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려 하기보다 눈높이에 맞춰 말을 건네라 : 모모한테 듣기부터 배우자

선거란 무엇인가? 후보자와 정당의 입장에선 권력 쟁취를 위한 과정의 정점이다. 그렇지만 명심해야 하는 건, 표를 주는 건 유권자 마음에 달렸다는 점이다. 이걸 잊으면 선거에서 승리하긴 어렵다.

유권자 인생 30년을 훨씬 넘어서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어차피 떨어질 게 뻔한 후보에게 표를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걸 ‘신념’에 따른 투표, ‘소신투표’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동안 난 이걸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신념’과 ‘소신’에 따른 투표는 어쩌면 포장에 불과하고, 진짜 중요한 욕망은 ‘갑질’에 있다.

유권자는 인생 대부분을 ‘갑’의 처지가 아닌 ‘을’, ‘병’, ‘정’…의 처지에서 산다. 유일하게 ‘갑’의 위치에 서는 순간이 바로 선거 때다. 이건 대단히 중요하다.

니체가 잘 밝혔듯, ‘갑질의 욕망’은 누구한테나 있다. 중요한 건 ‘어떤’ 갑질이냐다. 니체는 ‘저열한 갑질’을 비판하는 동시에 ‘삶을 고양하는 갑질’은 긍정했다. 사실이지 ‘갑질’의 다른 말이 ‘주인의식’이다.

주인의식의 세속적 표현이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집단의 성원들을 이끌어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할 수 있게 하는 권력이다. 요컨대 리더십의 요체는 ‘집단’의 성패에 있다. 좋은 리더십은 성원들의 힘을 모은다. 반면 나쁜 리더십은 성원들을 뿔뿔이 흩어놓는다. 언론에 회자되는 ‘갑질’이란 바로 ‘나쁜 리더십’이다.

유권자가 ‘갑’이 되어 ‘갑질’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허용된 합법적 순간이 선거다. 따라서 선거 시기에 정치인은 ‘을’이 되어 ‘갑질’을 경험한다. 이번엔 당하는 쪽으로 말이다.

소신투표는 좋은 의미의 갑질과 동의어다. 주인으로서 나의 가치를 따르겠다는 실천이다.

후보자는 바로 저 ‘가치’에 어필해야 한다. 유권자의 인생에서 가장 값진 실천인 갑질의 순간에 ‘가치’를 매개로 낙점받아야 한다.

따라서 후보자는 유권자를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 계몽은 평소에 하는 거다. 선거 때는 눈높이에 맞춰가며 ‘말’을 건네야 한다. 좋은 번역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말을 배워야 하고, 또 그러려면 대화를 가감 없이 나눠야 한다. 조지프 나이가 명명한 ‘소프트파워’는 매력에 이끌려 저절로 설득되도록 하는 힘이다. 과연 그런 힘이 얼마나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이런 일은 후보자 혼자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그래서 선거운동을 함께 하는 동지가 필요한 거다. 가르치려는 오만함이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 주인공 모모는 잘 듣는 능력으로 모두에게 호감을 얻었다. 후보자와 선대위는 잘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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