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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철학과 철학사 철학강의 2. 물음을 다시 묻기

김재인 2002.07.01 06:00 조회 수 : 3290 추천:43

  2. 물음을 다시 묻기

  당분간 ‘철학’이라는 활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규정하지 않은 채로 가보자. 우리의 언어는 충분히 그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여러 가지 맥락에서 우리는 ‘철학’이라는 말을 별 문제 없이 쓴다. 심지어 내가 ‘철학’과에 다니고 ‘철학’을 공부한다고 부모에게 말할 때 내 부모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르면서도 그 말을 이해하고 또 쓴다. 그러니 가장 평범한 사람이 그 말을 쓸 때처럼 당분간 내버려두자.
  어떤 독자는 속 시원히 말하지 않고 뭘 그리 빙빙 돌아가느냐고 딴죽거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물음에 쉽게 답하지 않는 것, 그것도 일부러 어렵게 답하려 해서가 아니라 그 물음의 속성상 쉽게 답할 수 없기 때문에 쉽게 답하지 않는 것 자체가 철학 활동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쉽게 답하지 않는 것보다 순서상 먼저 오는 것은 어떤 물음을 쉽게 묻지 않는 일이다.
  우리는 쉽게 의문을 품고 물어볼 수 있다. 아이들이 하듯이 호기심에 가득 차서. 그러나 그저 묻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답에 이르려고 한다면 쉽게 물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종종 우리의 물음은 헛된 것이거나 잘못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답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 수 있으며 나아가 자신을 덫에 넣는 일일 수 있다.
  가령 조세희의 소설 「뫼비우스의 띠」를 보자. 수학 교사와 학생들의 문답이 오가는 마지막 장면, 이 인상적인 장면을 함께 읽어 보자.

  “수학 담당 교사가 교실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그의 손에 책이 들려 있지 않은 것을 보았다. 학생들은 교사를 신뢰했다. 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신뢰하는 유일한 교사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제군, 지난 1년 동안 고생 많았다. 정말 모두 열심히들 공부해주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시간에는 입학 시험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몇 권의 책을 뒤적여보다가 제군과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을 발견했다. 일단 내가 묻는 형식을 취하겠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학생들은 교단 위에 서 있는 교사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잠시 후에 한 학생이 일어섰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교사가 말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학생이 물었다.
  교사는 말했다.
  한 아이는 깨끗한 얼굴, 한 아이는 더러운 얼굴을 하고 굴뚝에서 내려왔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의 아이를 보고 자기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는 상대방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학생들은 놀람의 소리를 냈다. 그들은 교단 위에 서 있는 교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 번만 더 묻겠다.
  교사가 말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똑같은 질문이었다. 이번에는 한 학생이 얼른 일어나 대답했다.
  저희들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기다렸다.
  교사는 말했다.
  그 답은 틀렸다.
  왜 그렇습니까?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을 테니까 잘 들어주기 바란다. 두 아이는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한 아이의 얼굴은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 문답의 과정은 가르침의 진정한 의미를 시연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은 바로 참된 답을 찾는 것은 물음 자체를 돌아보는 데서 시작한다는 가르침이다. 답을 찾으려 한다는 이름의 허울 좋은 방황을 하지 않으려면 우선 물음 자체를 조심스레 가져가야 한다.
  은사이신 정진홍 선생은 당신의 ‘전공’인 종교학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늘 “물음을 다시 물어라”고 강조하곤 했다. 그 말은 하나의 화두였다. 뭔가 궁지에 몰려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늘 그 화두로 돌아간다. 물음을 다시 묻는 것은 단지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시작에 대한 반성을 의미한다. 나는 지금 답을 찾으려 애쓰지만 내가 찾는 답은 어떤 물음에 대한 답인가? 왜 나는 묻기 시작했는가? 나의 물음은 나의 물음인가 다른 누군가의 물음인가? 남이 물은 것을 그냥 받아서 습관처럼 무심코 묻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남이 묻기 시작한 것이라 해서 나에게 의미와 가치가 없으란 법은 없지만, 적어도 그 물음은 나로부터도 물어진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나는 출발점으로 돌아가 나의 물음을 묻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서 출발점으로 돌아간다는 것, 즉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물음을 묻기 시작한 최초의 지점을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찾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물음의 기원은 물음을 다시 묻는 그 순간에 불쑥 탄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에 시작한다. 우리는 언제나 도중(道中)에 있어서, 경주의 출발점과 같은 그런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 지금이 아니고서는 시작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시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시작하기란 무척 어렵다. 언젠가 청춘에 관해, 젊다는 것에 관해 정의해 보라는 어떤 좌석의 요청에 문득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답했던 적이 있다. 나는 아직도 그 이상의 답변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 말을 뭔가 거창하게 각오를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그때 단지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하려 했을 따름이다.
  시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힘이 있어야 한다. 당장 경주만 보더라도, 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동물적인 감각을 곤두세우다가 어느 순간 불현듯 박차고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 더구나 어떤 반응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활성화 에너지의 벽은 높기만 하다. 그것을 견뎌야 하며, 심지어 스스로 촉매가 되어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실제 삶에서는 더더욱 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세상은 우리가 시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힘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면 결코 시작하지 못한다. 반대 힘과 맞서 제쳐야만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김수영이 염두에 뒀던 그 노고지리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중력을 박차고 솟아올라야 한다. 또한 니체가 말했던 저 ‘무거움의 정신’ 또는 ‘중력의 영’(Geist des Schwere)과도 싸워 승리해야만 한다. 이 두 가지 경우, 즉 정치적 억압과 정신적 억압의 상황에서 반대 힘과 맞서 제치기 위한 첫째 비결이 용기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언급하자면, 이른바 물적 조건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가령 티벳에 가고 싶다고 당장 날아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비행기라도 타야 할 것이고, 비행기표라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휴전선이 시퍼렇게 그어져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걸어서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중국 국경도 엄존한다.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따라서 물적 조건에 대한 현실적 고려와 그 타개책의 마련 역시도 시작 이전의 시작에 해당한다. 이른바 시작을 하기 위한 준비가 언제이건 필요한 것이다.
  이렇듯 겉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내적 외적으로 시작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힘들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시작의 준비이자 시작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물음을 다시 물음으로써 물음을 시작하는 것을 흔히 ‘발상의 전환’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가령 알렉산더가 고르기아스의 매듭을 풀려고 애쓰지 않고 칼로 잘라버린 사건, 콜롬부스가 달걀의 한 쪽 끝을 깨어 세운 사건, 로렌스가 사하라 사막을 가로질러 적을 공격한 사건 등 고정관념에서 탈피할 줄 알았던 사람들은 언제나 남다른 일(그것이 좋은 일이었건 나쁜 일이었건 간에)을 해내곤 했다. 지금 우리는 거창한 영웅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물음을 다시 묻는다는 이 기본적인 태도는 모든 영웅을 영웅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영웅이 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아니 차라리 그것은 모든 평범함과 비범함 안에 있는 ‘영웅됨’이다(여기서 말하는 ‘영웅됨’은 ‘영웅다움’이자 나아가 ‘영웅-되기’이다. 그 의미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 테니 일단 기억해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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