성]을 추축으로 회전하고 있다는 듯이, 그것[지성]에 그러한 중요성을 부과하는 것은 인간과 그의 창조주이다. 그러나 우리가 모기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동일한 자기 중심주의-자신을 날으는 세계의 중심으로 착각하는 것-를 갖고 대기를 가르며 떠다니는 것을 알 것이다.
이러한 것[자기중심주의]이 지성의 효과이어야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왜냐하면 결국 그것[지성]은 가장 불운하고 예민한, 그리고 순간적인 존재자에게, 이들이 잠시나마 존재하기 위해 도구로서 주어졌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물[지성]없이는 그들은 레싱의 아들처럼 재빠르게 도망갈 모든 이유를 갖춰야 할 것이다. 지식과 감정을 지니고 인간의 눈과 감각을 가리는 안개로 감싸안은 그러한 오만은 그러므로 자기 자신인 지식에 대해서 가장 우쭐대는 평가를 하면서 존재의 가치에 대한 문제에서 그를[인간을] 기만한다(지성의 보편적 효과); 그러나 그것[지성]의 특수한 효과도 동일한 성격을 갖는다.
개체의 유지를 위한 수단인 지성은 가상에서 자신의 주요한 힘을 전개한다; 이런 수단으로 나약한 개체가 스스로를 보존해야 하는 것은, 이들에겐 희생물인 짐승의 엄니와 뿔을 가지고 존재의 사활을 건 투쟁을 수행하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어 이러한 가상의 기술은 그것[지성]의 정점에 이른다: 여기서 기만, 아첨, 거짓과 잡담, 등 뒤에서 말하기, 교태(posing), 후광에 기대어 살기, 가면에 가려지기, 관습의 가장, 타인과 자신의 앞에서 역할 수행-간단히 말해 공허의 유일한 화염 주변에서의 끊임없는 배회가 법칙이므로 진리에의 정직하고 순수한 요구가 인류 사이에서 자신의 출현을 어떻게 가능케 하는가 라는 문제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몽상과 꿈의 이미지에 깊이 젖어들어 있다: 그들의 눈은 사물의 표면위에서만 날고 형상을 본다; 그들의 감정은 진리에 이르지 못하고 자극의 수용, 말하자면사물의 배후에서 하는 숨바꼭질 놀이로 자족한다. 더우기 인간은 꿈을 꾸는 밤에 그의 삶이 영속한다고 착각하는 것을 자신에게 허락하고 그의 도덕감은 결코 이런 것을 막으려 하지 않는다-인간이 의지력으로 코골기를 극복했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인간이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그는 마치 비추인 유리에 나타나듯, 자신을 완벽하게 인식할 수 있는가? 자연이 심지어 그의 육체에 관해서, 장의 괴로움과 혈류의 급작스러운 흐름, 그리고 섬유조직의 연관된 전율을 피하고 인간을 자만스럽고 기만적인 의식에 가두고 마법을 걸기위해 그로부터 대부분의 것들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자연]는 그 열쇠를 던졌다; 한때 의식의 방에서 틈새를 통해 엿보고 경멸하던 비참한 호기심과 자신의 무지에 무관심한 채 무자비함과 탐욕, 불만족, 잔혹에 의존하는 인간의 감정-말하자면 호랑이의 뒷전에서 꿈에 빠지기-에 비통함이. 이러한 견해에서 볼 때, 세계의 어디에서 진리에 대한 요구가 나왔는가?
개체가 다른 개체에 대항해서 자신을 유지하려고 하는 경우 자연적으로 그는 지성을 대개 가상으로만 사용한다. 그러나 필요와 지루함으로인해 인간은 사회적으로 존재(군집양식)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는 평화조약을 요구하고 그의 세계로부터 잔인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추방하려고 노력한다. 이 평화조약은 이와함께 불가해한 진리에의 요구를 획득하려는 첫째 단계로 보이는 것을 가져온다. 이제 이것은 앞으로 '진리'가 될 것으로 고정된다; 말하자면 사물에 대한 규칙적으로 합당하고 규정적인 지시가 발명되고, 이러한 언어적 입법은 또한 진리에 대한 최초의 법을 제공한다: 여기서 진리와 거짓 사이의 차이가 유래한다. 거짓말장이는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으로 보이기 위해 언어, 즉 '합당'한 지식을 사용한다. 그는 자의적인 변경, 혹은 이름의 전도에 의해 고정된 관습을 경멸한다. 그가 이런 일을 타인에게 해가 되는 이기적인 방식으로 행할 때, 사회는 더이상 그를 신뢰하지 않고 그를 배제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기만에 의해서 침해당하는 만큼 기만당하는 것으로부터 도피할 수 없다: 그들이 이 단계에서 미워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기만이 아니라 기만에 속하는 어떤 종류의 악하고 적대적인 결과이다. 유사하게 제한된 방식으로 인간은 진리를 원한다: 그는 진리의 결과로서 흡족한 삶의 보존을 갈구하지만 아무런 결과도 낳지 않는 순수한 지식에는 무관심하다; 그는 심지어 가능한한 손해를 끼치고 파괴적인 진리에 대해 적대적이다. 더우기 이러한 언어의 관습은 어떠한가? 이것은 실제로 지식의, 진리의 의미가 낳은 산물인가? 지시와 [지시]대상은 일치하는가? 언어는 모든 실재에 대해서 적절한 표현인가?
망각을 통해서만 인간은 단지 지시되어 진다는 의미에서 진리를 소유한다는 망상을 획득할 수 있다. 그가 동어반복 형식의 진리(텅빈 껍질)에 만족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는 영원히 진리에 대한 망상을 사야할 것이다. 말이란 무엇인가? 소리로 된 신경자극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우리 외부의 원인인 신경자극으로부터 추론하는 것은 이미 거짓이고 정당화되지 않는 인관율(principle of reason)의 적용에서 나온 결과이다...병치된 상이한 언어들이 시사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말(words)에 있어 중요한 것은 결코 진리나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많은 언어들이 존재할 수 없다. 물자체(결과없이 순수한 진리가 추구해야 할 것)는 언어의 창작자들에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고 추구할 가치도 없다. 한 지시어는 사물들의 관계들을 인간에게 지시하고 그들을 표현하기 위해 매우 뚜렷한 은유를 요구한다. 신경자극은 첫번째 이미지로 바꾸어 놓여진 첫번째 은유이다. 이미지는 계속해서 소리(두번째 은유)에 의해 모방된다...
아직도 개념의 형성에 상당한 주의가 요구된다. 모든 말은 즉시 개념이 된다. 왜냐하면 자신이 유일하고 완전히 개별화된 본래적 경험-여기서 자신의 태생을 입는-의 상기로 사용되도록 의도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셀 수 없는, 다소간 유사한 상황-엄격히 말해 결코 동질적일 수 없는 것을 의미하는-이 다른 언어들(수많은 상이한 것들)로 맞추어 지기 때문이다. 모든 개념은 이질적인 것을 동질화시킴으로써 생긴다. 어떠한 잎새(leaf)도 다른 잎새와 완전히 같은 것은 없지만 '잎새'라는 개념은 이러한 개별적인 차이들로부터의 자의적 추출을 통해, 차이의 망각을 통해 형성된다; 그리고 이제 자연에 '잎새'라고 하는 잎파리들(leaves) 이외의 무엇인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관념이 생긴다-이는 어떤 종류의 원초적 형식인데, 이를 쫓아 모든 잎파리들이 짜여지고 구분되고 복사되고 채색되지만 숙련되지 않은 손으로 이뤄지므로 어떠한 모사물도 확실하고 신뢰할 만한, 그리고 믿을 만한 원초적 형식의 이미지가 아님이 밝혀졌다. 우린 어떤 사람을 보고 정직하다고 말한다. 왜 그는 오늘 그렇게 정직하게 행동했는가? 대답은 대개 다음과 같이 들린다: 그의 정직때문에. 정직! 이것은 다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잎새는 [모든]잎파리들의 원인이다. 결국 우리는 '정직'이라고 명명된 본질 같은 속성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는 수많이 개별화된, 따라서 이질적인 행동들에 대해서만 안다. 우리는 이것들에게서 이질적인 것을 생략함으로써 그리고 그것들[이질적인 행동들]을 정직한 행동이라고 부름으로써 동질화시킨다. 결구 우리는 '정직'이라는 명사를 사용해서 그것들[이질적인 행동들]로부터 신비한 본성(qualitas occulta)을 추출해 낸다...
그러면 진리는 무엇인가? 인격화와 환유, 은유의 유동가능한 조직-간단히 인간 관계들의 총화인데, 이는 고양되고 번역되고 시적 수사적으로 윤색되며 오랜 용례 이후에 확고해지고 표준화되며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것으로 되는 것이다: 진리는 환상인데, 이에 대해 사람들은 다음을 망각한다. '진리'는 낡아 빠지고 감각의 힘이 결여된 은유이다. '진리'는 자신의 그림을 잃어버리고 이제는 더이상 [화폐로서의] 동전이 아니라 금속으로만 여겨지는 동전이다.
우리는 아직도 진리에 대한 요구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른다; 우리는 아직도 그것[진리]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회에 의해 부과된 의무에 대해서만 듣고 있기 때문이다: 진리적으로 된다는 것은 습관적인 은유를 사용함을 의미한다-도덕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정해진 관습에 따라 거짓말 해야할, 집단적인 모두에 대해 강제적 방식으로 거짓말 해야할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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