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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비판 : 데리다의 '불량배들' 국역본의 문제점
2004년 02월 26일   진태원 서울대 철학  

데리다의 '불량배들' 국역본에 관해 또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유감스럽다. 그만큼 비판을 했는데 역자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고, 남의 잘못을 다시 들춰내어 비판을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도 그렇다. 신문사에서 ‘팩트’를 요구하므로, 내가 인터넷 서점의 서평에서 지적한 문장들 이외의 문장들을 보자.

“영불 해협 너머, 그리고 대서양 너머에 있는 몇몇 사람들은 스리지에서의 decade 기간을 위해 등록하는 것조차 주저하게 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리지에서 단번에 10년 동안 체류해 이야기하면서 무엇보다도 어떤 불량배의 말을 들어야만 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의 그리스어와 라틴어, 즉 decade를 잊어버린 채 안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32쪽)
J'imagine que certains, outre-Manche et outre-Atlantique, hesitent encore a s'inscrire pour une decade a Cerisy parce qu'ils craignent de devoir y sejourner, y parler et surtout y ecouter quelque voyou d'un seul trait pendant dix ans. C'est qu'ils en perdent leur grec et leur latin: decade, qu'ils se rassurent, ...(p. 20)      
수정 번역문:  “영불 해협 너머, 그리고 대서양 너머에 있는 몇몇 사람들은 스리지에서 한 번의 데카드 기간[10일]을 지내기 위해 등록하는 것조차 주저하리라고 상상해 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경우 10년 동안 계속 스리지에 머물면서 이야기해야 하고, 특히 어떤 불량배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그들이 [데카드라는 말의] 그리스 및 라틴어 어원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일어나는 두려움일 뿐입니다. 그들은 안심해도 좋을 것이, ...”

“제가 오래전부터 말씀드렸듯이 S.I.E.C.L.E라는 단어의 각 글자는 장차 어떤 특이한 모험―즉, 지식인들의 사회성, 교환, 협동, 장소들, 확장들―의 대문자 약호나 표시―우리는 이 점을 터득하고 있습니다―가 될 때 스리지가 지적인 삶의 한 세기를 위해 의미하게 될 바를 반세기의 현존을 넘고 관통해서 몇 주 후에 우리는 축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34쪽)
Depuis si lontemps, disais-je, puisque nous feterons dans quelques semaines, par-dela et a travers un demi-siecle d'existence, ce que Cerisy aura signifie pour un siecle de vie intellectuelle, chaque lettre du mot S.I.E.C.L.E. devenant desormais, nous l'apprenons, le sigle ou l'enseigne d'une extraordinaire aventure: Sociabilites Intellectuelles Echanges Cooperations Lieux Extensions.(p. 21)  
수정 번역문: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라고 말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몇 주 뒤면 스리지가 [1952년 이래] 반 세기 동안의 존재를 통해,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앞으로 지적인 삶의 한 세기에 대해 의미하게 될 바를 축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스리지의] 세기siecle라는 단어의 각각의 철자, 곧 S.I.EC.L.E.는 하나의 비범한 모험을 가리키는 대문자 약호 내지는 표시가 되리라는 점을 우리는 깨닫고 있습니다. 곧 [스리지의] 세기는 지적인 사교와 교류, 협동의 확대의 장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계약적이라고 생각하는 신학적 형태를 띤 순수 수사학적 비유, 그 필요성이 제게는 훨씬 더 중요하고 심각해 보이는 그 비유와 더불어 그 장을 마치기 전에 그것이 행정권과 입법권의 조직에 있어 어떤 지시적 표현으로 보이는 것을 제공합니다.
‘민중은 신이 우주를 지배하듯 미국 정치계를 지배한다. 그들은 모든 것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모든 것은 그들로부터 나오고 그들에게 흡수된다.’라고 결론짓습니다.”(53-54쪽)
Puis il donne ce qu'il tient pour une description demonstrative quant a l'organisation des pouvoirs executif et legislatif, avant de clore son chapitre avec le trope d'une figure theologique qu'il croit conventionnelle et de pure rhetorique mais dont la necessite me parait beaucoup plus grave et serieuse: "Le peuple, conclut-il regne sur le monde politique americain comme Dieu sur l'univers. Il est la cause et la fin de toutes choses; tout en sorte et tout s'y absorbe."
수정 번역문: “그 다음 그는, 그 자신은 관례적이고 순전히 수사학적일 뿐이라고 믿고 있는―하지만 이러한 비유를 사용해야 하는 필연성은 제가 보기에는 훨씬 더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입니다―신학적 형태를 띤 비유와 함께 그 장을 끝마치기에 앞서(“인민은 신이 우주를 지배하듯 미국의 정치계를 지배한다. 그들은 만물의 원인이자 목적이다. 모든 것은 그들로부터 나오고 그들에게 흡수된다”라고 그는 결론짓습니다) 그 자신이 행정권과 입법권의 조직에 관한 논증적 기술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제시합니다.”

“저는 긴 우회의 관점에서 목적과 아주 가까이에서 미국에서의 민주정치, 더욱 분명하게 말해서 민주정치와 미국이 제 주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아마 간과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아주 멀찌감치 떨어져서 알리기 위해 토크빌과 ?미국에서의 민주정치에 관해서?에 그다지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으면서 인용할 필요가 있었습니다.”(54쪽)
Il me fallait citer Tocqueville sans trop attendre, et De la democratie en Amerique, pour annoncer de tres loin que, au terme d'un long detour, tout pres de la fin, on s'apercevra peut-etre que la democratie en Amerique ou, plus precisement, la democratie et l'Amerique aura ete mon sujet.(pp. 34-35)
수정 번역문: 아마도 사람들은 오랜 우회적인 논의를 거친 다음 거의 결말 부분에 가서, 미국에서의 민주정치,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민주정치와 미국이 내 주제가 될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리라는 것을 아주 일찌감치 예고해 두기 위해, 저는 기다리지 않고 미리 토크빌과 ?미국에서의 민주정치에 관하여?를 인용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저는 아랍-이슬람적이라는 종종 악용되는 결합의 특징을 아랍적, 그리고 차례로 이슬람적이라고 말합니다.”(79쪽)
Je dis arabe et tour a tour islamique pour eviter le trait d'union souvent abusif de l'arabo-islamique.(p. 51)
수정 번역문: 아랍-이슬람적이라는 식으로 자주 악용되곤 하는 붙임표[하이픈, trait d'union]를 쓰지 않기 위해 저는 차례차례 아랍 그리고 이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대신 정체 속에서, 적어도 문화 속에서 유태교적 신앙(단 한 나라가 있지요. 이스라엘입니다)이나 기독교적 신앙(...)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모든 국가들, 그리고 또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의 종교문화로 말하자면, 식민지 이후의 혼성국가들 대부분은 오늘날 민주 국가로 자기 소개를 합니다.”(80-81쪽)
En revanche, toutes les Etats-nations profondement lies, sinon dans leur constitution, du moins dans leur culture, a une fois juive(il n'y en a qu'un, Israel), ou chretienne(...), mais aussi la plupart des Etats-nations  post-coloniaux composites quant a la culture religieuse, en Afrique(...), en Asie(...) se presentent aujourd'hui comme des democraties(p. 52).
수정 번역문: 반대로, 헌정 자체에서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문화에서 유대교적(여기에는 단 한 나라, 이스라엘만이 있습니다)이거나 기독교적인(...) 것과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든 민족국가만이 아니라, 또한 여러 종교가 혼합되어 있는 문화를 지닌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대부분의 탈식민주의 민족국가는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로 자신을 내세웁니다.  

“그것은 모든 국가에게 무력에 의존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유일한 예외조항입니다.”(210쪽)
C'est la seul exception a la recommendation faite a tous les Etats de ne pas recourir a la force.(p. 142)
수정 번역문: 이것은 모든 국가에게 무력에 의지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것에 반하는 유일한 예외 조항입니다.

이 문장들은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오역문들 중 일부를 임의로 골라낸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에만 국한한다 해도, 만약 이 문장들이 제대로 된 한글 문장이고 내용이 이해가 간다면, 나는 내가 경솔했음을 기꺼이 인정할 것이다. 이런 마당에 41쪽에서 ‘supplement’과 ‘iterabilite’를 ‘보충’과 ‘반복 가능성’으로 번역하고, 120쪽 이하에서 ‘singularite’를 ‘개별성’으로, ‘partage’는 ‘배분’으로 번역한 것 등을 문제삼는 건 오히려 사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역자가 자신에 대한 애정이 없음을 불평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중병에 걸려 신음하는 데리다가 국내에서 이처럼 모욕을 당하는 게 더 안타까웠고, 오역본을 읽으면서 애꿎은 자신의 머리만 한탄할 수많은 독자들의 딱한 처지에 더 애정을 가졌을 뿐이다. 역자나 출판사가 자신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면, 우선 원서의 가치에 걸맞는 전면 개역본을 재출간하기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누구보다 앞서, 누구보다 더 많이 역자와 출판사의 노력을 칭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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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04-02-2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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