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철학과 문화론

예술과 문화 문화와 정치 - Musil을 빌미로

서동철(펌) 2004.07.09 17:51 조회 수 : 8647 추천:270


I.

Robert Musil(1880 - 1942)이 1935년 7월 파리에서 열린 >>문화의 보호를 위한 국제 작가 회의<<에 초대되어 연설을 했다. 주제는 문화와 정치 사이의 경계. 연설 후 그 자리에 참석했던 유럽의 지식인들을 비롯 당시의 지식인 계에서 이에 대한 성토의 소리가 꽤나 높았다 한다. 정치적이어야 할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무질의 비정치적인 태도가 연설 내용의 호소력을 최소화 시켰으며 동시에 그 연설 내용문 또한 조각 조각 거친 도마 위에 올려져야 했다.

무질은 후에 자신의 연설 내용에 대해 언급하며 약간의 표현에 있어서의 하자는 있을지언정 그 내용에 대해서는 원래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으나, 단지 그 연설을 그 장소에서 그리고 그 사람들 앞에서 했다는 사실에 대해선 후회를 했다. 사전에 참석자가 어떤 사람들인가를 알았다면 아마도 참석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반성하면서.

무질의 연설 내용중 볼셰비즘과 파시즘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판하는 부분은 참석자 대부분의 좌파적 성향에 칼질을 해댄 셈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프랑스인 앙드레 말로 또한 정치와 문화의 떨어질 수 없음을 주장하는 공산주의자였던 시절이다. 무질 연설 중 이에 해당하는 부분을 짧게 소개한다:

"매우 권위적인 국가 형태인 볼셰비즘이나 파시즘에 대해 꺼리는 이유의 한 몫은 단순히 의회민주주의적 형태에 대한 우리들의 관습적인 사고에 연유한다. ......

문화는 그 어떤 정치적 형태에도 구속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각개의 사람들로 부터 특별한 요구나 방해를 받을 수 있다."

이 주장의 근거에 상관없이 볼셰비즘을 파시즘과 같은 높이에 두고 보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적지 않은 그 당시의 유럽 (좌파) 작가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II.

그럼 무질은 무슨 근거로 이런 주장을 했을까?

우선 그가 던진 질문을 받아 던진다:

"시인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러시아 시인, 독일 시인 내지는 영국 시인에서 러시아인, 독일 내지는 영국인을 배제함을 통해서 얻는가, 아니면 이 개념은 상위 개념으로서 다른 방법으로 형성이 되는 것이니 국가적인 분류는 단순히 특수화한 형태일 따름인가?"

물론 무질은 주저함 없이 두 번째에 손을 든다. 거개의 사람들이 그러리라는 예측 또한 잊지 않는다:

"그런 다음 의심의 여지없이 시인이라는 단어 대신 문화라는 단어를 집어 넣고 국가적이라는 표시에 정치적: 프롤레타리아적, 시민적, 파쇼적 등등을 대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문화라는 개념은 상이한 정치적 개념들의 공통 분모적 성격이라기 보다는 이러한 정치와 연계된 개념과는 다른, 어쩌면 그보다는 상위 개념으로서의 성격을 띄며, 오히려 이러한 정치적 세분화는 문화가 단순히 특수화된 형태일 따름이다라는 주장이다.


무질은 이를 과연 어찌 뒷받침하는고?

1. 문화의 초공간적이고 초시간적인 성격

문화는 그 어떤 정치적 형태에 연계되어 규정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정치적 형태가 문화의 한 특수한 세분화의 결과라 한다. 무질의 이러한 주장의 뒷면에는 어쩌면 그 당시 팽배했던 정치의 집단주의적 경향에 대한 경고의 소리로 들리는 듯도 하다. 즉 문화를 포함한 모든 것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무차별하게 수단화시키는 풍조 말이다. 이에 준해 좌고 우고 가름없이 날카로운 자신의 칼을 들이댄다.

나아가 무질은 니체를 인용하며 정치와 문화의 깨름직한 적대적 상관 관계를 암시하기도 한다. 정치적인 융성 시기는 문화적인 융성 시기와 절대 일치할 수 없다는 니체의 주장을 소개하며 정치와 문화의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돋보이고자 하니 말이다. 이는 허나 어쩌면 그 당시 유럽 공간에 팽배했던 정치에 대한 무질의 뿌리 깊은 불신에서 연유하는 태도인지도 모를 일이다. 무질이 인용한 니체를 다시 인용한다:

"도덕적 이상의 승리는 그 어떤 승리와 마찬가지로 폭력, 거짓, 비방, 불평등과 같은 비도덕적인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미국 부쉬 정부가 문득 떠오른다. 그것도 아주 아주 뚜렷하게.

다시 말하자면, 무질은 정치적 집단주의가 공동체의 모든 생활 영역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추세에 도전장을 보낸다. 좌고 우고 상관없이 문화까지 이에 휩쓸려 한갖된 수단으로 전락함에 몸살을 앓는다. 이에 준해 그는 말한다:

"정치는 문화 속에서 자신의 목적을 끄집어내지 않고 오히려 바로 이 문화를 생산하고 분배하고자 한다."

바로 이러한 정치에 대항해서, 다른 말로 하자면, 무질은 좌파적 집단주의로서 볼셰비즘에, 그리고 우파적 집단주의로서 파시즘에 문화를 창조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을 대항시키고자 하는 듯하다. 모든 것을 - 문화를 포함하여 - 그 집단의 목적 달성을 위한 무차별 수단화를 저지름에 경계의 소리를 높이며 오히려 이러한 집단들이 초공간적이고 초시간적인 문화에 굴복하기를 요구하는 소리인 것이다.

2. 문화 창조자의 자유 개인적 성향

문화 창조의 주체를 동일 맥락에 다시금 비추어본다. 다시 말해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예술가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전체의 권리와 개인의 의무라는 상관 관계 속에서 예술가들에게 주어지는 의무는 과연 무엇인가 말이다. 이는 허나 곧바로 예술가의 자기 정의의 문제를 부른다: 예술가란 어떠한 사람을 말함인가?

예술가란 무질에게 있어 "문화의 거의 유일한 도구로서의 개인"이다. 문화의 창조를 담당하는 장본인인 셈이다. 이에 따라 이 개인에 필요한 성향이란 곧 문화를 창조하는 조건이기도 한 셈이다. 그 성향의 예로서 무질은 열거한다: 지식, 자유(정치적이 아닌, 오히려 심리적인), 용기, 정신의 요동, 탐구욕, 열려 있음, 책임감. 이러한 성향없이는 타고난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문화는 창조될 수 없다 단언한다.

정치가 이러한 개인의 자유스런 움직임을 구속할 경우 결국 문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어찌 보면 단순한 논리다. 허나 이는 예술가에게 어떠한 의무가 주어지는가 하는 점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무질은 예술가에게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고 아직까지 발전되지 않은 가능성, 새로운 문화를 향유할 가능성에 대한 감각내지는 의미를 일깨울 의무가 주어져 있다 주장한다. 달리 말하면 지금 현재의 사실성을 뛰어 넘어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향한 길을 닦는 작업이다. 바로 여기에 자신을 현재의 사실성 범주 - 예컨대 정치 -에 제한하거나 받지 않는 자유에 대한 중요성이 엿보인다. 심지어 문화를 위해서는 가히 필연적이다;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을 남들과는 달리 보는 자유로운 정신을 통해서만이 그 현실을 분석하고 새로 등장할 현실의 가능성을 위해 다시금 종합하는 일련의 작업 과정이 이루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III.

정치가 문화를 창조할 수는 없으나 역으로 문화로부터 이득은 취할 수는 있다는 무질의 주장은 정치가 문화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전제를 자칫 너무 소홀히 다루는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를 일이다. 단적으로 말해 정치는 문화에 간섭할 생각 말고 그냥 그대로 놔두라는 소리다. 손 떼라는 충고다.

단지 이러한 정치와 문화의 상당히 적대적인 관계에의 고집은 문화가 정치에 미치는 이론적 내지는 실천적인 모습에 대한 뜻 깊은 토론의 진행을 허락하지 않으니 안타까운 면이 있다. 다시 말해 문화 그 자체는 무질의 주장대로 정치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문화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의 정치성까지 아예 무시할 수는 없으니, 이러한 영향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요구함은 결코 지난친 일이 아니다.

예컨대 민주적인 정치 제도가 민주적인 문화를 직접적으로 창조하는 대신 제도나 자금등의 간접 지원을 통해 그 창출에 일조를 할 수 있는 바, 이러한 정치적인 뒷받침을 통해 태어난 민주적 문화는 바로 그 민주적 정치 제도와는 전혀 별개의 성질이어야 한다 주장한다면, 즉 정치 제도가 민주적이든 비민주적이든 상관 없다 한다면, 비록 그 문화의 창출까지야 그런대로 좋다 인정한다 할 수 있지만, 그 이후 한 공동체 내에서의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 등등의 각 부문별 상호 영향에 대한 흐름의 맥을 끊어 놓는 안타까운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

결국 이 틈, 정치가 문화를 수단화시켜서는 되지 않음에는 찬성하나 그렇다고 정치와 문화 간의 상호 영향에 대한 흐름의 맥을 끊어서도 되지 않는다 할 때 생기는 이 틈을 우리는 어찌 메꿀 수 있겠는가에 생각을 모을 필요가 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고문살인의 전말 (김동렬 펌) [5] 철학자 2009.05.24 254356
공지 애도 노무현 [3] 철학자 2009.05.23 286991
공지 He will and should and must be back [5] 철학자 2009.04.18 260126
공지 그 때는 우리가 참 강했다 철학자 2008.02.22 276249
33 무개념 융합과 인문학 오남용 (펌, 논평) 철학자 2017.09.27 21
32 사진이란 철학자 2017.09.27 16
31 필멸자 생성 devenir mortel [1] 철학자 2017.07.15 495
30 신과 무신론 철학자 2017.06.21 59
29 예술의 탄생과 종말 철학자 2017.05.22 40
28 정신 차리고 혁명을 (D.H. 로런스) (시 번역) (이전) 철학자 2017.04.06 95
27 네 인생의 이야기 by 테드 창 (발췌) 철학자 2017.03.01 194
26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by 테드 창 (발췌) 철학자 2017.03.01 112
25 김훈의 수사벽 (이전) [1] 철학자 2017.02.07 3890
24 글 읽기의 중요성 (최시한) 철학자 2009.05.10 10571
23 사이버 정치가 곧 정치이다 (1997) 김재인 2007.09.16 7754
22 고은과 노벨상 [4] 김재인 2005.10.14 9388
21 오늘날 시를 쓰는 사람은 (이전) [12] 김재인 2005.10.04 12839
20 "친절한 금자씨" 마음에 와 닿았던 영화평. 신승원(펌) 2005.09.09 10262
19 이슬람식 복수 메시지 전하는 <친절한 금자씨>(펌) [4] 김재인 2005.08.12 5832
» 문화와 정치 - Musil을 빌미로 [4] 서동철(펌) 2004.07.09 8647
17 문화론 찬반 논쟁 - MTV를 중심으로 [1] 서동철(펌) 2004.06.25 5179
16 예 술 과 삶 서동철(펌) 2004.04.08 10589
15 문화론 유감 서동철(펌) 2004.02.25 9654
14 경계 허물기와 경계의 분별 (2001) 김재인 2002.06.26 13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