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문학 융합과 혁신에 관한 보고서를 검토했다. 보고서의 취지와 내용은 상당히 충실했으며, 인문학 관계자라면 누구나 일독을 권하고 싶다. 훌륭한 미국 사례(컬럼비아 대학과 세인트존스 대학)에 대한 검토를 보고 나서 두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보고서 작성자가 꼭 해줬으면 좋았을 언급인데, 미처 덧붙이지 못했던 것 같다.
첫째. 미국의 사립대학들이 좋은 결과를 낸 데는, 오랜 세월에 걸친 대학당국-교수-학생의 협조와 개선과정도 있었지만 사례 연구를 통해 뭔가를 참고하려 했던 우리 입장에서는 엄청난 액수의 등록금을 빠트려서는 곤란하다. 연 6000천만 원이 넘는 등록금이야말로 우수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대략 1/10을 조금 넘는 수준의 등록금을 받는 한국 대학이 비슷한 종류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의 역사와 맥락에서 현재의 등록금도 많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비용에 대한 고려 없이 질을 담보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풀기 어려운 난제이다.
둘째. 우수 사례를 수집하고 검토하는 건 좋은데, 사례들 모두가 최상위권 대학이라는 점은 또 다른 숙제를 낳는다. 말하자면 인문학의 융합과 혁신은 그나마 최상위권 대학에서 시도될 수 있는 작업일 뿐 보통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인문학은 무엇이어야 할까를 고민하는 건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 인문학의 역할 중 하나가 민주 시민의 소양을 배양하는 데 있다면,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인간과 사회와 자연에 대한 이해, 각종 데이터와 기술을 해독하는 능력, 표현하고 소통하는 능력, 공감하고 배려하는 능력, 무엇보다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데 인문학만큼 좋은 수단도 없는데, 인문학은 길을 잃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무엇보다 우리 나름의 목표 설정이 먼저인 것 같다. 고등교육을 통해 이루려 하는 것이 무엇인가? 전문 지식을 습득하고 발전시킬 능력을 키우는 것. 민주 시민을 길러내는 것. 사회와 시대의 교육자를 양성하는 것. 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전에 이런 의제를 자꾸 던지는 일도 필요하다.
분명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대학에 가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바뀐 시대에 대학이 감당할 수 없는 범위의 요구이다. 취직에 유리한 인재를 길러내는 건 대학이 이미 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다. 단지 대학은 졸업장을 줄 수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 졸업장의 가치가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까? 졸업장의 가격이 적절치 않다는 사회적 해일이 일단 일어나면 모든 대학은 일거에 무너질 것이다. 아마 이 일은 통일(명목상 말고 실질적)과 시점이 맞물리게 되지 않을까? 누구나 걸어서 세계 어디라도 갈 수 있는 그 시점 말이다.
참고. 내가 읽은 보고서는 송승철 외, <인문학 : 융합과 혁신의 사례들>(2019)이다.
(2020.7.3. 페이스북 포스팅. 당시 진행하던 연구에서 잠깐 산책하듯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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