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안티 오이디푸스》 강의 021

스토아학파 연구를 포함하는 《의미의 논리》, 그리고 《천 개의 고원》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세상에는 ‘소마(soma)’, 즉 물체들만 있고, 물체들은 서로 작용과 반작용 관계에 있습니다. 이것이 심층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심층은 원인들의 세계입니다. 한편 여기에 대응해서 표층에서는 결과들이 생겨납니다. 그것을 ‘표층의 결과’라고 부릅니다. 표층의 결과가 의미이고 사건입니다. 이처럼 스토아학파의 철학에서는 물체들의 세계와 사건 및 의미의 세계가 구별됩니다.

두 세계는 동시적입니다. 물체들의 세계가 원인들의 세계이고, 사건과 의미의 세계는 물체들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준원인’이라는 말을 씁니다. 어쨌건 이것은 결국 심층 세계에서 일어나는 물체들의 상호작용의 결과일 뿐입니다다. 심층에서 일어난 일들은 원인들이고, 표층에서 일어난 일들은 결과들입니다. 인과관계는 심층이 원인이 되어서 표층에 결과가 일어난다고 이해하기보다는 ‘평행하다’고 이해할 여지가 더 많습니다. 들뢰즈가 이렇게 해석될 수 있도록 신경을 더 많이 쓴 거 같습니다. 이정우씨는 《의미의 논리》에서 ‘표면 효과’라고 잘못 번역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층위들이 와해됩니다. 설명이 굉장히 엉뚱해져 버려요. 잘못된 해석으로 가는 거죠. 이 얘기를 한 까닭은,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말하는 내공의 차원, 즉 느낌 혹은 기분의 차원이 스토아학파의 의미와 사건의 차원에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거기서 정신이 쪼게질 수 없고 나뉠 수 없다는 것이 데카르트 이래의 통념인데, 들뢰즈·과타리 식으로 보면 실제로는 쪼개집니다. 물질의 경과는 매순간 정지와 재개를 반복한다 말이에요. 기본적으로 자기 분열을 내포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들뢰즈·과타리의 주체는 ‘분열 주체(schizo subject)’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체가 생산의 경과에 ‘종속’되기 때문입니다. 동시적이지만 논리적으로는 종속되기 때문에 주체는 운동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또한 능동적이지 않고 수동적 종합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주체는 생산의 경과에 좌우될 수밖에 없습니다. 생산의 경과는 편집증 기계와 기적 기계의 계속적인 분열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보면 주체 또는 주체의 마음, 정신이라는 걸 놓고 본다면 그 측면 역시 분열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생산의 과정도 분열적이지만 그에 대응되는 생각과 마음의 과정도 분열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계속 보겠습니다. “순수 상태에서의, 거의 견딜 수 없는 한 점에서의, […]” ‘점’이라는 말도 그냥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점은 공간을 점유하지 않습니다. 기하학에서 점은 그냥 관념적인 위치에 불과해요. “[…] 내공량들에 대한 분열증적 경험이 있다.” 경험이 먼저예요. “즉 삶과 죽음 사이에서 유예된 아우성처럼 최고의 지점에서 체험되는 독신의 비참과 영광, 강렬한 이행감(移行感), […]” ‘강렬한’은 intense로, ‘내공’과 직접 관련되진 않습니다. 그리고 ‘이행감’이라고 했습니다. 즉 정태적이지 않고 동적입니다. ‘이행(passage)’은 항상 최소한 두 점의 간격을 전제합니다. 이행이라는 건 그렇죠.

그런데 들뢰즈는 스피노자 철학을 해석할 때 ‘아펙투스(affectus)’가 ‘이행’과 관련된다고 봅니다. 아펙투스는 영어나 프랑스어로 affect라고 옮깁니다.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개념이 ‘아펙티오(affectio)’로, 영어나 프랑스어로 affection이라고 옮깁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적었던 글을 옮겨 보겠습니다.

[[인용 시작]] “개념의 역사를 보면 최근 많이 논의되는 affect는 들뢰즈(+과타리)의 affect를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가 번역/해석하면서 등장한 개념이다. 주지하듯, 마수미는 《천 개의 고원》>(1980)을 영어로 번역했다(1987). 《안티 오이디푸스》의 영어본과 비교하면 번역도 꽤 준수하다. 그러나 affect에 대한 마수미의 이해는 일천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관련된 내용은 미흡하지만 몇 년 전 논문으로 정리한 바 있다. 김재인(2017), “들뢰즈의 ‘아펙트’ 개념의 쟁점들: 스피노자를 넘어”. 지금은 논문을 쓴 시점과는 조금 달리 생각이 교정되고 진전했으며,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들뢰즈는 스피노자 철학을 해석하면서 affect와 affection을 정밀하게 구분한다. 대강을 해설하면 이렇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펼쳐 있는 것, 말하자면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의 우주가 있다. 가령 ‘생각’은 그런 방식으로 있지 않다. 하지만, 가장 넓은 의미에서 ‘물체’는 그런 식으로 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을 가리키는 ‘원자’, 혹은 그것의 현대적 형태인 ‘기본 입자’들이 이루는 세계와 대강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피노자가 활동하던 17세기에 ‘원자’는 ‘힘’으로 이해되는 경우도 많았다. 가령 라이프니츠의 철학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나며, 들뢰즈는 이를 명시적으로 언급한다.) 입자들은 우주 공간에서 서로 만나고 흩어지는 운동 속에 있다. 어떤 이유로건 몇몇 입자가 함께 움직이기도 한다. 이렇게 공통의 운동을 하는 입자들은 ‘하나의 몸/물체’ 혹은 ‘개체’를 이루고 있다고 이해된다. 물론 개체가 분해되어 입자(들)로 뿔뿔이 흩어지기도 한다. 우주의 경과를 정지시켜 놓고 보면, 그래서 스냅사진을 보듯 들여다보면, 우주는 여러 층의 개체들로 이루어져 있음이 확인된다. 때로는 하나의 입자가 개체이기도 하고, 때로는 태양이나 지구처럼 아주 많은 입자가 개체이기도 하다. 개체가 여러 층으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자. 우리 몸 속의 피는 적혈구, 백혈구, 혈장 따위가 모여 이루는 개체이기도 하고, 우리 몸이라는 개체를 이루는 부분이기도 하다.

개체들은 서로 힘을 가하고 또 받는다. 가령 두 개체가 부딪히는 상황을 보자. 부딪힘이 꼭 ‘표면’에서 일어난다고 여길 필요는 없다. 서로 같은 극의 자기장이 있다면 일정한 거리에 이르면 서로 밀쳐내기도 한다는 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는, 일반 상대성이론에서는 다르게 설명하지만, 뉴턴의 고전 역학적 관점에서 원격으로 일어나는 서로 당김 작용, 즉 만유인력을 보더라도 꼭 표면이 붙어야 힘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확인된다. 이렇게 힘을 주고받는 상황에 적용되는 동사가 affect다. 이 동사는 ad(~쪽으로, to, toward)와 facio(~하다, do, make)가 합쳐진 말로, ‘작용’ 또는 ‘힘’을 가한다는 뜻이다. 두 개체가 부딪힐 때 어느 한쪽은 다른 한쪽에 힘을 가하지만, 동시에 다른 한쪽에 의해 힘을 받는다. 보통 가하는 작용을 ‘능동(action)’이라 하고 받는 작용을 ‘수동(passion)’이라 한다. 두 개체가 만날 때는 항상 서로 힘을 주고받는다. 즉, 각각에 능동과 수동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을 ‘변화(modification)’라고 일컫는다. ‘변화’라는 번역이 아주 적합하지는 않지만, 일상어로는 이 정도로 이해하더라도 대체로 무난하다(사실 이런 용어/대목을 마수미나 affect 이론가, 혹은 신유물론 주창자들이 꼼꼼하고 엄밀하게 변별하고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다만 각 개체가 겪는 변화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자. 그렇게 개체에 일어나는 변화를 다른 말로 affection이라고 한다.

두 개체의 만남은 멈추지 않기 때문에, 변화는 잇달이 일어난다. 말하자면 시간 축을 따라 affection 1, affection 2, affection 3… 이렇게 각 시점(시간을 임으로 멈추고 끊어 고려해 보면)마다 객체의 상태는 달라진다. 인간의 입장에서 affection을 ‘느낌’이나 ‘감정’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틀린 번역이 아니다. 따라서 편의상 affection을 ‘느낌’이라 번역하면서 논의를 계속 진행하기로 하겠다(《안티 오이디푸스》에서 말하는 ‘느낌’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두자. 《안티 오이디푸스》의 느낌 혹은 ‘기분’은 affect와 관련된다). 매 순간 느낌1, 느낌2, 느낌3로 바뀔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개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 커지거나 약해진다. 개체를 손상하는 외부 개체(들)와 만나면 힘이 약해지거나 줄어들고, 개체를 돕는 외부 개체(들)와 만나면 힘이 커지거나 세진다. 상한 음식을 먹었을 때, 혹은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 지도교수와 만날 때를 떠올려 보라. 혹은 목마를 때 시원한 물을 마시거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를 떠올려 보라. 힘이 커지거나 약해진다는 말의 의미는 꽤나 분명하다.

들뢰즈가 해석하기에, 스피노자는 이런 힘의 ‘증감’ 혹은 ‘이행’을 지칭하기 위해 affect라는 개념을 ‘발명’했다. 발명했다는 말은, 스피노자가 그런 의미를 담아 이 개념을 쓰기로 했다는 말이다. 《윤리학》에서 스피노자는 몇 차례나 affect를 정의한다. 힘이 증가하는 이행을 ‘기쁨’이라 정의하고, 힘이 줄어드는 이행을 ‘슬픔’이라 정의하기도 했다. 스피노자에게 기쁨과 슬픔은 정의상 개체의 힘의 증감을 가리킨다. 그러니 ‘슬픔도 힘이 된다’ 따위의 말은 스피노자에겐 자기 모순이다.

이제 affect의 의미가 어느 정도 이해되었을까? 내가 ‘정동’이라는 기괴한 용어를 거부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특히 스피노자-들뢰즈(과타리)의 개념에 ‘충실’한 채 저 용어를 받아들이는 건 너무 힘들다. ‘정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이 전혀 없다. 이건 뭐지? 그래서 한국어에 ‘힘의 증가 혹은 감소’를 나타내는 말이 없는지 고민했다. 그 결과 ‘기운’이라는 말에 이르렀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15세기 한국어에서 ‘긔운’이라고 사용된 용례가 등장하며, 순우리말이라고 해설되는데, 내 생각엔 ‘氣運’이라는 한자어가 꽤 오래 전에 정착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지난 여름에 겨희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일본 학자 히로세 준과 이 문제를 놓고 대화했는데, 그 역시 ‘情動’은 잘못된 번역어고 내가 제안한 ‘기운/氣運’을 수용하겠다고 했다(히로세는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잘하고, 한국어도 꽤 한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광팬이기도 하고). 기운이라는 용어는 ‘몸’에 일어나는 사건과 ‘마음’에 일어나는 사건을 동시에 가리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뭔가 신비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정량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신비주의는 극복될 수 있으리라 본다.

affect, 즉 ‘기운’을 들뢰즈 텍스트의 맥락으로 가져오면 어찌 될까? 가령 저 유명한 진드기의 세 개의 affect. 진드기는 세 개의 기운이 있을까? 에스토니아의 생물학자 야콥 폰 윅스퀼(Jakob von Uexküll)의 보고에 따르면, 진드기에게 유의미한 행동은 세 개 뿐이다. 그 셋은 빛을 만났을 때 나뭇가지 끝으로 오르기, 포유류의 땀냄새와 만났을 때 자유낙하하기, 털이 없는 따뜻한 피부와 만났을 때 피를 빨기, 이렇게 파악된다. 운이 좋아 행동이 성공하면 기운이 나고, 운이 나빠 행동이 실패하면 기운이 빠진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동물의 승리와 낙담을 파악할 수 있을까?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윤리학(ethique)을 윅스퀼의 (동물)행동학(ethologie)으로 해석했으니까. 또한 인간도 이 점에서 동물이니까. 이 지점은 프로이트의 인간 이해와 결별하는 지점이다. 꼬마 한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프로이트가 보고한 ‘환자’ 꼬마 한스는 사실 들뢰즈(과타리)에 따르면 20세기 초 도시 거리의 ‘기운들’의 목록을 작성한 지도/도면 제작자였다. 학술 논의를 위해서는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고 논의 당사자들 간에 무슨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합의되어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외국도 매한가지지만) 인문 학술 논의가 지지부진하고, 수출(?)할 거리를 만들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 지점과 관련되어 있는 게 아닐까?” [[인용 끝]]

들뢰즈 자신의 친절한 설명은 다음 링크를 참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강의 녹음, 프랑스어 및 영어 스크립트가 있습니다. https://deleuze.cla.purdue.edu/lecture/lecture-00/

어펙션은 스냅사진 비슷한 거예요. 어펙트는 스냅사진 두 개가 사이의 격차의 느낌입니다. 본문에서 ‘이행감’이라고 할 때, 그건 어펙트와 관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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