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이 왜 필요할까?

우리는 책, 기사, 보고서, 논문, 영상물 등 다양한 성격의 콘텐츠를 요약하곤 한다. 나아가 최근에는 LLM 인공지능이 요약까지 해준다. 하지만 우리에겐 요약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없다.

1. 요약은 왜 할까?

긴 콘텐츠를 짧은 시간에 이해하기 위해서 요약을 본다. 요즘 유행한다는 ‘세 줄 요약’ 같은 것도 이 맥락에 있다. 짧은 시간에 핵심 내용을 알기 위해 요약한다.

2. 요약이 안 되는 경우도 있을까?

아주 많다.

우선 철학 텍스트를 요약하려 하는 건 무모하다. 미셸 푸코처럼 철학과 역사학을 오가는 경우라면, 사례들의 공통점을 뽑아 요약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사례를 최소로 드는 철학 텍스트라면 요약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철학 텍스트 자체가 생각의 압축을 거쳐 탄생하기 때문이다.

문학 텍스트도 그러하다. 시를 요약하려 하는 사람은 없다. 장편소설을 요약하는 사람은 흔하지만, 장편소설이 줄거리가 다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면, 그런 요약은 작품 감상(느끼고 생각하기)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 충분히 납득될 것이다. 감동은 요약이 아니라 차라리 창조이다.

예술 작품(음악, 미술, 영화, 연극 등)을 요약하는 것도 부질없다. 예술 작품은 감각의 영역이고 언어 외적 요소, 혹은 음악이나 미술처럼 언어와 무관한 요소를 아주 많이 담고 있으며, 따라서 감상을 언어로 요약하는 건 번역 혹은 창작이다.

경험과 체험도 요약되지 않는다. 불가피한 경우에만 요약이 이루어지는데, 요약하는 사람은 언어를 빠져나가며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곤 한다. 보고 들은 것, 사람과 나눈 대화, 스포츠나 등산, 낚시 같은 몸 중심의 활동, 몽상과 꿈, 내면에 몰입한 시간 등이 그런 성격을 지닌다.

아마 요약할 수 없는 것이 진정 소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3. 요약으로 접하면 불만스럽지 않나?

어떤 건 요약으로 접해도 충분하다. 정보의 밀도가 낮은 콘텐츠가 그렇다. 반면 밀도가 높다면 요약은 뭔가 많은 걸 빠트린다. 따라서 콘텐츠의 밀도부터 파악해야 한다.

글을 쓰는 작가 입장에서 말하자면, 자기 글이 요약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통 과정에서 요약되는 걸 보더라도, 그걸 막을 도리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켜보는 것일 뿐이다. 왜냐? 요약 가능하다면 애초에 요약해서 썼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 낭비를 원하는 작가는 없다. 역량이 부족해서 짧게 쓸 수 있는 글을 길게 쓰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 말하자면, 모든 콘텐츠를 요약으로 접하겠다고 생각한다면, 대체로 이미 아는 것을 나의 밖에서 확인하는 용도를 넘어서는 목적을 거두기 어렵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요약을 탁월하게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이런 경우라면 이 사람의 생각 활동의 결과물과 만나는 거라고 해야 한다. 즉, 원본이 아니라 요약본이 다시 원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짧은 원본을 읽는 셈이지 요약본을 읽는 게 아니라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4. 요약을 읽을 때 득실은 무엇일까?

앞에서 보았듯, 요약은 시간을 절약해 준다. 현대 사회에서 시간 절약은 최고의 미덕이기도 하다.

한편 요약하기는 생각의 훈련 과정이기도 하다. 즉, 콘텐츠에 담긴 정보도 중요하지만 뇌를 집중해서 사용하는 훈련이라는 점에서 요약하기는 수반 행위이다(J. L. 오스틴의 용어로 하면, illocutionary와 유사). 자신이 손수 이해하고 요약하는 활동은 정보 습득의 활동 측면보다 생각 훈련 활동의 측면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을 ‘절약’하는 일이다. 한 가지 작업에서 두 가지 효과를 얻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요약된 것만 읽게 되면 생각 훈련의 기회를 놓친다. 이런 점은 많이 간과되고 있다.

5. 인공지능 요약을 믿어도 될까?

사람의 요약은 신뢰할 수 있다. 무조건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고, 일정 수준의 결과물을 내 왔던 사람의 작업은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다(참고: ‘책임’질 수 없는 생성 인공지능을 언제쯤 ‘신뢰’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의 요약은 신뢰할 수 없다. 요약에 수반되는 생각 활동, 생각을 통한 압축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공지능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작업은 오락가락한다(최근 이를 지칭한 용어로 ‘헛소리(bullshit)’라는 표현을 쓴 논문도 나왔다). 사람이 작업할 때 열 번이면 열 번 다 비슷한 수준을 보여준다면, 인공지능은 여덟 번 잘했더라도 두 번쯤 아주 괴상한 결과를 낸다.

모든 논문에는 저자의 요약이 포함되어 있다. 모든 언론 기사에는 제목과 소제목, 본문 밖 굵은 문장이 있다.

인공지능에게 요약을 맡겨 여러 논문을 비교시킬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논문의 초록들을 직접 읽으며 비교하고 필요한 논문 전체를 읽을 때,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이어지기 쉽다. 뜻밖의 만남은 긴 콘텐츠를 읽는 기분 좋은 경험이지 않은가.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지점을 짚어봤다. 여기에 몇 가지 생각이 더 보태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Comments

Leave a Reply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