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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철학과 철학사 백승영 교수의 인터뷰.

신승원 2005.08.18 20:48 조회 수 : 7521 추천: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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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를 연구하는 철학자로서 백승영은 좀 더 많은 부분이 드러나기를 소망한다. 니체 철학에 관심을 갖는 많은 이들에게 니체를 엉뚱하게 가르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함구하는 게 더 낫다는 그녀는 학생들에게 니체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과 찾아서 공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철학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했던 철학자, 니체. 쉬운 듯하면서도 그 내면을 쉬이 보여주지 않았다. 그에게 철학은 인간과 인간의 삶 자체에 봉사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이었다. 철학의 가치 또한 삶의 창조적 가능성을 상승시키고 삶을 긍정하게 만드는 기능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에게 철학은 곧 생활이었다. 그렇기에 주부들이 그의 철학을 즐길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자신의 철학이 미래 철학의 서곡이 될 것이라는 니체의 예견은 적중했다. 그의 철학은 철학뿐만 아니라 현대의 문학, 신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음악, 회화, 심지어 건축에까지 뻗치고 있다. ‘니체 르네상스’라고 할 정도로 철학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그만큼 쉽사리 잡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한 철학자가 그의 사유를 따라잡는다. 덕분에 주부들이 조금은 더 쉽고 친근하게 니체를 읽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쓸 만한 니체 가이드’를 하나 갖게 되었다. 철학 박사 백승영이 거기 서 있다.  

반시대적 편견 학자의 삶이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다른 라이프스타일이라고는 없다. 자신이 여자이기에 있을 법한 피해 의식도 없다. 성격이 허락지 않는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은 ‘뒤끝 없음’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에서 여성 학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던 그녀,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얼굴도 예쁘신데 철학 하세요?” 사회는 그랬다. 자신의 외모가 장애가 되는 아이러니. 학회에 참석하여 자리에 앉으면 자주 듣는 소리. “무용 하게 생기셨어요.”  “음대에서 오셨어요?” 물론 칭찬의 말이다. 하나 그 이면을 뒤집어보면 여성에 대한 편견이 깔려 있음을 직감한다. ‘예쁜 사람이 공부도 잘하네’라는 말은 불필요하다. 능력이 먼저이지, 외모는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대한민국은 그래서 피곤하다. 학자는 그 업적으로 평가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배경이나 다른 요소들이 우선시 된다. 그녀 스스로도 뛰어넘을 수 없는 불가항력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이 된다.

인터뷰 촬영을 사양한 이유다. 빌미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는 줄이고 철학이나 학문에 대한 비중을 늘여달라는 단서를 달았다. 가능하면 사진도 찍지 말자고 했다. 마지막 조건은 몇 번의 설득 끝에 철회할 수 있었지만, 여성 학자들의 위상에 대한 언급을 보증해야만 했다. “나름의 분야에서 결실을 맺고 있는 여성 학자가 많은데, 발표할 수 있는 통로를 찾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운이 좋은 거죠. 자유롭게 책도 발표할 수 있고, 이런 저런 활동도 할 수 있으니까요. 일단 그런 분들에게 용기를 주고 한편으로는 자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그래서 그녀는 더욱더 연구에 매진한다. 하루 15시간을 공부에 매달린다. 여전히 ‘거대한 숲’인 니체의 실체가 그녀를 가만두지 않기 때문이다.

니체적인 너무나 니체적인 니체는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이미지로 소비된다. 니체로부터 철학이 시작되었고, 실존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주억거린다. 니체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말이죠. 니체의 사유는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니체의 말을 한 줄이라도 이해한다는 사람이 있으면 저는 그 사람을 존경할 것입니다. 적어도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녀 또한 니체 사유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을 뿐이란다. 10년 이상 니체를 공부하고, 관련 저서를 그렇게 냈는데도 말이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던 책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예요. 짤막한 경구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그만큼 많이 읽혔어요. 문구가 시적이어서 무언가 내용이 있는 듯한 묘한 매력 때문이죠. 하지만 그 이면에 담겨 있는 의미는 쉽게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녀 또한 6년을 공부했어도 자신 있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니체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니체의 책 한 권을 자신 있게 읽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칸트를 예를 들어 설명해볼게요. 칸트를 읽으면 일단 겁부터 냅니다. 칸트를 읽기 위해서는 기본 개념을 알고 있어야 하거든요. 고도의 해석 능력, 배경 지식 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개념 자체를 파악하는 데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거죠. 그러니 칸트를 한 번 읽는 동안 질리게 됩니다. 하지만 마침내 칸트를 손에 넣게 됩니다. 반면에 니체는 다릅니다. 너무 친숙하게 읽힙니다. 특정 개념에 대한 사전 지식은 필요 없습니다. 시인의 시처럼 읽히고, 선지자의 예언처럼 들립니다. 심리적인 부담감이 전혀 없는 거죠. 니체는 마치 고대 로마의 도시 같아요. 골목을 다니면 그 자체는 즉각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그 전체를 다 잡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쉽다고 느꼈던 로마의 도시가 알면 알수록 미궁에 빠져버리는 것처럼 니체 또한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니체가 많이 읽히는 이유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삶에 대한 풍부한 이해 때문이다. 인생 만사 모든 게 들어 있어 그야말로 ‘종합 철학’인 것이다. 하여 니체는 전문 철학자가 아니라고 무던히도 오해를 받아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니체 또한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1백년은 지나야 할 것이고, 자기를 강의하려면 또 한 번의 1백 년이 필요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게 1백 년이 흐른 지금도 역시 ‘이해 불가’에 가깝다. 현재 서울대 철학연구소에 있으면서 철학을 가르치는 백승영. 최근에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강의한다. 2년여를 강독했는데, 학생들의 절망이 메아리치더란다. 자신은 너무나 쉽게 이 책을 읽었지만, 강의를 듣는 첫날부터 그들의 한탄을 들어야만 했다. 니체 갖고 어찌나 고민을 했던지 원형탈모증이 생긴 학생도 있단다. 한 달이 지나서야 약간 이해한다는 반응이다. “니체 철학은 전문적으로 트레이닝을 받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철학 교육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요.”

우리가 니체에 다가서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그녀는 할 말이 많다. “초인 사상이라는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실 이 말은 일본 사람이 번역한 말입니다. 대신 ‘위버멘시Ubermensch’라고 써야 합니다. 독일어 그대로 쓰는 거죠.” 위버멘시라는 단어는 물론 그녀 혼자 정한 것은 아니다. 그녀가 활동하는 니체 전집 편집위원회에서 동의한 부분일 뿐이다. 사실 영미권에서도 대체어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는 전 세계적인 문제이다. 이 단어 하나에서조차 동의를 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한때 미국에서는 ‘오버 맨’라고 쓰기고 하고, ‘슈퍼맨’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으니까요.” 니체 이해를 가로막는 장막은 이것뿐이 아니다. ‘권력에의 의지’라고 번역되어 있는 것은 ‘힘에의 의지’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오역들이 니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로막는 요소인 것이다. 그러니 그간 우리는 얼마나 허상 속을 헤매고 있었던가. 니체를 안다고 했지만 우리는 ‘너무나 니체적인’ 것에만 한눈을 판 게 아닌가. 물론 우리가 니체 연구자는 아니다. 니체를 읽어야할 당위도 없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사상을 정립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니체의 정수와 대중 사이에 그렇게 백승영은 서 있다.

즐거운 철학
서강대 철학과를 나온 그녀.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는 그녀의 눈빛이 이내 추억을 더듬는 듯 촉촉해진다. 자신이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은 좋은 은사 덕분이라고. 일생의 행운이라고까지 말하는 백승영은 살면서 그런 감사의 제목만 늘어간다고 수줍은 미소를 만들어낸다. “대학에서는 분석 철학을 공부했어요. 서강대 철학과는 러셀, 비트겐슈타인 등 다양한 철학을 골고루 습득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포괄적으로 섭취한 덕분에 다양한 철학적 교양을 얻게 된 셈이죠.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철학 백과사전이 돼서 졸업하거든요. 독일 유학을 결심한 이유는 대학원 과정에서 니체가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끝나면 허무할 것 같았죠. 이럴 때일수록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얼마나 간단하게 생각했을까. 그녀가 유학을 결심하고 어머니와 나눈 대화. “엄마, 니체만 알고 올 거야.” “그럼 금방 오겠네?”

1991년, 그렇게 덜컥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딸의 여비 마련을 위해서 어머니는 계를 부었다. 그녀는 독일에서 장학금으로 학비를 마련했다. 그리고 6년의 세월 동안 니체를 연구했다. 독일에서의 생활 또한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독일이나 유럽을 유학처로 정했다는 것은 ‘공부’만 하겠다는 거다. “당시 유학생이 많았던 한동안은 손님이 잠깐 머무는 ‘게스트 짐머’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거기서 4개월을 보낸 후 학교 앞 작은 아파트를 얻어 박사 논문에 집중했다. 이나마도 굉장한 사치였지만, 연구에만 집중할 공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녀는 니체 그리고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니체는 장기전을 통해 ‘친구’로 만들어야 하지만, 외로움은 당장 이겨내야 할 ‘적’이다.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유학 생활의 성패가 달렸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곳에는 외로움 때문에 중도 포기하는 유학생이 많다. 심리적인 안정을 찾지 못하면 실패하는 게 유학 생활이라는 것이다.
과년한 딸을 지구의 반대편으로 보냈으니 그 어머니의 속은 얼마나  탔을까. “한 번은 라면 박스가 배달됐는데, 상상이 되시죠? 김치 국물이 박스 안을 온통 빨갛게 물들이고, 그리고 그 쿰쿰한 냄새 때문에 받았던 눈총.” 지금은 웃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박스를 껴안고 미어지는 가슴을 꾹꾹 눌러 참아냈던 그때에는 모든 게 고통이었다. 딸이 걱정되는 어머니의 말은 언제나 “언제 돌아오니? 니체만 만나면 온다더니….”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니체인지라 그녀 또한 묵묵부답일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보다 니체 사상을 꿰뚫고 싶은 그녀였기 때문이다.

유학생 백승영은 독일인 동료들에게 친숙한 외국인이었다. 우리가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에게 호감을 갖듯, 그녀 또한 유창한 독일어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니체 독일어는 독일에서 최고로 칩니다. 동양에서 온 유학생이 니체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쉽게 만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거든요.” 1백 년을 넘기고도 여전히 통용되는 독일어. 우리의 1백 년 전을 생각해보면 당장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네 현실과는 너무나 다른 그네들의 환경이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너무나 다이내믹해서 언어가 수시로 바뀌고, 적응하기 바쁜 게 우리나라 아닌가. “니체 스스로도 자기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어요.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도 자신보다 한 수 아래라고 할 정도였어요. 하인리히 하이네가 자기와 견줄 만하다고 했으니 말 다했죠.”

울리히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의 니체 여정에서 독일 교수 울리히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친절한 교수라기 보다는 다소 무뚝뚝한 교수였다. 괴팍하다 할 정도다. 학생을 지도할 때도 이렇게 저렇게 읽으라는 가이드밖에 없다. 그러다 툭 한마디 던진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이유는 신을 부정하고 싶어서야.” 그게 전부다. 그 다음은 그 말을 들은 사람이 해결해야 할 몫이다. 모든 과정이 이런 식이었다. “니체가 토마스 아퀴나스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거야.” 그 말을 들으면 그게 바로 과제가 되는 식이다. 학생들은 이후 공부하고 찾아봐야 하는 것이다.

니체를 공부하겠다고 한국에서 온 그녀를 절망케 한 최초의 인물이 바로 울리히 교수였다. 독일 사람에게도 어려운 철학자를 외국인이 어떻게 정복하겠는가, 그런 걱정이었다. 세 번의 퇴짜를 맞고서도 뜻을 굽히지 않자 그는 조건부로 승낙했다. “다른 책 보지 말고 니체의 책 전부를 달달 외우고 나서 다시 와라.” 독일어판으로 39권 분량인 니체 전집을 2년 6개월 동안 여섯 번을 읽어냈다. “죽을 것처럼 답답했어요. 참고서를 보면 쉽겠는데, 그 원서를 완벽하게 읽기가 쉽지 않아 울기도 수없이 했어요. 그 괴팍한 교수 때문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발동했어요.” 얼마나 읽어댔는지 어느 페이지 몇째 줄에 있는 ‘오자’까지 기억했다고 한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니체가 보이기 시작하더란다. 학자로서의 삶의 일대 전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울리히 교수님은 그야말로 단순한 삶을 사는 분이십니다. 정확히 8시10분에 학교에 나오고, 5시 40분에 퇴근하죠. 그것을 한 번도 어긴 적도 없죠. 그리고 주말에는 안 나오세요. 헤겔을 시작으로 니체, 하이데거, 토마스 아퀴나스를 공부한 울리히 교수는 지금은 가톨릭 철학에 빠져 계시죠. 방학이면 수도원에서 명상을 하고, 그다지 특별한 점이 없는 게 특별하죠. 하지만 적어도 제게는 특별할 수밖에 없고요.” 경상도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틀림없다. 친구도 없고 좋아하는 사람도 없다. 한번은 학생을 보러 온 한국 교수를 ‘자신은 만날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만나주지도 않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나마 속정은 있는지 가끔씩 그녀의 연구실을 방문해 살펴보는 정도다. 하나 그의 괴팍함은 학생들을 여럿 울렸단다. 그이의 그런 성격 때문에 자살도 생각했다는 학생이 있을 정도니 그 엄격함이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하겠다.

독일에서 교수는 학자와 동의어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만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교수는 많지만 학자는 없는 것과는 대조된다. “울리히 교수는 말하자면, 최고 중에 최고 교수입니다. 그분은 글을 많이 안 쓰는데, 젊었을 때는 책을 많이 냈죠. 그런데 그런 걸 젊은 날의 치기라고 하시죠. 제가 한국으로 돌아올 당시만 해도 글을 많이 쓰셨는데 책으로는 내지 않더라고요. 그야말로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시는 분이죠.”

독일에서의 6년. 그녀는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울리히 교수는 “한국 가서 교수 하려고 그러니?”라며 만류했다고 한다. 사실 독일에서는 박사 과정을 밟았다고 교수가 되지는 않는다. ‘하빌리타치온’이라는 교수 자격 논문을 써야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그러려면 또 5~6년을 공부해야 한다. 잠시 그럴까도 했지만, 어머니가 눈에 밟혔다. “울리히 교수님, 이제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겠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렵니다.”


그녀가 학생을 가르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읽으라는 것입니다.”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이끌어줄 것 같았던 그녀의 일갈이다. 니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면 주부들이 좀 더 쉽게 니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미안한 말이지만 읽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머리를 싸매면서, 고민을 하면서 이해될 때까지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니체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조금은 야박한 듯한 그녀의 권유는 은사의 교육법과 닮아 있다.

이 가족을 보라 이제 결혼 4년차. 갓 마흔이 된 그녀에게는 늦은 결혼이었지만, 그만큼 남편이 소중하다. 그녀의 말대로 천사 같은 남편을 만난 것을 또 하나의 행운으로 여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구위원 한광석 박사가 그이다. “학자의 길을 가는 데 좋은 배우자인 셈이죠. 서로 배울 점이 많아요. 경제 쪽으로는 제가 문외한이니까 그 분야에 관해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철학은 현실을 충실히 읽어내야 하는 학문이므로 그의 조언이 유용할 때가 많죠.” 이들 부부는 밤이면 서울대를 산책한다. 집이 관악산 자락에 있어 매일 운동 삼아 데이트 삼아 산책을 하는 것이다. 그 시간은 이들 부부의 대화로 채워진다. 별다른 취미 생활이 없는 이들에게는 그 시간만큼은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다. 이들의 대화는 각종 뉴스에서부터 소소한 일상까지 아우른다. 천상 학자인지라 간혹 난상토론이 되기도 한다.

일생 동안 많은 은사를 만나 행운에 버금가는 은혜를 누렸지만 가장 존경하는 이는 어머니다. 존경하는 사람을 묻는 질문에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다. 혼자 몸으로 자식들을 키워온 우리 시대 어머니 모습 그대로이다. “저희 8남매 전부를 대학에  보낸 것 자체로도 존경할 수밖에 없죠. 어머니는 ‘항상 배워야 한다’ ‘죽더라도 학교에서 죽어야 한다’라며 배움을 강조하셨어요.” 8남매를 키운 그녀의 어머니는 가끔 가족 모임을 할 때면 “많지도 않은 새끼, 하나라도 빠지면 안된다”고 하신단다. 조카, 사위 등이 모두 모이면 스무 명이 넘는데도 말이다.

그녀의 인생에는 많은 조력자들이 등장한다. 니체라는 한 철학자를 파헤치는 지리한 여정에서 그에게 힘이 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버텨왔는지도 모른다. 물론 철학자의 삶을 선택한 그녀의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니체 연구의 결실 하나를 세상에 내놓지도 못했을 것이다.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이 그것이다. 7년 동안 집필한 이 책은 장장 717쪽에 이른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새로운 고통에 맞닥뜨려야 했다. 그 고통의 시작은 ‘가장 나쁜 독자는 약탈하는 군인들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만 취하고, 나머지는 더럽히고 엉클어뜨리며, 전체를 모독한다’라는 니체의 경고 때문이었다. 이런 가장 나쁜 독자, 즉 해석자의 교조적 권능을 앞세우는 독자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 니체라는 철학자를 개인적 욕심을 최대한 배제하고 소개하는 해석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였다.” 그녀의 책 서문에 씌어 있는 이 고백은 니체를 쓰는 일의 고단함을 느끼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니체 연구에서도 ‘나쁜 독자’가 되지 않으리라는 철학자로서의 결심을 느끼게 한다. 이로써 이 땅에 한명의 여성 철학자가 두각을 드러냈으며, 우리는 니체에 한발 다가설 수 있게 만드는 안내자를 한 명 갖게 된다. ■


-- 그냥 멋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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