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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철학과 철학사 [re] 자료1 - 선악을 넘어 19절 번역

김재인 2006.06.04 02:14 조회 수 : 7450 추천:46

 <선악을 넘어. 미래 철학 서곡>(1886)의 번역. 김재인.


  19절.

철학자들은 의지에 관해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말하곤 한다. 쇼펜하우어 역시도 의지만이 우리에게 정말로 잘 알려진 것이라고, 완전히 알려진 것이라고, 가감 없이 알려진 것이라고 제시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쇼펜하우어 역시도 이 경우엔 철학자들이 하곤 했던 것을 다시금 행한 것처럼 보인다. 즉 그는 통속적 편견을 받아들여서 과장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의지작용(Wollen)이란 무엇보다도 복합적인 그 무엇(etwas Complicirtes)이며, 낱말로서만 단일체(Einheit)인 그 무엇이다 ― 그리고 바로 이 하나의 낱말 속에 통속적인 편견이 도사리고 있으며, 이 통속적 편견은 철학자들이 그 낱말에 대해 항상 사소하게만 기울이는 주의를 제압했다. 그러니 우리는 한 번 더 주의하고, “비철학적”이도록 하자. ―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각각의 의지작용에는 첫째로 느낌들의 다양함(eine Mehrheit von Gefühlen)이 있다. 즉 출발(weg) 상태의 느낌, 도달(hin) 상태의 느낌, 이 “출발”과 “도달”[이라는 운동]의  느낌 그 자체가 있으며, 그 다음엔 이것들과 동시에 발생하는 근육 느낌이 있는데, 이 느낌은 우리가 “팔다리”를 움직이게 하지 않는데도 우리가 “의지작용”을 하자마자 일종의 습관에 의해 작동을 시작한다. 이처럼 느낌작용(Fühlen)이, 정말 다양한 느낌작용이 의지의 성분으로 인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둘째로 생각(Denken) 또한 그러하다. 즉 각각의 의지 행위에는 명령을 내리는 어떤 사고(Gedanke)가 있다 ― 또 이 사고들이 “의지작용”과 분리될 수 있어서 마치 의지가 분리된 채로도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셋째로 의지는 느낌작용과 생각의 복합체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하나의 정감(Affekt)이며, 실상은 저 명령(Commando)의 정감이다. 본질적으로 이른바 “의지의 자유”라는 것은 복종해야만 하는 자에 대한 우월함의 정감이다. “나는 자유롭다, “그”는 복종해야 한다.” ― 이 의식은 모든 의지에 도사리고 있다. 또한 저 긴장된 주의 집중, 단호히 하나에만 고정된 저 올곧은 시선, “지금은 이것만 필요하며 다른 것은 필요 없다”는 저 무조건적인 가치평가, 복종이 행해지리라는 것에 대한 저 내적 확신, 그리고 명령하는 자의 [심리] 상태에 속한 그 밖의 모든 것들 역시도 모든 의지에 도사리고 있다. 의지를 행하는(will) 인간 ― 그는 복종하거나 복종한다고 그가 믿는 자기 안의 그 무엇에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의지에서, ― 즉 일반인들이 단 한 낱말로 표현하는 이 극히 복합적인 것에서―, 가장 놀라운 것을 고찰하자. 해당 상황에서 우리는 명령하는 자이면서 동시에 복종하는 자이며, 복종하는 자로서 우리는 의지의 행위 직후에 시작되곤 하는 강제, 강요, 억압, 저항, 움직임의 느낌들을 알고 있다. 다른 한편 우리는 “자아”라는 종합 개념 덕에 습관적으로 이 이중성(Zweiheit)을 무시하고 속이며, 그래서 일련의 오류 추리 및 그 결과 비롯하는 의지 그 자체의 잘못된 가치평가가 의지작용에 여전히 부착되어 왔으며, ― 이런 식으로 해서, 의지작용을 행하는 자(der Wollende)는 행동에는 의지작용만으로 충분하다는 선한 믿음을 갖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명령의 결과(Wirkung), 그러니까 복종, 그리고 행동(Aktion)이 기대될 수 있는 경우에만 의지작용이 행해지기 때문에, 이러한 외양(Anschein)은 결과의 필연성(Nothwendigkeit von Wirkung)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으로 번역된다. 의지작용을 행하는 자는 의지와 행동이 어쨌든 하나라는 것을 상당히 확신에 차서 믿는 것으로 충분하다. ― 그는 의지작용의 성공과 달성(Ausführung)을 여전히 의지 자체 때문으로 돌리고, 이런 식으로 모든 성공이 가져다주는 저 권력 느낌의 증대를 즐긴다. “의지의 자유” ― 이것은 의지작용을 행하는 자의 저 복잡다단한 쾌(快)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명령을 내리면서 이와 동시에 자신을 명령에 따르는 자(der Ausführenden)와 일치시키는 자이다. 그는 명령에 따르는 자로서는 저항을 극복하는 승리를 누리지만, 본래 저항을 극복한 것은 자신의 의지 자체라고 스스로 판단한다. 이와 같이 의지작용을 행하는 자는 명령에 따르고 성공시키는 도구, 즉 봉사하는 “하위 의지” 또는 하위 영혼―우리의 몸은 정말이지 많은 영혼들의 사회 구조(Gesellschaftsbau)일 뿐이다―의 쾌의 느낌들을 명령하는 자로서의 자신의 쾌의 느낌에 덧붙인다. 결과, 그것이 바로 나이다(L'effet c'est moi). 잘 구성되고 행복한 모든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이 여기에서도 일어난다. 즉 지배 계급은 자신과 공동체의 성공들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모든 의지작용에서 중요한 문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오로지 많은 영혼들의 사회 구조에 바탕을 둔 명령과 복종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는 의지작용 그 자체도 이미 도덕의 영역(Gesichtskreis)에서 파악할 권리를 가져 마땅하다. 즉 ‘삶’이라는 현상이 발생하는 지배 관계에 관한 가르침으로서의 도덕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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