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돌파구를 고민하자 (3) : 중국도 일본도 망했다 (적어도 교육만 놓고 보면)

앞서 언급한 보고서(송승철 외, <인문학 : 융합과 혁신의 사례들>)를 읽으며 느낀 아주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요점부터 말하면, 중국과 일본의 교육은 망했다는 것. 교육이 망했으므로, 나라의 미래도 어두워보인다.

먼저 중국을 보면, ‘통식(通識)교육'(인문융합교양교육을 가리키는 중국 용어)의 지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통식교은 “‘생존’을 위한 대학 경쟁력의 강화 방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 강국으로서 G2에서 향후 ‘새로운 문명의 건설’을 위한 전문인력의 필요성, 중국의 미래를 위한 우수 인력의 양성에 목표를 두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231쪽). 보고서에는 홍콩 중문대학, 광저우 중산대학, 베이징 칭화대학, 상하이 푸단대학이 사례로 언급되어 있다.

나는 푸단대학의 통식교육에 가장 눈길이 갔다. 내가 그려보고 있는 상에 가장 근접해 있어서다. 물론 푸단대학의 리버럴한 전통도 교과과정 구성에서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 푸단대학은 핵심과정의 모듈을 만들고, 모듈별로 과목을 제안하고 있다. 2005년에 처음 설계되었던 6개의 모듈은 2012년에 7개로 확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각 모듈은 다음과 같다.

제1모듈: 문사경전과 문화전승, 제2모듈: 철학지혜와 비판사유, 제3모듈: 문명대화와 세계시야, 제4모듈: 사회연구와 당대중국, 제5모듈: 과학탐구 및 기술혁신, 제6모듈: 생태환경과 생명배려, 제7모듈: 예술창작 및 심미체험. 이중 제4모듈은 새로 추가된 모듈이다.

나는 이 모듈들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 자유, 민주주의, 세계시민의 책무가 없지? 하지만 이내, 하긴, 교육의 목표가 패권주의에 있다고 천명했는데, 뭘 기대하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푸단대학은 최근 학칙을 반동적으로 개정했다.

“중국 강남의 최고 명문대인 푸단대가 학칙인 장정(章程)에 ‘사상자유’와 관련한 문구를 빼고 대신 ‘시진핑(習近平) 사상’을 삽입했다. (중략) 사상의 자유나 학술의 독립에 대한 표현은 삭제하거나 줄였지만 공산당의 영도를 강조하고 시진핑 사상을 부각하는 내용은 크게 늘렸다. 우선 서문에 설명된 학교설립 이념 중 ‘사상자유’가 빠지고 ‘애국봉헌’이라는 구절이 들어갔다. “중국 공산당의 영도(지도)하에 당의 교육방침을 전면적으로 관철하고, 중국 공산당의 치국이정(治國理政)을 위해 복무한다”라는 구절도 새로 들어갔다. 제4조에 있던 “교수와 학생의 자치, 민주관리”라는 구절은 “중국 공산당 푸단대학위원회 영도하의 학장 책임제”로 바뀌었다. 교장의 독립적인 권한 대신 공산당 위원회의 관리를 앞에 내세웠다. 또 제9조에는 “시진핑 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으로 교직원과 학생의 두뇌를 무장한다”라는 구절이 삽입됐다. 사상과 학문의 자유, 학생 자치를 배제하고 당의 노선과 시진핑 사상을 철저하게 따르겠다는 내용으로 바뀐 셈이다.” (박은경 베이징 특파원, “거꾸로 가는 중국 ‘사상통제 만리장성’”, 주간경향 1359호, 2020.01.06.)

푸단대학의 모듈은 한국의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가 교양교육을 통해 추구하려는 목표와 대비된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1)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탐구능력의 함양, 2) 비판적 사고력의 함양, 3) 정신적 독립과 성숙, 내적 견고성과 유연성을 키우는 교육, 4) 시민의 민주적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라는 데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문명전개의 지구적 문맥’이라는 중핵과목을 1) 인간의 가치탐색 (Human Quest for Values), 2) 세계시민, 3) 빅뱅에서 문명까지라는 세 과목으로 개설해서 총9학점을 모든 학생에게 필수공통으로 가르친다.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겠지만, 교육의 목표만 비교하더라도 푸단대학과 경희대학교의 차이는 두드러진다. [첨가: 최근에는 경희대학교의 후마니타스 칼리지도 많이 후퇴했다고 비판 받고 있음. 2024.7.4.]

한편, 일본의 도쿄대학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인문학 개편 시도는 일본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1995년에 ‘문학부’의 체제를 개편하며 시작된 개혁은 19개 학과를 4학과 26전수과정(전공)으로 전환했는데, 이는 2018년 문학부의 모든 전공을 ‘인문학과’라는 1개 학과로 통합하고 그 아래 기존의 27개 전공을 두는 형태로 재편되었다.

일본 문부성은 “급속한 전지구화에 따라 세계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복합적 문제가 발생하는 시대적 조건 속에서 특정한 전문 분야만의 지식과 기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태가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전공 사이의 융복합을 강조”했으며, 도쿄대학도 이에 부응하여 문학부의 통합을 시도했던 것인데, 막상 통합의 결과를 놓고 보면, 문학부 19개 학과가 문학부 4학과 내 26전공을 거쳐 다시 문학부 1학과(인문학과) 내 27개 전공으로 회귀하는 양상을 보인 데 불과하다. 문학부 내 인문학과라는 1개 과 설치는 꼼수도 그런 꼼수가 없다 싶을 정도이다. 도대체 1996년부터 2018년까지 22년 동안 무슨 개혁과 변화가 있었던 걸까? 단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몇 개 전공이 늘어난 것 말고는 변화에 대한 저항밖에 읽어낼 수 없다.

다른 나라나 한국과 비교하는 일을 떠나, 나는 일본의 최고명문 중 하나인 도쿄대학의 이런 행보가 일본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대표할 수 있다고 보며, 개혁의 의지는 조금도 없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참고로 이런 꼼수 뒤에 문이과 구분의 강고함이 자리하고 있다는 가설은 단지 가설만은 아닐 것이다. 일본은 이미 꽤 오래 전부터 망했다.

한국은 어떠한가? 답이 없기는 중국이나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런 우울한 내용은 다음으로 미루고, 주말을 즐기도록 하자.

(2020.7.4.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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