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책을 읽으려면, 중고등학교에서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지 못하는 엘리트 대학생”이라는 기사가 <애틀랜틱(The Atlantic)>에 실렸다. 여기에 붙은 부제는 이렇다. “대학에서 책을 읽으려면, 고등학교에서 책을 읽은 것이 도움이 된다.”

아래는 <애틀랜틱>의 페이스북 계정(링크는 댓글)에 요약된 내용을 거칠게 옮긴 것이다(기사 전문을 구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니콜라스 데임스는 1998년부터 컬럼비아 대학교의 필수 교양 과목인 문학 인문학을 강의해왔다. 지난 10년 동안 그는 학생들 사이에서 변화가 있음을 느꼈다. 그들은 읽기에 압도당하고 있다. 한 신입생은 그에게 공립 고등학교에서 단 한 권의 책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고, 데임스는 “내 턱이 떨어졌다”고 로즈 호로위치에게 전했다.

이러한 경향에 대한 포괄적인 데이터는 없지만, 호로위치가 인터뷰한 33명의 교수들 중 대다수는 비슷한 경험을 공유했다. 학생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디어에 직면했을 때 위축되고, 예전처럼 도전적인 텍스트를 읽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심지어 소네트에 집중하는 데도 힘들어한다. “그들이 읽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른다”고 호로위치는 썼다.

하나의 설명은 중고등학생들이 교실에서 책을 접하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읽기 능력의 저하는 기술 세트보다는 가치관의 변화에 기인할 수도 있다. “오늘날 학생들은 과거보다 직업 전망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고 호로위치는 계속 설명하며, 심지어 학생들이 문학 수업에서 배우는 것을 즐기더라도 그들이 직업적으로 더 유용해 보이는 전공을 원한다고 한 교수는 말했다. “인문학의 등록 감소에 기여한 동일한 요인들이 학생들이 수업에서 읽는 데 드는 시간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 기사를 접하자마자 ‘그럼 우리는?’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한국에서는 내신과 수능 준비에 독서를 요구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독서할 시간을 빼앗는다. ‘왜 공부 안 하고 책 읽니?’ 이게 한국의 방식이다.

읽기는 타고난 능력이 아니다. 읽고 쓰는 능력은 교육을 통해 습득해야 하는 후천적 능력이다. 문자가 발명된 게 기껏해야 5천 년전이고, 제대로 된 문자는 약 2,500년 전쯤 와서야 만들어졌다. 읽기 능력이 유전자에 새겨지기엔 불가능한 시간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 개체는 각자 어렵사리 읽기를 배워야 한다. 대략 6세에서 12세에 이르는 시기, 즉 뇌가 말랑말랑한 동안에만 읽기 습득이 가능하다고 뇌과학자들은 말한다. 초등학교 졸업 전까지 읽기를 열심히 훈련하지 않으면, 더는 읽기를 배우기 어렵다는 뜻이다.

저 기사는 이 지점까지 파고들지는 않았다. 단지 중고등학교에서 책을 접할 기회가 적어졌고 책을 읽어야 할 동기도 줄어들었다고 진단한 정도이다. 아이폰이 처음 나온 것이 2007년이니까, 지금의 대학생은 어릴 적부터 손에 디지털 기기를 들고 살았을 것이다. 이들은 문자 그대로 책을 접할 기회가 적었다. 읽기를 훈련할 시간도 마찬가지로 적었다고 봐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발 실증적인 연구가 있어야 한다.)

지금 상황이 이어지면 어떻게 될까? 평균적인 수준에서 인류 문명의 퇴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민주주의의 후퇴가 우려된다. 스스로 읽고 쓰지 못하면, 생각과 행동을 남에게 내맡길 수밖에 없다. 노예의 삶이다. 인류 다수가 다시 노예로 전락하는 역사의 끔찍한 후퇴를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체험하지 말란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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