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의 《시네마》와 나

내가 들뢰즈의 《시네마》 연작을 본격 연구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2015년 초였다. 나는 2013년 2월에 늦깎이 박사를 받고 , 2014년까지 6편의 KCI급 논문을 출판했다. 2014년 12월에는 《안티 오이디푸스》 번역을 출판했고. 그러나 이 시도는 실현되지 못했다. 시골 생활에 서울까지 오가는 강의는 너무 많았다. 메르스 사태에 대한 작은 책(2015.08)과 들뢰즈 해설서(《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들뢰즈 철학 입문》, 2016.06)를 하나 썼고 논문도 한 편 출간했지만, 학계에 대한 실망감이 극에 달했다. 이어 알파고 사건(2016.03)이 터졌고,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들끓었고,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2017.09)를 쓴 후에는 내 활동의 대부분은 인공지능에 할애되었다. 다른 주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기 어려웠다. 2019년에는 내가 공부한 서양 철학사를 중심으로 《생각의 싸움》(2019.09)을 출간했만, 이어 2020년 초, 코로나가 터졌고, 이에 대응해 《뉴노멀의 철학》(2021.06)을 쓰고 이어 이 주제를 이어갔다. 곧이어 인공지능, 디지털 기술, 문명의 미래, 인문학 갱신이 연구 과제로 주어졌고, 각각에 대해 보고서를 써냈다. 결국 2023년 작년에는 《AI 빅뱅》(2023.05)을 쓰면서 다시 인공지능과 인문학 관련 활동을 했다.

나는 다시 《시네마》 연구를 하기로 했다. 주변 정황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니체와 들뢰즈를 읽으며 생각이 깊어지는 건 내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에서 가장 상단에 있다. 앞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시네마》 연작은 들뢰즈가 가장 친절하게 저술했으면서도 서양 철학사의 가장 깊은 문제를 다룬 야심작이다. 존재론-인간학-윤리학이 얽힌 놀라운 책이다. 스피노자-니체-베르그손-윅스퀼-베이컨으로 이어지는 전통과 영화라는 신기술을 엮은 야심찬 책이기도 하다.

이럴 때 가장 아쉬운 건 책을 함께 읽을 대학원생이 없다는 점이다. 두 권의 《시네마》를 읽으려면, 2년 정도의 시간 동안 적어도 4학기, 아니면 계절학기 포함해 8학기 정도를 읽어가야 한다. 실제로 들뢰즈는 1981년 11월 1일부터 1985년 6월 18일까지 4년 동안 이 주제로 강의했다.이 강의록도 책과 함께 복기해야 한다. 이럴진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기간제 비정규직 교수로서 이 정도 기간 동안 강의를 진행하는 건 불가능하다. 한국의 대학은 이 정도의 강의를 허용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린 지 오래고.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이 나라에서 철학 연구와 교육의 미래가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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