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0일자 <이코노미스트>는 “성인이 읽는 법을 잊어가고 있나?“라는 기사에서 OECD의 조사 결과를 소개한다. 조사는 언어력(literacy), 수리력(numeracy), 응용문제 해결력(adaptive problem solving skills) 등 3가지 능력에 대해 이루어졌다. 그 중 언어력 및 수리력과 관련해서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간단히 말하면, 10살 아이 수준이라는 것이다.
기사는 이런 능력은 일자리 유지, 공적 생활 참여, 현실 세계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술과 관련된다면서, 기본 수준에서는 약 포장지의 경고를 이해하거나 방을 덮는 데 필요한 장판의 수를 아는 데 도움이 되고, 고급 수준에서는 인기 시사 잡지에서 우연히 발견할 수 있는 종류의 분석과 차트를 통해 얼마나 올바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지 탐구한다고 소개했다. 나아가 이 능력은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행복 및 건강과도 관련되며, 낮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남을 더 의심하고, 정치에서 소외감을 느끼기 쉽다고 기사는 마무리했다.
위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은 성인 언어력과 수리력이 OECD 평균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기사에도 언급되었지만, 다수 성인이 세상을 읽는 능력이 10살 아이 수준이며 공적 생활을 이어갈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다수 선진국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10년 전보다 후퇴). 세계의 미래가 걱정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일까? 기사에서도 추측만 언급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 교육과 미디어 환경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진득하게 책을 읽고 계산하는 대신 기계에 맡겨버리거나 중독성 디지털 콘텐츠 소비에 빠진 나머지 능동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저하된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미디어 환경을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하므로, 결국 교육 부문에서 개입이 절실하다. 이 점에서도 AIDT(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는 더 신중하게 점검되어야 한다.
나는 낮은 언어력과 수리력이 박사와 교수 같은 지식 엘리트에게서도 목격되는 점이 큰 문제라고 본다. 상식적으로 지식 엘리트는 언어력과 수리력이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 보통 사람보다 높은 것은 맞다. 하지만 고급 언어력과 고급 수리력으로 가면 문제가 심각하다. 한 마디로, 인문사회계열 엘리트는 고급 수리력이 떨어지며 이공계열 엘리트는 고급 언어력이 떨어진다. 여기서도 문과/이과 구별 문제, 혹은 스노가 1950년대에 말한 ‘두 문화’의 문제가 확인된다.
나는 일상적 소통과 사고에서는 고급 수리력보다 고급 언어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자연어 해독과 표현 능력 말이다. 고급 수리력은 주로 연구개발 영역에서 빛을 발하기에, 일상 생활에서는 덜 필요하다. 반면 고급 언어력은 인간 관계 그 자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고급 언어력은 가치가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고급 언어력은 주로 문학 작품과 철학 문헌에 의해 훈련된다. 문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을, 철학은 개념적 사고 능력을 각각 길러준다. 이 능력은 책에 있는 문장들의 표면적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을 훨씬 넘어선다. 즉, 멈춰서 한 문장을 오래 깊게 생각해야 겨우 길러진다. 그러나 이공계 엘리트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은 고급 언어력이 능력이라는 것조차 모른다. 또한 초중등이건 고등이건 교육에서도 이 능력을 기르는 일을 등한시한다. 더욱이 점점 더 등한시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공계 교수가 임용 후에 한 번도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고 자랑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논문만, 그것도 영어 논문만 읽으면 되기 때문이라나. 과연 그 교수가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정상적으로 파악할 능력이 있는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한국 사회의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도) 정치적 난맥상은 언어력 저하와 깊은 인과/상관관계에 있다고 확신한다(여기에 미디어 환경도 중요한 원인인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결론은? 조금 갑갑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읽기’가 달성하기 힘든 고급 능력이라는 점을 아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읽기(듣고 말하고 쓰는 것과 함께)는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 끝으로 덧붙이자면, 한국의 중등 교육이 이 기본적이고 고차원적인 능력을 기르는 데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제발 좀 반성했으면 한다. 입시 공부는 절대로이 능력을 길러주지 못한다. 긴 글, 조금 어려운 글, 복잡한 글은 한 쪽 분량의 글을 읽고 답을 맞추는 훈련으로는 결코 읽어낼 수 없다. 얼마 전 포스팅했던 컬럼비아 대학생의 읽기 무능력은 한국 대학에서도 똑같이 관찰된다. 다 망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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