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의 《시네마》 연작은 영화/영화사 연구가 아니다

“이 연구는 영화의 역사가 아니다. 이 연구는 분류학(taxonomie), 즉 이미지들과 기호들을 분류하려는 시도다.”(《시네마1: 운동-이미지》, 1983, 원서 7쪽)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고 있지만, 들뢰즈의 《시네마》 연작은 사실 ‘영화’를 주제로 삼고 있지 않다. 영화는 소재일 뿐, 실제 다루려고 하는 건 서양 철학의 가장 큰 주제 중 하나인 주객(subject-object)의 문제, 마음의 본성, 이미지의 본질, 뇌, 이런 것들이다. 영화는 이런 문제를 드러내고 푸는 데 도움이 되는 핵심 도구일 뿐. 그래서 들뢰즈의 《시네마》 연작에서 영화적 의미(즉 영화의 주제)를 찾으려고 해도 소용없다.

들뢰즈는 왜 ‘이미지들과 기호들’을 분류하려 하는 걸까? 즉, 들뢰즈의 문제가 무엇이고 목표는 무엇일까? 이를 파악하지 못하면, 《시네마》 연작을 읽는 보람이 없다.

참고로, 《시네마1》은 놀랄 만큼 쉽게 쓴 책이다. 58세의 들뢰즈는 기존 책들과는 달리 최대한의 친절함을 곁들여 책을 썼다. 《시네마1》의 1장은, 이건 뭐 《프랜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1981)를 쓴 들뢰즈로서 필연적으로 가야 하는 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형상’, ‘윤곽’, ‘단일색조’가 각각 ‘대상(부분)’, ‘집합(닫힌 계)’, ‘(열린) 전체’에 그대로 대응하며, 운동과 시간, 그리고 힘의 교환이 핵심 주제이다. 2장까지 읽고 나면, 들뢰즈가 이처럼 쉽게 쓸 줄도 아는구나 하는 마음과 더불어, 나이가 들었나 보다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2 thoughts on “들뢰즈의 《시네마》 연작은 영화/영화사 연구가 아니다

  1. 들뢰즈가 《시네마1》의 3장 ‘몽타주’에서 네 유형(미국, 소비에트, 프랑스, 독일)을 분석하면서 강조하려는 것은 이들 간의 우열이나 발전을 규명하는 일이 아니라 “시간의 간접적 이미지”가 구성되는 방식들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렇다면 독자는 책의 처음부터 ‘시간-이미지’에 집중해야 한다. 《시네마1 두 권은 그에 대한 긴 탐구이기 때문이다.

  2. 《시네마1》의 4장은 베르그손을 현상학적 지각(인간주의)과 대립시키면서 ‘비인간주의 이미지론’의 대가로 세운다. 이제 ‘운동-이미지’는 ‘지각-이미지’, ‘변용-이미지’(또는 인간적 표현을 쓰면, 정서-이미지), ‘운동-이미지’로 세분되는데, 이는 우주 자체의 존재 방식 또는 ‘생성 방식’에 대한 분류로서 유의미하다. 베케트의 영화 ‘필름’을 통해 세 이미지를 재구성해 설명하는 장면은, 들뢰즈가 인간주의에서 얼마나 벗어나려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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