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대하여 2 : 시민 교양은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손석희 씨가 여전히 명사인 건 맞는 듯하다. 앵커 브리핑에서 소개한 ‘낭만’에 대한 해석이 틀렸다는 나의 지적에 반박(혹은 비꼼)이 많이 올라온다. 처음 알게 되었다는 놀라움을 표명한 이도 몇 되었고.

흥미로운 옹호는 서양 개념을 번역할 때 ‘한자의 뜻’도 고려했고 그것이 나름 유의미하다는 견해다. 여러 분이 언급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오해를 조금 풀어볼까 한다.

사실 서양어가 어떻게 동아시아(중, 일, 한)에 번역·소개되었느냐의 문제는 이미 오랜 연구사를 갖는다. 그중 가장 중요한 작업은 야나부 아키라(柳父 章)의 《번역서 성립사정(飜譯語成立事情)》(1982)이다. 국내에도 몇 차례 번역되었는데, 서혜영이 옮긴 2003년 판본이 가장 좋다(나중 번역은 의역이 심해 원문의 뉘앙스가 사라지는 대참사가). 나도 이런 문제와 관련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관련 참고문헌 다수 소개했음). 이 주제와 관련해서, 내 논문의 구절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야나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서양의 개념에 대응하는 일본의 개념과 현실이 애초에 없었다는 자각이 최초의 고민을 낳았으며, 나아가 개념의 의미 내용을 일본에 건설하는 것이 절실했다. 이른바 ‘근대 국가 만들기’ 라는 과제가 그것이다. (32쪽)서양 개념에 대응하는 일본 개념과 현실의 부재 앞에서, 먼저 시도되었던 것은 일종의 의역이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처음에는 “자연스러운 일본어”로 번역하겠다는 원칙을 관철했다. “뜻은 ‘맞춘다’는 말인데, 일본어로 어떻게 번역해야 좋을지 모르겠네.”라고 묻는 벗에게 후쿠자와는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자네와 같은 이들은 서양 원서를 번역하는 데 한결같이 네모난 문자만 사용하려 하는데 그것은 어째서인가?” 여기서 말하는 “네모난 문자”는 한자를 가리킨다. 왜 일본어가 아닌 새로운 한자 번역어를 만들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후쿠자와가 바랐던 “자연스러운 일본어로서 흠잡을 데 없는 번역어(譯字)”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서양에는 있는데 일본에는 없는 그런 ‘현실’이 있었고, 따라서 애초에 서양어에 해당하는 일본어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후쿠자와 자신도 나중에는 서양어를 ‘네모난 문자’로 번역하기에 이르렀다. 왜 후쿠자와는 자신의 원칙을 바꾸기에 이르렀을까?

야나부 아키라는 이렇게 ‘네모난 문자’로 번역이 이루어지고 나면 번역어가 “카세트 효과”를 산출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외래어 사용을 포함해 번역어의 오남용 문제가 지적되곤 하지만, 야나부가 보기에 그건 번역이 내포하는 본래적 특성이다. 즉, 번역어는 모국어가 갖고 있지 않은 의미들을 흡수해 새로운 어휘로 변모한다는 것이다. (35쪽)

그렇다면 ‘카세트 효과’란 무엇인가? 야나부 아키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말은 원래 ‘카세트’와 같은 것이다. ‘카세트’란 case 즉, 작은 상자로서 프랑스어에서 말하는 cassette이고, 보석상자라는 의미로 쓰인다. (…) 작은 보석상자가 있다. 그 속에 보석을 넣을 수 있다. 어떤 보석이라도 넣을 수 있다. 그러나 막 만들어진 상자에는 아직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보석상자는 밖에서 보면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매력 있다. 게다가 뭔가 들어있을 것 같다. 틀림없이 들어있을 것이라는 기분이 들게 한다. 새롭게 만들어진 말은 이 카세트와 비슷하다. 말 그 자체가 매력이다. 그리고 속에 깊은 의미가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사람들을 끈다. (…) 의미나 역할 때문이 아니라 말 자체가 매력이다, 라는 체험이 처음에 없었다면, 사람들은 결국 말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번역어는 우리에게 있어 새로운 말이다. 특히 번역을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말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카세트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말의 특이한 현상, 기능, 효과 등을 전부 포함해서 ‘카세트 효과’라고 부르기로 한다.”(야나부 아키라, 《번역어의 논리》, 이용덕 역, 불이문화, 2000.)

요약해 보자. 야나부 아키라는 서양의 현실과 일본의 현실이 너무나 달랐고, 일본에 없는 서양의 현실을 지칭하는 많은 개념 앞에서, 메시지 시기 지식인들이 카세트처럼 신비한 효과를 내는 번역어를 선택해 사용했다고 본다. 이것이 동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되었고(서양 번역어가 수용되는 여러 시기가 있다는 점은 여기서 중심 논제가 아니다). 최근에 나온 야마모토 다카미쓰(山本貴光),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 지비원 역, 메멘토, 2023도 참고하면 좋으며, 내가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한 포스텍 융합문명연구원 ‘웹진X’에서 서평을 볼 수 있다.

여기까지 이론적인 내용을 살펴보았고… 이제 ‘낭만’에 대해 손석희 식으로 이해하는 것의 문제를 짚어 보자. 혹자는 손석희가 야나부 아키라의 해석 중 일부를 따와 모국어가 갖지 않은 의미를 흡수해 새로운 의미로 변모시킨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나는 어휘나 개념의 수용이 이런 식이 되면 학술적으로 아무런 진보도 이루지 못한다고 반박한다. 즉, 중요한 개념을 자의적으로 수용한 후 아무말 대잔치를 펼치고 만다. 한자어로 비슷한 뜻을 찾았다고? 비슷한 것은 같지 않다는 말을 되돌려 주고 싶다. 학문은 비슷한 것이 ‘비슷할 뿐’이라고 해야 하고 ‘같지 않다’고 해야 한다. 그 차이에 주목하는 것이 학문이다. 나아가  학문은 왜 비슷할 뿐인지도 밝힌다. 야나부 아키라가 한 작업이 그것이고, 내 작업의 상당 부분도 그러하다(이 글 끝에 내가 쓴 글의 한 토막을 부록으로 삽입).

손석희의 방식은 시민 교양이 가서는 안 되는 길을 잘 보여준다. 시민 교양이 제대로 서려면 학술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학술은 학술대로 놀고, 교양은 교양대로 제 마음대로 가면, 사회의 지적 수준은 퇴락할 수밖에 없다. 내가 ‘앵커 브리핑’에서 되풀이된 반지성주의를 꾸준히 비판했던 이유도 거기 있다. 물론 지금은 그마저 그리워할 정도로 더 후진 사회로 전락했지만 말이다. 더욱이 사회가 이렇게 갈수록 학술의 사회적 의미는 폄하된다. 기초과학이 그러하듯 인문사회 탐구도 더 실질적인 영역의 토대를 이룬다는 점을, 사회가 인식해야 할 터인데, 기대난망이다.

부록: 동양철학은 없다 (《뉴노멀의 철학》, 동아시아, 2020, 166-169)

동양철학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양철학은 없다. ‘철학’이라는 말 자체가 만들어진 게 19세기 중엽 일본에서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철학’이라는 말은 메이지明治시대의 일본 사상가 니시 아마네 周가 처음 쓴 말이다.

1861년 니시는 이렇게 말했다. 전래된 서양 학문 중에서 “격물, 화학, 지리, 기계 등 여러 분과에 대해서는 그것을 궁구하는 사람이 있지만, 오직 희철학 希哲學(필로소피) 한 분과에 대해서는 아직 그런 사람을볼 수가 없다”. 여기에서 ‘희철학’이라는 말은 ‘필로소피philosophy ’의 번역어로 처음 등장했다.

영어 ‘필로소피’의 어원은 희랍어(고대 그리스어)인 ‘필로소피아 philosophia ’인데, 필로소피아는 플라톤이 만든 ‘필로소포스philosophos ’라는 말에서 왔다. 플라톤은 『파이드로스Phaidros』라고 불리는 작품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파이드로스여, 누군가를 지혜 있다고 일컫는 것은, 내가 보기엔 너무 높이 올라간 것 같고 그런 말은 신에게나 적용하면 적절한 것 같네. 그러나 지혜를 사랑하는 자[philosophos] 또는 그 비슷한 말로 일컫는다면, 그 자신도 차라리 동의할 것이고, 보다 더 합당할 것 같네.” 그러니까 사람들이 흔히 (잘못) 짐작하는 것처럼 ‘철학’이라는 분과가 먼저 있었던 게 아니다. 오히려 ‘지혜를 사랑하는 자’ 또는 ‘지혜의 친구’가 제일 먼저 있었고, 그후에 그의 활동(필로소페인philosophein)이 있고 난 후, 그 활동을 가리키는 명사로서 필로소피아philosophia가 생겨난 것이다. 오늘날 많은 철학 입문서에는 ‘철학’의 어원이 ‘필로소피아’로,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sophia’와 ‘사랑한다’라는 뜻의 ‘필로philo-’가 합쳐진 말이라고 설명되곤 한다. 그럴듯하지만 잘못된 설명이다.

니시는 『시경詩經』에 처음 나온 글자인 ‘철哲’에 주목했다. 『시경』에는 “이미 밝고 또 지혜로워서 그의 몸을 보존한다旣明且哲 以保其身”라는 문구가 있는데,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 ‘희希’는 ‘갈구하다’, ‘바라다’라는 뜻이고, ‘철’은 ‘밝다’, ‘지혜롭다’라는 뜻이니, 필로소피아의 번역 으로는 제법 그럴듯하다. 네덜란드 유학(1862~1863년)을 마치고 돌아온 니시는 1866년 전후로 교토에서 행한 강의를 정리한 책 『백일신서百一新論』(1874)에서 이렇게 적는다. “교敎의 방법을 세우는 것을 필로소피[ヒロソヒ], 번역하여 철학哲學이라 명한다.” 이제 ‘희철학希哲學’은 ‘철학哲學’으로 대체되며, 필로소피아의 본뜻을 얼마간 잃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면 가장 앞에서 던진 물음은 이렇게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동양(동아시아)에도 서양의 필로소피아에 해당하는 활동이 있었을까? 동양에도 철학이 있었느냐는 물음은, 투박하게 표현하면 ‘서양의 필로소피아=동양의 ( )’에서 ( ) 자리에 오는 것이 뭔가 있지 않겠느냐는 물음으로 바꿀 수 있다. 이 물음은 다음의 물음으로 연결된다.

서양의 필로소피아가 갖는 의미 내용에 상응하는 의미를 갖는 동양의 어떤 것이 있지 않을까? 게다가 우리는 ‘동양철학’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제도적으로 대학의 철학과만 보더라도 ‘동양철학’, ‘한국철학’, ‘중국철학’, ‘인도철학’ 등의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제도라는 것이 학문 분과에 대응한다면, 동양철학에 대응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게 아닐까?

‘철학’이라는 말을 발명한 니시의 입장을 보자. 사실 니시가 처음 번역어로 염두에 두었던 용어는 ‘희구현학希求賢學’이라는 의미의 ‘희현학希賢學’이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朱熹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쓴 주돈이周敦頤가 이 구절을 썼는데 니시가 이를 모방해서 만든 것이다. 그렇긴 해도 니시는 주돈이의 ‘희希’에 주목했지 ‘현賢’은 피하려 했다. 그 까닭은 한자 문화권에서 ‘현’이라는 표현은 성리학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니시는 ‘희철학希哲學’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다. 나아가 더 깊은 고민 끝에 ‘희’마저 버리고 ‘철학’이라는, 필로소피아 본래 의미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용어로 옮겨 가게 된다. ‘희’라는 말이 여전히 성리학을 비롯한 전통 한학漢學을 연상케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전통 한학 지지자들은 필로소피의 번역어로 ‘리학理學’이라는 강력한 후보를 밀었다. 이들은 동양사상과 서양사상 사이의 연속성에 주목하고 이를 옹호하려 했다. 말하자면 필로소피의 번역어를 놓고 동양파와 서양파 사이의 일전이 있었는데, 니시는 서양파의 선두 주자였다고 보면 된다. 니시는 필로소피와 동양사상 간의 그 어떤 연관성도 제거하려 했고, 그 결과 등장한 번역어가 ‘철학’이었다. 그 후 1877년 도쿄대학 설립과 함께 문학부의 한 과가 ‘사학·철학·정치학과’로 명명 되면서, 더 나아가 이노우에 데쓰지로 井上哲次郞 등이 간행한 철학 사전인 『철학자휘哲學字彙』(1881)가 출간되면서, 판세는 서양파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동아시아 전통에도 철학이 있었을까? 동양철학이 있었을까? 적어도 니시의 고민에 따르면 동아시아에는 철학에 대응하는 그 어떤 활동이 없었다. 오히려 철학은 동양 전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성리학과 대립되는 활동으로 이해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요컨대 동양 철학은 철학의 반동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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