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철학과 문화론

예술과 문화 중이 싫으면 절이 떠나라 (1998)

김재인 2002.06.26 03:31 조회 수 : 13044 추천:425

* <샘이깊은물> 1998년 3월호에 발표했던 글입니다. 이제는 인터넷의 시대지만, 과거 PC통신 시절을 그리워하며, 아니 인터넷 문화의 모든 잠재성을 담고 있던 곳으로서의 그곳을 현재적으로 회상하며 옮겨봅니다.

  중이 싫으면 절이 떠나라
     - 사이버스페이스의 마니아들이 바라보는 세상

  노래하는 애들 99의 음악 “토요일밤의 열기”를 듣는다. 뭔가 못마땅한 게 있는 사람들은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지하실에 모여서 쑥덕거리고 노닌다. 들판이나 땅바닥 즉 ‘야(野)’나 ‘재야(在野)’보다도 더 낮은 곳인 지하 또는 땅밑, 이른바 ‘언더그라운드’에서. 그것도 삐딱한 자세로. 하지만 그들의 쑥덕거림과 노님은 세상 전체를 바꿀 만큼의 힘은 없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 주변에 이는 작은 파문에 기뻐하고 영향 받는다. 그들이 있는 곳은, 세상 속에 있지만 마치 세상 바깥에 있는 것처럼 존재하는 장소, 아니 어쩌면 장소가 아니라서 비장소라고 얘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곳, 밝은 빛 속에서는 없는 듯 보이고, 설사 간혹 눈에 띄더라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얘기되는 곳, 건전한 공간이라고 얘기되는 일이 좀체로 없는 곳이다. 그곳에서 광기와 하찮은 것과 병신들이 스멀거리고 왁자지껄대며 노닌다. 이곳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이런 곳에 살거나 드나드는 사람을 ‘마니아’라고 부른다. 어원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광(狂)’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자꾸만 샛길이나 곁길, 아니면 길 아닌 곳으로 다니려고 한다고 해서 ‘일탈자’라고 부르기도 하고, 정상적인 삶 바깥에 있다고 해서 선인들의 표현을 따라 ‘방외인(方外人)’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대단한 존재인 것도 아니다. 그들은 평범하거나 보잘 것 없게 보이기까지 한다. 이들이 보기에는 세상 돌아가는 일이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세상을 모조리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무엇인가 자기만의 대상에 몰입하게 되고 그 속에 세상을 용해하며 살아간다. 그들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에서 던진 두 개의 거창한 물음은 사회학적인 또는 사회 철학적인 물음으로, 꽤 많은 사례를 조사해야지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방대한 작업을 대신해서, 최근 컴퓨터 통신 공간 또는 사이버스페이스라 일컬어지는 곳에 존재하는 작은 마니아 모임 하나를 구경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모든 마니아들에 대해 시시콜콜 살펴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곳이 바로 그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그러나 보통 사람들과는 ‘한 끝 차이’로 다르기도 한 그들이 이 독특한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가며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들을 하는지 대개의 사람들은 잘 모른다. 사람들은 대체로 그 공간에 접근해 본 적도 없고 또 접근하기를 두려워한다. 더군다나 언론과 대중 매체도 그 스스로가 그곳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지 못한다. 어떤 곳에 관해 정확한 말을 하려면 충분한 기간 동안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만큼의 투자를 하기에는 이곳은 너무 소소하다. 게다가 이곳은 생성중인 역동적 공간이다. 그래서 지금 그곳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하다.
  나는 국내 컴퓨터 통신 서비스 업체 중의 하나인 하이텔(한국피시통신 운영)에서 작은 모임 하나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는 컴퓨터 통신 서비스 업체가 여럿 있는데, 서비스의 질은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대개가 다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을 다 열거하기는 힘들고, 차라리 컴퓨터 통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부류에 따라 그 서비스 내용을 짐작해 보는 편이 낫다. 장사나 정치를 하기 위해 통신망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 공부나 연구를 위해 통신망을 활용하는 사람, 바둑을 두거나 게임을 하거나 잡담을 하기 위해 통신망을 오락용으로 이용하는 사람, 친구나 애인을 사귀기 위해서 아니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을 더 가깝게 만나기 위해서 통신망을 사교의 장으로 이용하는 사람, 생활 정보를 얻거나 소규모 경제 활동(홈뱅킹, 홈쇼핑 따위)의 보조 수단으로 통신망을 이용하는 사람 등 컴퓨터 통신을 하는 사람에는 여러 부류가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우리가 주목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사교 차원을 넘어 뭔가 적극적인 목표를 갖고 모임 활동에 매진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활동하는 공간이 바로 ‘동호회’ 또는 ‘작은모임’이다.
  동호회와 작은모임은 규모와 운영 방식 면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그 근본적인 성격은 상당히 유사하다. 내가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내가 지금도 몇몇 동호회에서 꽤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며 한때는 제법 내노라하는 동호회의 운영진(시삽)으로 활동해 본 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곳은 그런 큰 동호회가 아니라 회원 수가 기껏 이백오십명 가량밖에 되지 않는 한 작은모임이다. 나는 그 작은모임을 만들었고 만 일년이 훨씬 지난 현재까지도 그곳의 대표시삽으로 활동하고 있다(‘시삽’이라는 말은 ‘시스템 오퍼레이터’의 준말로 하나의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통신 용어이다. 그러므로 대표시삽은 그런 시삽의 대표이다).
  동호회 또는 작은모임은 각자 존재 이유를 갖고 있다. 예컨대 하이텔 대학원 동호회(go grad)는 대학원 수준의 전문 지식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서 존재하고자 한다. 다른 한편 하이텔 불어 동호회(go france)는 불어 및 불문화(불문학, 철학, 영화 등)와 관련된 정보 교환 및 학습 등을 위해 존재한다. 넷츠고 필름 돌아가는 소리(go ffilm), 천리안 철학 교육자 동호회(go sophia), 천리안 현대 철학 동호회(go pt) 같은 곳들도 각자의 목적 의식을 분명히 갖고 있다. 이런 점은 다른 동호회들도 마찬가지이며, 규모만 작았지 작은모임들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덧붙여 회원들 간의 친목 도모도 중요하다. 사람이 있고 나서 모임이 있는 법이니까.
  하이텔 내에서 내가 운용하고 있는 작은모임의 정식 명칭은 “문화담론 연구모임 ‘이다’(go sg68)”이다. 이 작은 모임은 원래 오프라인에서의 목적 의식을 갖고서 만들어졌다(‘오프라인’이란 ‘온라인’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컴퓨터 통신망에 접속되어 있지 않은 상태, 보통은 사람이 직접 대면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발간하는 문화 무크지 ꡔ이다ꡕ의 편집 동인으로도 일하고 있는데, 그 무크지는 젊은 문화적 열정과 재능을 모아보기 위해 요사이 많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실험들 중의 하나이다. 원래 하이텔 ‘이다’는 그 무크지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지향하는 갖가지 문화 운동을 실천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기획되었고, 그 때문에 책과 같은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 두 ‘이다’는 곧 별도의 행보를 취하며 각자의 개성을 만들어 가게 되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사람들일 것이다.
  어떤 모임이건 그 모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 따라 성격이 정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공유되지 않는 이상 두 개의 모임이 단지 이름만 같다고 하여 동질적인 성격을 지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무크지 ꡔ이다ꡕ와 하이텔 ‘이다‘는 서로 다른 개성을 갖고 있다.
  이제 범위를 좀 좁혀서 얘기하자면, 하이텔 작은모임 ’이다‘는 통신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사한 모임들의 좋은 모범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국내 컴퓨터 통신 서비스 업체를 통틀어 이와 유사한 형식의 모임 활동(동호회이건 작은모임이건)은 어림잡아도 만여개는 된다. 현재 하이텔에만도 작은모임이 천 개가 넘는다. 따라서 그 많은 모임들을 두고서 감히 ’이다‘를 모범적인 모임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도 그 모임의 대표 입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참으로 건방진 말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그 말은 ’이다‘가 다른 모임들에 비해 낫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다른 모임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짐작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 말을 한 것이다. 게다가 ’이다‘는 하이텔에 있는 무수한 작은모임들 중에서도 꽤 활동이 잘 이루어지는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게시판에서의 활동이나 대화방에서의 활동 등 온라인에서의 활동도 꽤 활발하게 이루어져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으며 오프라인에서의 활동과도 잘 연계되어 회원들간의 친밀도도 상당한 편이다. 또한 게시물의 질적 수준도 평가를 받는다.
  이제부터 ‘이다’의 내부로 들어가서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다’는 그 공식 명칭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문화담론 연구모임”이다. 하지만 이렇게만 해놓으면 성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모호함 자체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은 그 이름의 모호함에 이끌려 문을 열고 들어온다. 흔히 문화라고 하면 문학을 비롯해 영화, 연극, 미술, 고전 음악, 라디오, 광고, 텔레비전, 대중 음악, 만화, 패션, 애니메이션 따위를 아우른다. 복잡하게 생각하기 이전에, 문화라는 말을 쓸 때 우리에게 번쩍하고 떠오르는 감이 있고, 대체로 그것이 문화의 외연을 결정한다고 보면 된다. 문화담론이란 그런 문화 현상에 대한 말 전부를 포괄한다. ‘이다’는 그런 말들이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공간이다. ‘이다’의 존립에 해가 되는 폭력성과 상업성만이 철저하게 배제될 뿐이다.
  대체로 창작자의 입장에서건 감상자의 입장에서건, 아니면 전달자의 입장에서건, 문화에 관심이 있고 문화 현상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들에 대해 단편적인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고 그것들에 대해 침묵과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적어도 두세 가지 문화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것들에 대해 품평을 하고 추천과 권고를 한다. ‘이다’가 구체적인 문화 장르 하나만을 선택할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통 우리는 말 속에서 갖가지 문화 현상들을 연결시키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 사실 그들이 곧 우리들이다. 여기서 ‘우리들’이라고 했을 때, 그 말이 가리키는 사람은 글을 쓰고 있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만이 아니다. ‘우리들’에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나도 ‘이다’의 회원인가?”라고 당신은 물을 수 있다. “이 글을 통해 ‘이다’라는 모임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 전에는 그 근처에 얼씬도 해본 적이 없는 나도?” 물론 아니다. 그러나 잠재적으로는 당신도 ‘이다’의 회원이다. 왜냐하면 ‘이다’는 열려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나는 “말들이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공간”이라는 표현을 썼다. 나는 이 말의 함의를 굉장히 소중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겉보기에는 좀 어지러운 듯 보이더라도 말들이 자유롭게 발언될 수 있는 곳이 특정한 말밖에 할 수 없는 곳보다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우리 사회에는 말을 하는 데 있어 많은 제약이 있었다. 해야 하는 말과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 각본처럼 짜여져 있었고, 그것은 우리의 사고와 우리의 행동을 무척 많이 제약했다.
  컴퓨터 통신 공간은 매체의 특성상 그런 제약이 많이 완화된 곳이다. 그래서 자유에 대해 회의를 많이 품고 있는 사람들은 컴퓨터 통신 공간의 존재에 대해서도 많은 회의를 품는다. 그곳을 저질 정보와 저질 담론들로 가득 찬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는 굳이 그런 생각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심지어는 그런 판단들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실제로 저질 정보와 저질 담론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사 그 판단이 옳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런 이유 때문에 컴퓨터 통신 공간 자체를 부정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는 컴퓨터 통신 공간 안에서 유통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저질 정보와 저질 담론들이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그런 저질들 속에 어떻게 좋은 것들이 만들어지고 자리잡을 수 있는가 하는 점. 그것들은 여러 가지 실험들 속에서 비로소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실험들은 자유롭게 행해져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말들이 자유롭게 노닌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생각을 자유롭게 전개시켜 나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공간 안에서 말들은 자율적인 조정 능력을 갖는다. 좋지 않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외면당할 수 있는 분위기만 형성되면, 말들은 마음껏 자신의 표현을 누린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법칙이 통하지 않는 곳을 만드는 것, 그것이 ‘이다’의 목표 중의 하나이다.
  하이텔에는 ‘큰마을’(go plaza)이라는 란이 있다. 거기에서는 갖가지 사안들에 대해 온갖 종류의 담론이 올라와 경합을 벌인다. 좋은 글에 대해서는 추천도 올라가고 나쁜 글에 대해서는 비난도 쏟아지고. 이런 통신 게시판에서 우리가 눈여겨 보는 것 중에 하나가 이른바 ‘조회수’이다. 조회수란 어떤 글을 몇 명의 사람이 보았느냐 하는 수치이다. 예를 들어 조회수가 구십구라면 아흔아홉명의 사람이 그 글을 봤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대개 조회수가 높은 글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봤다는 뜻이 된다. 물론 조회수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글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잣대로 이용될 수가 있다.
  이러한 기본 법칙은 동호회나 작은모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다시 말해 어떤 회원의 글이 읽을거리를 별로 제공하지 않았고 그런 일이 몇 번 계속되고 나면 그 회원의 글은 조회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어떤 회원의 글이 대체로 좋은 내용을 보여주게 되면 그 회원의 글은 상대적으로 높은 조회수를 얻게 된다. 내가 ‘이다’ 활동을 통해서 얻은 중요한 깨달음의 하나는, 좋은 글은 높은 조회수를 올린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법칙은 ‘이다’에서는 잘 통하지 않는다.
  그럼 어떤 글이 좋은 글로 평가되는가? 그것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사람들마다 글을 평가하는 지적 기준과 미적 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좋은 글은 알아본다. 예를 들어 ‘이다’에서 필명을 날리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simba2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승휘님이다(통신에서는 이름 뒤에 ‘님’자를 붙임으로써 호칭으로 삼는다). 이승휘님은 생활 깊숙한 곳에서 글감을 찾아낸다. 그런데 그 소재들은 생활 속 너무 깊은 곳에 있어서, 우리가 그 속에 너무나 젖어 살기 때문에, 우리네 시각의 사각 지대에 있어서 잘 보지 못하던 것들이기에, 우리는 이승휘님의 글을 읽으면서 화들짝 깨어나게 된다. 목욕탕 이야기, 내복 이야기, 드라마 <파랑새는 없다> 평 연작, 연극 이야기, 어머니 이야기, 회사 이야기 등 이승휘님의 글을 읽으면서 때로는 폭소를 때로는 눈물을 때로는 진한 감동을 얻는다. 너무나도 솔직한 얘기들인데다가 통신 게시판의 특성을 나름대로 잘 활용하는 글들이어서 다른 지면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함들이 실험되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얘기를 조금 앞으로 돌리겠다. 나는 앞에서 ‘이다’가 열린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게 얘기한 다른 이유는 이른바 ‘손님’들도 거의 마음대로 글을 쓰고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손님의 글이 더 많은 때도 있다. 나는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회원 가입 신청을 할 수 없거나 망설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글을 읽고 쓰는 데 제한을 받는다면 너무 일찍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좀 더 시간 여유를 가지면서 남들의 글을 충분히 읽어보고 그 다음 자신의 글도 한 번 올려보고 그런 다음에 회원이 되도 늦지 않다. 아니, 아예 회원이 아니면 또 어떤가? 좋은 생각, 참신하고 창조적인 생각들을 나눠가질 수만 있다면 족한 것 아니겠는가.
  craven 아이디를 쓰는 이태직님은 어느날 ‘이다’ 대화방에 들어가려고 보니까 손님은 대화방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대화방을 개방하지 않을 때여서 가끔 그런 봉변을 당하는 사람이 있곤 했다. 왜냐하면 게시판이 하도 자유로우니까 자신이 이곳에 가입 신청을 했는지 안 했는지 미처 깨닫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태직님과는 다른 모임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고 면식도 있기 때문에 서로 벽을 느낄 수 없었던 것도 당연하다.
  사람 얘기가 나온 김에 ‘이다’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좀 더 보기로 하자. 손님들이 워낙 많기에 정확한 정보를 알 수는 없지만 회원 가입을 한 사람들의 신상 명세를 놓고 얘기한다면 50년대생부터 80년대생까지 연령층을 형성하고 있고, 하이텔 평균(19퍼센트)에 비해 여성층의 활동이 활발하다. 흥미로운 것은 중고등학생, 대학생을 비롯한 학생층이 절반도 안 되고 많은 사람들이 직장인이거나 자유직에 종사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보통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직장에 다니느라 통신 모임 활동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직장에 다니면서도 문화에 대한 열정을 계속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짬을 내서 찾아다니다 만난 곳, 현재 ‘이다’는 그런 곳으로 존재하고 있다. 내가 쓰는 이 글도 그렇게 돌아다니다 ‘이다’를 알게 된 ꡔ샘이깊은물ꡕ 기자 한 분이 아이디어를 떠올려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도 실제로는 이십대 중반에서 삼십대 초반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다’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광고나 홍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신문사나 잡지사나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 음악과 미술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 시나 소설 등 문학 창작을 하는 사람, 영화를 만드는 사람, 대학원에서 학업을 계속하는 사람, 디자인 일을 하는 사람, 번역을 하는 사람 등 다음 시대의 문화계를 이끌어갈 사람들이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 하지만 ‘이다’에서는 서로 겸손한 사람들. 그래서인지 오프라인 모임을 하게 되면 스무명에서 서른명 정도의 사람들이 나와 밤을 지새며 얘기꽃을 피운다. 처음 만났어도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귀가하고픈 맘이 일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낯설지 않다.
  매일같이 출근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온라인 대화로 밤을 지새는 날도 수두룩하다. 새벽 세시 반 대화실. 낯익은 cinemato 아이디의 장호준님이 있다. “어머니 얼굴보다 자주 뵙네요. 또 이 시간에 들어오셨군요. 근데 어제는 왜 안 들어오셨죠?” “밤새 만화책을 보다가 깜빡 접속하는 걸 잊었네요.” 얘기들이 이어진다. 상식적으로는 미친 사람들이다. 남들이 다 자는 새벽 시간에 누군가를 만나리라 기대하면서 접속을 하는 사람이나 그 때까지 사이버스페이스를 떠돌아다니고 있는 사람이나 정상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남들과 똑같은 생활을 한다는 것 역시 상상하기 어렵다. 비록 프로답게 대화방에서 영화 얘기는 별로 하지 않지만 가끔씩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말들이 매섭기만 하다.
  ‘이다’의 최고령자 enlinje 아이디의 김연신님은 큰 기업의 이사님이신데 현재 보스톤에서 공부를 하고 계신다. 하지만 ‘이다’에서는 이미 두 번째 시집을 준비중인 시인으로, 또한 오프라인의 멋진 신사로 더 유명하다. 한편 하이텔 작은모임 “소수인의 문화운동 ‘망명국가’(go sg61)”의 대표시삽이자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한, bluebook 아이디의 김소연님은 약 반 년 간 콸라룸푸르에서 접속을 하셨다. 지금은 멕시코시티에 계시는 이태직님과 위 두 분 그리고 내가, 언젠가 대낮에 대화방에 모였던 기억이 난다. 서울, 보스톤, 콸라룸푸르가 ‘이다’ 대화방에서 이어지던 그 순간! 열정은 전화선을 타고 바다 건너 저편으로까지 이어지는구나.
  이제 그만. 이런 식으로 ‘이다’ 사람들을 소개하려다 보면 이 잡지 한 권을 다 할애해도 부족할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이 글도 사이버스페이스의 마니아가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를 보는 맛배기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끝으로 빼놓을 수 없는 진짜 마니아가 있으니 eximius 아이디를 쓰는 강수민님. 입으로만 백수인 사람도 많은 세상에서 몸으로도 실천하는 진정한 백수. 날카로운 감수성과 풍부한 지성, 그리고 뒷골까지 파고드는 재치. 우리는 강수민님의 게시물을 읽을 때마다 우리 자신의 위선과 허약함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강수민님은 보통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이 되서야 접속을 끝내고 잠자리에 든다. 이것이 자랑할 만한 생활 방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전혀 부끄럽지도 않다. 왜냐하면 원래 사람은 자기의 리듬에 맞춰서 살아야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자기 식대로 사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가장 큰 용기이다.
  글을 써오면서 나는 짬짬이 ‘이다’에 모이는 사람들의 부류, 그들이 하고 있는 일, 이들의 열정과 개성, 게시판에서 전개되는 얘기들의 내용 따위를 언급했다. 이들은 작은 목소리로 얘기한다. 세상을 모두 바꿔버리겠다고 큰 소리로 떠들지도 않는다. 이들은 단지 작게 도모할 뿐이다. 자기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그렇다면 너무 평범하지 않느냐고 당신은 묻는가? 물론 그들은 평범하다. 그리고 그들은 단지 ‘한 끝 차이’로 독특하다. 그들의 독특함은 때로 그들이 몹시 지쳐 있고 힘겨워서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들어가고 싶은 맘이 들더라도 그 순간 다시 반발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닌 것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하려고 한다. 늘 그렇게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그렇게 살려고 애쓴다. 괴테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노력하는 동안 방황한다”고.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이다’에 들어와서 함께 활동했기 때문에 자기 나름의 개성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점이 시사하는 바는 대단히 크다. 나는 위에서 당신도 ‘이다’의 잠정적인 회원이라고 말했거니와, 그 말이 의미하는 충분한 의미가 여기서 드러난다. 당신이 지금 젊은 날의 열정을 계속 간직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는 것. 하이텔의 ‘이다’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도 있다. 또한 다른 모임이 다른 어떤 곳에 있을 수도 있고 앞으로 생겨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당신 삶과 관계해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당신이 살고 있는 지금 그곳이 중요하다. 어떤 자리에서건 자신의 삶을 최대치로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 만났을 때 뭔가 사건이 일어날 수 있고 뭔가가 만들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 내가 살펴본 것은 특정 분야의 마니아가 아니었다. 음악광이나 영화광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느 순간 우리들과 구별되지 않는 그런 마니아였다. 우리 자신이 마니아로서 살게 되는 그런 순간, 그 절정의 순간들이 모여서 ‘이다’를 이루었다. 사이버스페이스의 마니아들은 대체로 그런 식으로 존재할 것이다. 나는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그런 절정의 순간들이 당신 곁에 좀 더 오래 머무르길 바란다. 가끔 상식에 대항해서 이렇게 외치는 것도 멋진 일 아니겠는가. “중이 싫으면 절이 떠라라!”라고.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고문살인의 전말 (김동렬 펌) [5] 철학자 2009.05.24 254944
공지 애도 노무현 [3] 철학자 2009.05.23 287906
공지 He will and should and must be back [5] 철학자 2009.04.18 261109
공지 그 때는 우리가 참 강했다 철학자 2008.02.22 276843
476 눈이 도대체 뭐예요? [3] 한승호 2002.06.09 3641
475 도와주세요... !!! [1] 철학? 2002.06.09 3319
474 안녕하세요 알고싶은것이 있습니다. 최진건 2002.06.10 3300
473 복제인간에 대해 등애 2002.06.12 3591
472 현대철학의 공통적 경향에 대한 궁금증 입니다. 몽상가 2002.06.16 3505
471 진리와 사실에대한 궁금증.... [3] 몽상가 2002.06.16 3490
470 현대철학과 헬레니즘시대철학과의 차이점 박상희 2002.06.23 3406
» 중이 싫으면 절이 떠나라 (1998) [1] 김재인 2002.06.26 13044
468 환상 현실 속의 기우뚱한 균형 (김진석 서평) 김재인 2002.06.26 3431
467 우리 눈으로 본 최초의 서양 근대 철학사 (서평) 김재인 2002.06.26 3988
466 경계 허물기와 경계의 분별 (2001) 김재인 2002.06.26 13212
465 철학강의 2. 물음을 다시 묻기 김재인 2002.07.01 3290
464 철학강의 3. 실천으로서의 방법 김재인 2002.07.01 3475
463 니체.니힐리즘에 대해서 고딩 2002.08.16 3638
462 영원회귀사상에 대해서 cogito 2002.09.02 3479
461 그를 알고 싶습니다 니체그를알고싶다 2002.09.06 3307
460 니체의 몸사상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윤리리포트 2002.09.15 3382
459 니체의 초인 사상이 나치즘에 오용된 것을 간략히 풀어서 저에게 알려주실 분 없나요,.. 안소미 2002.09.18 3916
458 꼭 대답 부탁합니다 김정은 2002.09.21 4248
457 [re] 니체의 초인 사상이 나치즘에 오용된 것을 간략히 풀어서 저에게 알려주실 분 없나요,.. 김명철 2002.09.22 38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