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란 무엇인가? (2003년의 글)

  • 현 시국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이 글 역시 앞의 ‘파시즘’과 함께 다음 책에 한 꼭지로 수록되었습니다.

권력은 계륵과 같다. 덥석 안을 수도 없고 내팽개칠 수도 없고. 나아가 피할 수도 없고 피하고 싶지도 않은. 권력은 그만큼 요물이기 때문에 다룰수록, 다루려 할수록 논의에 상처가 난다. 그래서 권력을 말하기가 더욱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말로 권력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나 사르트르는 권력을 소유하거나 상실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본다. 전통적으로 권력은 그렇게 이해되어 왔으며, 오늘날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힘, 강제력 따위를 뜻하며, 타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어떤 능력을 가리킨다.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정치적 경제적 권력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권력을 이렇게만 본다면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다. 권력은 아주 나빠서 가급적 피해야 하는 것이 되거나, 아니면 반대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얻어야 할 최고의 선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현실에서의 권력 작동은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권력의 다양한 층위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니체이다. 그는 한편으로 인간 권력을, 다른 한편으로 존재론적 자연적 권력을 말한다. 니체가 ‘권력의지’(Wille zur Macht)를 말하면서 가장 강조한 것은 권력을 의지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이었다. 오히려 의지의 작동과 권력은 한데 엮여 있다. 서로 분리된 권력과 의지는 추상의 산물일 뿐이다.

권력과 의지가 서로 결합되어 있다면, 권력의지는 권력을 지향하는 의지도 권력이 지향하는 의지도 아니다. 오히려 권력의지는 생성의 그물망 속에서 항상 새롭게 작용하는 다양한 운동 그 자체이다. 그것은 항상 다른 권력의지들과 함께 동시에 작용한다. 심지어는 인간에게도 다양한 권력의지가 있다. 말하자면 인간은, 또는 한 개인일지라도, 하나의 의지 작용에 의거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피상적으로 자유의지라고 느끼는 것은 인간 너머의 차원에 있는 다양한 권력의지 작용의 소산이요 결과물이다. 인간의 의지는 사후적으로 재구성되고 추정된 것일 뿐이다. 실제로는 권력의지밖에 없다.

한편 니체는 도덕과 사제 권력을 호되게 비판했다. 실제로 권력이 작동하는 공간은 이 세계인데, 도덕과 종교(기독교)는 피안의 세계를 근거로 해서 이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 그것은 적더라도 어쨌건 얼마간은 있는 사람의 힘을 행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진정으로 사람을 퇴화시킨다. 니체가 말하는 약자란 자신의 힘을 끝까지 행사하지 못하는 자이고, 강자란 반대로 힘을 끝까지 행사하는 자이다.

관계로서의 권력 개념을 발전시킨 것은 푸코이다. 푸코는 ‘권력’ 대신 ‘권력 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권력(pouvoir)은 항상 만남 속에서만 존재한다. 고립된 권력, 실체로서의 권력이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자기보다 약한 자나 강한 자, 또는 자기와는 이런 저런 정도로 다른 힘을 가진 자와 만남으로써 권력 관계에 들어간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소유하고 있는 권력의 절대치가 아니라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행사되는 권력의 양이다.

저항을 예로 살펴보자. 권력을 일종의 소유물로 보는 견해에 따르면, 저항은 약자가 강자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으려는 행위이다. 그러나 이 경우 강자는 약자에게 항상 이기게 되어 있고, 따라서 저항 행위는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반면 푸코 식으로 이해하면, 저항은 약자가 강자와 맺고 있는 힘의 관계를 교란시켜 새로운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그것은 약자가 자신에게 행사되는 힘에 더 이상 동의할 수 없을 때, 또는 동의하고 싶지 않을 때 강자에게 내미는 재협상 카드이다. 모든 권력 관계는 일정한 균형을 전제하며, 강자는 약자가 그 관계를 파기하지 않을 정도로는 약자의 존재를 허용해야 한다. 새로운 협상 속에서 권력 관계는 재정립된다.

니체의 충실한 해석가인 들뢰즈는 권력을 존재론 차원에서 재구성한다. 권력(puissance)은 눈앞에 보이는 현실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권력은 현실적인 것을 생겨나게 하는 잠재적인 역량이다. 그것은 다분히 존재론적인 개념이다. 무로부터는 아무 것도 생겨날 수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 또는 존재의 전체집합은 시간의 이행 과정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계속해서 갱신된다. 존재는 시간 속에서 자신을 종합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권력의 지평을 존재론적 차원으로 넓히게 되면 인간 사회 속의 권력이 다시 조명될 수 있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만 권력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존재는 서로 권력 관계를 맺고 있다. 사회적 존재론적 권력 관계 속에서 한 개인의 힘은 미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인은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면서, 사회와 존재를 바꾸기 위한 새로운 연대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들뢰즈가 과타리와 함께 행하는 대중 분석, 분열분석의 주된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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