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돌파구를 고민하자 (2) : 인문학 해외 우수 사례 연구를 읽은 감회 (송승철 외, 2019)

최근 인문학 융합과 혁신에 관한 보고서를 검토했다. 보고서의 취지와 내용은 상당히 충실했으며, 인문학 관계자라면 누구나 일독을 권하고 싶다. 훌륭한 미국 사례(컬럼비아 대학과 세인트존스 대학)에 대한 검토를 보고 나서 두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보고서 작성자가 꼭 해줬으면 좋았을 언급인데, 미처 덧붙이지 못했던 것 같다.

첫째. 미국의 사립대학들이 좋은 결과를 낸 데는, 오랜 세월에 걸친 대학당국-교수-학생의 협조와 개선과정도 있었지만 사례 연구를 통해 뭔가를 참고하려 했던 우리 입장에서는 엄청난 액수의 등록금을 빠트려서는 곤란하다. 연 6000천만 원이 넘는 등록금이야말로 우수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대략 1/10을 조금 넘는 수준의 등록금을 받는 한국 대학이 비슷한 종류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의 역사와 맥락에서 현재의 등록금도 많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비용에 대한 고려 없이 질을 담보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풀기 어려운 난제이다.

둘째. 우수 사례를 수집하고 검토하는 건 좋은데, 사례들 모두가 최상위권 대학이라는 점은 또 다른 숙제를 낳는다. 말하자면 인문학의 융합과 혁신은 그나마 최상위권 대학에서 시도될 수 있는 작업일 뿐 보통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인문학은 무엇이어야 할까를 고민하는 건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 인문학의 역할 중 하나가 민주 시민의 소양을 배양하는 데 있다면,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인간과 사회와 자연에 대한 이해, 각종 데이터와 기술을 해독하는 능력, 표현하고 소통하는 능력, 공감하고 배려하는 능력, 무엇보다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데 인문학만큼 좋은 수단도 없는데, 인문학은 길을 잃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무엇보다 우리 나름의 목표 설정이 먼저인 것 같다. 고등교육을 통해 이루려 하는 것이 무엇인가? 전문 지식을 습득하고 발전시킬 능력을 키우는 것. 민주 시민을 길러내는 것. 사회와 시대의 교육자를 양성하는 것. 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전에 이런 의제를 자꾸 던지는 일도 필요하다.

분명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대학에 가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바뀐 시대에 대학이 감당할 수 없는 범위의 요구이다. 취직에 유리한 인재를 길러내는 건 대학이 이미 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다. 단지 대학은 졸업장을 줄 수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 졸업장의 가치가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까? 졸업장의 가격이 적절치 않다는 사회적 해일이 일단 일어나면 모든 대학은 일거에 무너질 것이다. 아마 이 일은 통일(명목상 말고 실질적)과 시점이 맞물리게 되지 않을까? 누구나 걸어서 세계 어디라도 갈 수 있는 그 시점 말이다.

참고. 내가 읽은 보고서는 송승철 외, <인문학 : 융합과 혁신의 사례들>(2019)이다.

(2020.7.3. 페이스북 포스팅. 당시 진행하던 연구에서 잠깐 산책하듯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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