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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기말고사 과제에 대해 학생이 제출한 답안을 하나 공유하겠습니다. 물론 익명처리하여 본인만 알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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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프랑스 68혁명, 직접 간접 민주주의로 본 쇠고기 파동


(1) 언론의 문제

 

1)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28%까지 떨어진 사건- 한겨레 VS 동아일보

한겨레 보도: …지지율 추락을 불러온 열쇳말은 ‘오만’이다.…이제부터라도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운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

동아일보: 이 대통령이 미국과의 통상 마찰까지 각오하고 국민 건강에 최우선을 두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은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광우병 논란이 증폭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과학적 근거는 무시되고, 이성적 대화도 통하지 않으며, 초중고교생 입에서 ‘대통령 탄핵’ 소리까지 나왔다. 상황이 이처럼 악화된 데는 악의적이고 무책임하게 인터넷 괴담을 확산시키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과 직접적 연계가 있건 없건 정치적 이념적 의도로 새 정권을 무력화하려는 세력의 작용이 컸다.

역시 인사 실패가 최대 요인이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겨레 5월 7일, 동아일보 5월 8일 사설>


 

두 언론은 같은 문제 ‘이명박 지지율이 28%로 하락했다’에 대해서 다른 원인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겨레에서는 이 문제가 이명박 정부의 오만 때문이고, 국민 중심의 정치를 해야한다고 말하는 반면에 동아일보는 광우병 논란이 증폭되는 것은 정상이 아니고, 따라서 이 문제의 주원인은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실패에 있다고 하고 있다.

 

◎ 내 주위에 어떤 사람은 조중동 신문을 보고, 실재로 광우병 촛불시위 등 광우병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지배적인 반응에 완강한 반대쪽 입장을 취한다. 나는 고3이후로 언론이나 사회문제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내 친구를 보고 언론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내 친구가 완강한 반대쪽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대부분 언론을 통한 것이므로, 친구가 완강한 반대 입장을 취한다면 거기에는 분명 언론이 깊숙이 관여했을 터이다. 이번 과제를 통해 보수쪽인 조중동 신문과 한겨레 등의 진보쪽 신문들을 비교해서 읽어보면서 어떠한 것이 문제인지 짚어볼 수 있었다.

 

 만일 당신이 보수쪽 신문만 일주일간 보다가 그 이후에 보수쪽과 진보쪽 신문을 모두 보았다면 당신은 쇠고기 파동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을 것 같은가?

 나는 이에 대해 아마도 당신이 쇠고기 파동에 대해 너무 증폭되었다며 광우병 논란에 대해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조중동 신문이 보수쪽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조중동이 이명박 정부를 무조건 옹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 그러한 일방적인 옹호를 통해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는 방법은 구식이라 해야할 것이다. 점점 더 지능적으로 변하는 것은 언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중동 신문은 일방적으로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지 않는다. 다만, 진짜 요인을 은폐하고 사소한 요인을 주요인으로 확대시킬 뿐이다. 예 컨대 위의 기사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28%가 되었다면, 그것은 국민들 중심의 정치를 하지 않음에 주요인이 있는 것이지, 인사관리에 주요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인사관리가 요인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주요인은 아니다. 그러나 언론은 이를 주요인으로 이끌어 국민을 속일 수 있다.

 

 둘째로, 조중동 신문을 볼 때 조중동 신문이 진보쪽 신문보다 오히려 다양한 근거를 설명하고, 논리적이라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조중동 신문이 다양한 근거를 대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확실하게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커다란 버팀목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근거를 조금씩 긁어 모아야 주장이 완성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수학 문제처럼 1+1=2와 같이 답이 딱 하나로 떨어지는 문제들이 아니다. 따라서 한 현상에서도 여러 답이 나올 수 있다. 말하자면, 이 세상의 문제는 수리영역보다는 언어영역 같다. 언어영역에 100%짜리 답이 있고, 80%짜리 답이 있고, 60%짜리 답이 있듯이 이 세상의 문제들도 이런 매력적인 오답이 존재한다. 그러한 매력적인 오답들을 짜깁기 해 놓은 언론은 큰 축을 세우지 못하는 대신에 언뜻 보면 다양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듯하게 보이기도 한다.



2) TV 속 미국 쇠고기 괴담은 터무니없이 과장된 내용이 많다. 소 1억 마리를 키우는 미국에서 그동안 광우병 걸린 소 3마리가 발견됐다. … 사육 소 100만 마리 가운데 광우병 소 30여 마리가 발견된 일본의 광우병 발생 비율이 미국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다. 


- 2008년 5월 2일 조선일보 사설


미국은 2000마리당 1마리씩 검사해서 지금껏 3마리를 찾아냈지만, 일본은 광우병 발병했을 때 100만 마리를 전부 검사해서 30마리나 찾아낸 것이다.


- 조승희 PD수첩 책임 프로듀서 인터뷰, 오마이뉴스

                                                                                                                                                         

 

 언론은 진실에 기초한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대체로 모두 진실이다. 다만, 편집에 의하여 진실로만 구성된 문장이 거짓을 뜻하게 될 뿐이다. 이는 위의 보기가 잘 보여준다.

 즉,

'미국은 2000마리당 1마리씩 검사해서 지금껏 3마리를 찾아냄'-True

'소 1억 마리를 키우는 미국에서 그동안 광우병 걸린 소 3마리가 발견됐다'-True

'일본은 광우병 발병했을 때 100만 마리를 전부 검사해서 30마리나 찾아냄' -True

 

일본의 광우병 발생비율이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이 높다-False

 

왜냐하면 둘이 발생비율을 비교하려면 일단 검사한 숫자가 같아야 하는데,

일본: 100만 마리 전부,   미국: 2000마리당 1마리씩 이니까 총 100000000/2000=5만 마리를 조사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도 일본과 같은 수만큼 검사를 한다고 가정하면

5만 X 20 = 100만 이므로

3마리 X 20 = 60마리

따라서 같은 숫자를 검사했다고 가정했을 때,

일본: 30마리,   미국: 60마리이므로

실제로는 미국이 일본보다 발생비율이 높은 것이다.

 

실제로 언론에서는 이런 수를 많이 쓴다. 데이터 자체는 진실이지만, 국민이 주의해서 읽지 않을 시에는 발견할 수 없는 거짓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2) 프랑스 68혁명의 연관성

 

 촛불시위는 프랑스의 68혁명과 많은 점이 닮아 있다. 68운동은 어느 혁명적 운동에 비해 자율적이며 정치화되지 않는 순수한 의식혁명이었다. 이러한 자율성은 68운동 자체의 조직과 구조에서 자율적이었으며, 비정치적 운동이었다. 마찬가지로 촛불시위도 정치에서 이용하려고 하기는 하지만, 그 자체는 배후 세력이 없는 자율적이며 정치화되지 않은 순수한 운동이다. 또한 68운동은 이전의 혁명들과 분명히 다른, 눈에 띄는 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조직적이고 질서 잡힌 혁명이라기보다는 다소 느슨하고 유연한, 그리고 정치적인 엄숙함이 느껴진다기보다는 문화적인 축제의 한 형태와도 같은 느낌을 주는 혁명이라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촛불시위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혁명과는 달리 문화적인 축제의 분위기를 많이 띤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촛불시위가 비난을 사기도 하지만, 사실 꼭 그렇게 볼 문제는 아니다. 촛불시위에 공연을 할 때, 일부에서는 10대를 선동하는 행위라고 하지만, 이것은 가수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행위일 수 있고, 더불어 축제적인 분위기를 고조시켜 시위의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해주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68운동은 자본주의의 황금시대에 일어났다. 그리고 쇠고기 파동은 한미FTA에 일어났다. 우리는 이를 통해 당시나 지금이나 물질적인 풍요 이외에 더 중요하고 국민들이 목말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68혁명은  성장 위주의 물질적인 가치를 뛰어 넘어 탈 물질적, 정신적인 가치, 그리고 중앙집권적인 정치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생활정치를 원했고, 이후 다양한 소수의 목소리들이 힘을 내기 시작하면서 환경, 여성, 인권, 반전 등과 같은 신사회운동이 꽃피웠다. 촛불 시위도 마찬가지로 단순한 성장위주의 물질적인 가치를 뛰어 넘어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원하는 것이고, 가장 근본적인 국민의 건강을 구하는 운동인 것이다. 

 

 그런데 68혁명은 결국은 실패했다. 왜냐하면 체계적인 운동 조직과 기구, 그리고 그 혁명을 정당화할 엄밀한 이론이 모두 갖추어져 있지 않은 혁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5월 혁명의 갑작스런 쇠퇴, 혹은 실패는 이러한 혁명의 성격에 미루어 보아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5월 혁명은 정치 권력의 탈환과 같은 가시적인 혁명의 성공을 목표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처음부터 혁명의 실패를 전제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또한 사람들은 축제를 통해 자신들을 마음껏 분출한 뒤 한 때의 열렬한 축제는 막을 내리고, 다시 일상의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위 와 같은 사실은 우리가 단순히 68혁명과 촛불시위의 닮은 점만을 보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우리는 68운동의 실패를 통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촛불 시위가 실패로 끝나지 않도록 바로 잡아야만 하는 것이다. 촛불 시위는 광화문 앞에 촛불들이 일제이 모여있는 것을 보면 조직적이고 질서 잡혀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지만, 실재로는 시위의 방법이 '촛불'이라는 것과 광우병 관련되어 나왔다는 것을 빼고는 세부적인 내용은 다 다르다. 어떠한 사람들은 광우병과 더불어 교육제도에 불만을 가져서 나왔고, 또 어떠한 사람들은 광우병과 더불어 대운하 정책 때문에 나온 사람도 있다. 또 광우병에 대해서도 20개월 미만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30개월 미만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수입 자체를 아예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촛불 시위의 주된 특징 중 하나인 배후 세력, 주동 세력이 특정하게 있지 않다는 데에 있는데, 이럴 경우에 체계적으로 잡힌 목표와 운동 조직 등이 갖추어 있지 않아서 정부에 국민들이 불만이 있다는 사실만 어필할 뿐, 그 이상으로 구체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명심해서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행위가 필요할 것이다.

 

근거 출처:  http://blog.naver.com/imking1/60014365734

                 월간 [윈] 제4권 6호(통권37호) 1998. 6. 1/권말부록3/68운동의 사회문화적 의미-정현백


 

 

 

(3) 직접, 간접 민주주의의 문제

 시대는 직접 민주주의에서 간접 민주주의로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는 간접 민주주의 + 직접 민주주의로 돌아오고 있다. 즉, 현대는 체제적으로는 대통령을 뽑고, 자신의 의견을 대변해 줄 의회를 뽑지만, 한편으로는 국민들이 여러가지 수단을 통해 직접 정치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 수단 중에 하나는 요즘 부각되고 있는 촛불시위인 것이다. 촛불시위는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행위이다.

 현 대에는 반드시 직접 민주주의적인 요소들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정치가 국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회에서 굳이 국민의 의견을 외면하고 왜곡하지 않아도 간접 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반드시 국민들의 의견이 왜곡되게 되어있다. 아무래도 하나의 징검다리를 건너서 국민의 의견이 전달되는 것이니, 왜곡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의회는 국민의 의견을 대변하기 앞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당파를 형성하니 국민들은 제자리에 앉아서 지켜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뛰쳐나온 것이 촛불시위인 것이다. 이것은 엄연히 정치에 직접 참여하겠다는 국민의 뜻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국민의 뜻과 의지를 외면하고 촛불시위의 수준을 격하시키고, 불법시위로 규정하고, 진압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태도일 뿐더러 정치에 국민을 배제하겠다는 의미로까지 읽혀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것이 직접 민주주의적인 요소의 하나임을 반드시 직면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 역시 더이상 촛불 시위를 낮추고, 비난할 것만이 아니라 이것이 직접 민주주의의 요소라는 것을 인지하고, 국민들이 더욱더 평화적이면서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성숙한 국민의 자세로 임할 수 있도록 방향을 형성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4) 총체적인 느낌

 만 일 교수님께서 막연하게 '쇠고기 파동과 촛불 시위'에 대해서 조사해오라고 하셨다면 나의 생각은 이처럼 발전하지 못 했을 것이다. 아마 촛불 시위는 국민이 자신의 건강의 위기를 대면하여 나타난 당연하고 필요한 것이고 정부는 이를 과잉 진압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만으로 가득 채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언론의 문제부터 프랑스의 68혁명과의 관계, 직접 간접 민주주의의 내용까지 훑어 보게 되니까 더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생각이 가능해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직접 간접 민주주의와 연관하여 생각하면서 도출한 결론이였다. 현재는 직접 민주주의와 간접 민주주의가 모두 필요한 시기이고, 촛불 시위는 하나의 직접 민주주의적인 요소이다라는 생각! 곳곳에서 촛불시위를 비난하는 것을 보고 무언가 어렴풋이 촛불시위가 정당하다는 생각이 있었고 변호해 주고 싶었지만, 국민의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 이외에는 변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었다. 그런데 촛불시위가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라는 생각에 다다르니까 촛불 시위의 정당성이 입증됐고, 촛불 시위가 하나의 성숙한 의견의 분출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분 명 촛불 시위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있던 시위와는 그 모습이 매우 다르다. 그리고 그 주 세력이 10대라는 점에서 촛불시위를 격하시키고 있는 현재의 분위기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의 말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이 있다.

 

‘독’일 경우엔 파시즘, ‘약’일 경우엔 민주주의의 승화가 될 텐데, 잘 승화시키는 책임은 어른에게 있다.” -이택광 교수

 

그 렇다. 모든 사건은 반드시 좋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촛불 시위도 독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독이 될까봐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마치 4.19혁명 후 장면 내각이 들어섰을 때 자신들의 이익을 투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무분별하게 사용했듯이, 촛불 시위가 성공했을 때 앞으로 무분별하게 촛불 시위를 사용할까봐 일부에서는 촛불시위의 성공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촛불시위가 민주주의의 승화가 될 수도 있고, 잘 승화시키는 책임이 어른에게 있다는 이택광 교수의 말이다. 그리고 이 책임은 구체적으로 정부와 의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정부와 의회는 다른 곳에 힘을 쏟는 것이 아니라 이 촛불시위가 민주주의의 승화가 되도록 도와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