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논문이란 무엇인가? (주로 인문사회계열에 해당)

오늘날 유통되는 ‘논문’ 혹은 ‘학술논문’은 엄격한 형식과 규범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 형식이 통용된 게 채 100년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왜 그 형식에 집착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학자 대부분이 한국어로 논문을 쓴다는 점을 고려하고, 어차피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읽을 수 없다는 한계까지 염두에 두면, 왜 외국어로 된 논문과의 차별성을 그토록 강조해야 하는지도 알기 어렵다. 나는 한국어 논문이라면 한국만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외국어로 쓴 저서나 논문을 충실하게 소개하는 데 그쳤다 해도 충분히 훌륭할 수 있다는 말이다.

더욱이 영어로 paper, 프랑스어로 essai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논문’ 혹은 저술이 100년 전만 해도 내적 논리와 사고에 의해 평가되었고, 그것들이 고전 목록에 수록되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오늘날 ‘논문 중심주의’라 부를 만한 업적 평가 방식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기껏 200자 원고지 150매를 넘기 어려운 ‘지면의 제약’을 감수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한계가 많은지 다 아는 마당에, 다시 말해 논의를 충실하게 진행해가다 보니 갑자기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는 걸 깨닫게 되면, 글을 쓰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알기 어렵다. 더욱이, 후속 논문을 자기 이름을 가리고 제출해야 하는 형편이니, 논문에서 긴 사고의 산물을 기대하기는 무척 어렵다.

전거를 밝히는 문제도 그렇다. 소양이 있으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논의를 적으면서 출처를 밝혀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존경의 마음이 발동했다면 이해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업계에 오래 종사했다고 자랑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런 집착이 창조적 결과로 이어진 사례를 보기 어렵다. 좋은 생각과 글은 보폭이 크고 생략이 많다. 우리가 고전 혹은 그 반열에 있다고 여기는 작품들은 다 그렇다. 요컨대, 요즘 발표되는 논문 중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건 손에 꼽을 정도다. 궁금한 주제가 있다면 당장 조사해 보라. 참고할 한국어 논문이 정말 적다. 하지만 다 동료평가를 통과해서 ‘등재지’에 수록된 글들이다.

더 문제는 이런 현실에 대한 논의도 논란도 별로 없다는 점이다. 에휴. 그만 쓰자.

(20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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