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의 인공지능 비판: 《철학이란 무엇인가?》(1991)

들뢰즈는 《철학이란 무엇인가?》(1991, 과타리와 공저)에서 ‘인공지능(les cerveaux artificiels)’과 관련해 중요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사실상 내가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와 관련해 제시한 관점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일단 해당 원문을 보도록 하자.

“의견이라는 현상을 고려한다고 주장하는 가짜 과학의 경우, 그들이 이용하는 인공지능은 확률적 과정, 안정적인 끌개 및 형태 재인식의 모든 논리를 모델로 유지하지만, 의견에 맞선 생각의 투쟁과 의견 자체 내에서의 생각의 퇴보를 둘 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오스 상태와 카오스 끌개에 도달해야 한다. (컴퓨터가 진화하는 한 가지 길은 카오스 시스템 혹은 카오스를 일으키는 시스템을 가정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원문: Quant aux pseudo-sciences qui prétendent considérer les phénomènes d’opinion, les cerveaux artificiels dont elles se servent gardent pour modèles des processus probabilitaires, des attracteurs stables, toute une logique de la recognition des formes, mais doivent atteindre à des états chaoïdes et à des attracteurs chaotiques pour comprendre à la fois la lutte de la pensée contre l’opinion et la dégénérescence de la pensée dans l’opinion même (une des voies d’évolution des ordinateurs va dans le sens d’une assomption d’un système chaotique ou chaotisant). QP 194-195.

이 구절에서 몇 가지 표현에 주목할 수 있다.

첫째, 인공지능을 ‘가짜 과학‘과 연관 짓고 있다. 들뢰즈가 염두에 둔 건 튜링 기계지만, 최근의 딥러닝과 초거대 언어모델에도 해당한다. 이 문제에 대해 내가 쓴 글도 있다(딥러닝 인공지능은 유사과학이 아닐까?).

둘째, 인공지능이 ‘의견’에 머문다는 지적이다. 의견(opinion)은 오랜 철학적 논의의 역사를 갖는다. 의견은 희랍어로 ‘독사(doxa)’라고 했는데, 가령 플라톤의 관점에서 ‘의견’은 ‘진실(aletheia)’, 즉 ‘망각(lethe)’에서 탈피(a)하는 것의 반대다. 우리가 플라톤의 이런 해석에 머무를 필요는 없다. 들뢰즈는 의견을 생각 없이 하는 말(“communication”)이라고 해석한다. 우리가 의견의 일치를 볼 수는 있겠지만(“consensus”), 그건 개념(concept)을 창조하는 일과는 상관없다(QP 11-12). 들뢰즈는 인공지능이 ‘의견’만 다룬다고 했는데, 오늘날의 상황에 더 잘 적용될 수 있다. 즉 의견을 다룬다는 건 인터넷에서 모을 수 있는 모든 텍스트를 다룬다는 의미로, 즉 초거대 언어모델이라는 의미로 재해석할 수 있다.

셋째, 의견과 생각은 대립한다. 생각은 의견에 맞서 투쟁하며, 의견에서 생각은 퇴보한다. 다시 말해 생각은 의견에서 도주하고 도약해야 한다. 그것이 생각의 본령으로, 인간은 생각의 위대한 형식을 적어도 셋 갖고 있다. 철학, 과학, 예술이 그것으로, 각각 개념, 함수, 감각을 창조한다. 들뢰즈가 언급한 “확률적 과정, 안정적인 끌개 및 형태 재인식의 모든 논리”란 의견을 분석하는 접근법이다. 그것은 곧 폰노이만 아키텍처에서 작동하는 알고리즘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관련된 글 참조).

넷째, 생각은 카오스를 경유한다. 카오스는 생각의 혼돈 혹은 교란이다. 생각은 카오스를 극복하는 능력이다. 그때 생각은 새로운 질서에 도달한다. 생각의 이런 활동은 철학, 과학, 예술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나는 니체를 빌려 이 특징을 ‘평가하기’와 ‘넘어서기’라고 요약한다. 인공지능은 원리상 이런 일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발전하려면 카오스를 경유할 수 있게 설계해야 한다고 들뢰즈는 제언한다. 이쯤 되면 그것은 인간 수준의 지능인 인공일반지능(AGI)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아주 간략하게 정리했기 때문에 논의를 따라가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시간과 여유가 되면 더 쉽게 풀어서 공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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