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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 2016년 11월 4일 페이스북

 

닭은 닭이고, 닭이 닭치게 하기 위해서라도, 닭의 목아지를 비틀어야 새벽이 온다 해도, 날이 날이니만큼 한 마디 남겨야겠다.

오늘은 들뢰즈 사후 21년이 되는 날이다. 21년 전 오늘, 그는 고통스런 연명치료 끝에 이를 거부하며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했다. 사람마다 견해는 다를 수 있지만, 들뢰즈는 정치철학의 역사에서도 최고봉에 있는 철학자이다. 나름 들뢰즈를 간명하게 소개한다고 쓴 책이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이다. 그의 존재론, 정치철학, 미학 등은 동서 사상사에서 획을 긋는 것들이다. 나 개인으로는 니체가 그와 나란히 어깨를 견줄 만하다고 보며, 다른 그 누구건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내가 25년 넘게 이 두 철학자를 판 건 그런 판단 때문이었고, 그렇기에 나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건 부질없다. 철학은 장난이 아니다. 철학을 지적 유희나 장식품으로 여기는 자들이 많다는 건 익히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겐 아니다. 출신이 해양심층흙수저인 나로서는, 그 모든 우회로에도 불구하고, 내가 걸어 온 길이 필연이라고 느낀다. 이에 한 마디 더 보태고 싶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지난 대선이 국가기관의 개입을 포함한 부정선거였다는 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두 가지는 변치 않는다. 정치적 결과들은 반드시 정당성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의 논리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51.6%는 아닐지라도 과반 언저리의 대한민국 주권자가 박근혜에 표를 던졌다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나는 후자의 사실을 우려한다. 지금 분위기야 세상이 금세 뒤집힐 것처럼 보이고 혁명이라도 곧 일어날 것 같지만, 우리는 혁명을 길게 가져간 경험이 없다. 짧은 환희와 격렬한 분열과 길고 심한 반동이 있었을 뿐. 지금 사람들이 화가 나 있고 스트레스를 받았고 살기 팍팍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쏟아지고 있을 뿐, 우리는 새로운 사회를 감당하고 건설하는 법을 익힌 적이 없다. 역사 이래 가장 진보적이고 민주적었던 노무현 정권에서도 반동은 계속됐으며 흔들기는 유례가 없었다. (자, 자, 진정들 하시고.) 내 책 3장('좌파는 왜 들뢰즈를 꺼리는가?')에서 그 원인을 분석하려 했는데, 물론 많은 이견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관념론과 이상주의와 근본주의가 문제의 핵심이다. 늙으면 죽는 게 삶의 법칙이고, 시간이 가면 인구 분포에서 새 세대가 수적으로 더 많아지는 때가 오겠지만, 그리하여 한국에서 '레드콤플렉스'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는 때가 오겠지만, 그 때에도 여전히 문제가 되는 건 철학일 것이다. 뇌 구조라고 해도 좋겠고, 생각 방식이라 해도 좋겠다. 앞으로는 철학이 정치를 움직이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철학은 세상을 맑고 또렷하게 볼 수 있게 해 주는 개념의 렌즈를 만드는 작업이며, 그럼으로써 자기를 바꾸는 실천인 윤리와 남을 바꾸는 실천인 정치의 원천이다. 정치의 적은 바로 관념론(유물론 또는 과학과 대립하는), 이상주의(이건 초월성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근본주의(이상주의의 변형이자 혈기에 호소한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길고 오랜 싸움이 될 것이다. 지금 현실을 진단하는 데도 이 관점은 유효하다. 역풍에 대한 우려라고? 그런데 도대체 '역풍'의 정체가 뭐란 말인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있나? 초원복집 사건 기억하는 사람이 이제는 그닥 많지 않을 거다. 정동영의 노인 폄하 발언이나, 김용민의 막말을 기억하는 사람은 좀 될 거다. 이 때 일어났다는 역풍의 정체는 무엇이었나. 그냥 사람이 변하기 싫어한다는 진실의 입증일 뿐이다. 단지 구실이 필요했을 뿐. 그건 욕망과 무의식의 문제이다. 아주 비현실적인 가정이지만, 내일 당장 박근혜가 사퇴하거나, 아니면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어 1개월 후에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한다 할지라도, 6개월 또는 7개월 뒤에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개명하겠지만)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한국에서 제도정치는 토양과 같은 거다(모든 나라에서 그렇겠지만). 생각의 자유,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식민지 상황이 그렇고 독재정권 치하가 그렇다. 우리는 좋은 토양을 가져 본 적이 거의 없다. 게다가 특유의 성급함이 분명 있다. 다이나믹 코리아, 맞다. 좋은 토양의 조건은 가져 본 적이 몇 번 있지만, 그 기회를 선용한 경험은 없다. 민주주의 경험이 길고, 왕의 목을 날린 경험을 가진 나라들이 아나키즘을 말하는 것과 한국인이 그걸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한국인은 아직 아나키즘(anarchism)을 말할 자격이 없다. 아르케(arche)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정치철학적으로 말해 아르케란 '자유의 토양의 건설과 양생(養生)'을 뜻한다. 정치적 야만에서 아나키즘으로 바로 가는 길은 없다. 새누리당을 괴멸시키고 국민의당 또는 민주당 일부가 보수 세력을 대표하지 않는 한, 새누리당은 영원히 회귀한다. 니체는 이런 영원한 회귀를 '최고의 역겨움'으로 느끼며 견딜 수 없어 했다. 니체의 솔루션은 괴멸(Vernichten, Zerstörung, Destruktion)이다. 들뢰즈도 똑같이 느끼고 생각했다. 68혁명의 영광과 퇴락을 겪으면서 말이다. 과연 우리에게 그럴 힘이 있을까? 그거야 해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꼭 해내야 하지 않을까? 친일-독재-사대 세력을 괴멸하고 분쇄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무의식적 토양이 되었던, 변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생각마저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진짜 변화는 그렇게 할 때만 오지 않을까? 혁명의 거리에서, 나는 철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여기에 책의 한 구절을 옮겨 본다.
"실패란 처음에 의도한 목표와 내가 노력해 생겨난 결과가 어긋날 때,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때를 가리킵니다. 그 어긋남 때문에 사람들은 좌절하고 후회합니다. 후회는 결과에 비추어서 노력을 평가하려 할 때 생깁니다. 그때 그랬더라면,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거지요. 하지만 결과란 나의 노력과 우주의 조건이 어우러져서 생겨나는 법입니다. 내 노력이 바라던 결과를 낳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목표를 향한 노력이 원하는 결과를 낳지 않는 것이 존재론적 조건 아래에서는 오히려 정상입니다. 차라리 실패가 정상 상태라고 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노력하는 순간에 집중해야 합니다. 노력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결과가 나쁠지라도 최대한 노력하는 겁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때, 그 결과와 상관없이, 후회가 남지 않습니다. 후회란 노력에 대한 후회인데, 노력의 순간에 더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노력과 결과를 분리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야 합니다. 노력은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무조건 수용하기. 그러고 나서 최선을 다한 또 다른 실험을 진행하기. 이런 것의 연속이어야, 이것이 삶이어야 하는 게 ‘운명애’의 진짜 의미입니다. 숙명론과는 다릅니다. 삶의 경로와 결과가 모두 미리 정해져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할 바를 다하되 그 결과를 겸허하게 긍정하라. 그렇게 살아갈 때, 그 삶의 끝에서,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했노라면서, “이것이 내 운명이고, 나는 내 운명을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197~198쪽)

몸이 많이 아픈 와중에 두서없이 몇 자 적어 보았다. 적에게 이 소식이 전해지기를. 그러나 먼저 친구에게 전해지기를.

My book on Deleuze titled "Reading Deleuze in the Revolutionary Street" (2016). An Homage a Deleuze. RIP, or Revive actually.

알라딘 (Online Bookstore)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5681552

기사로 소개된 내용들 몇 개를 링크합니다. (Book Reviews)
6월 23일자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0200000000AKR2016062317190000…
6월 23일 문화일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
6월 24일자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49487.html
6월 25일자 한국일보
http://www.hankookilbo.com/…/f17879eecdcc48d49750aa923a4a5f…
7월 6일자 교수신문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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